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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정완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중동'이라하면 '여성'이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천으로 몸을 휘감은 '히잡'은 더운 나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몸을 감았어야하는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더한 것은 '차도르'로 눈만 빼꼼히 나온 옷은 그야말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을 대변해 주는 의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이 끊이지않는, 위험한 곳이라는 점.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라든지, 탱크가 지나가는 모습은 티비에서 종종 보이곤 하였기에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중동'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거부감'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의 힐링 편지가 제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살았던 곳, 리야드의 디큐.
그곳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우리에게 '미세먼지'가 있었다면 그곳엔 '모래바람'이 있었습니다.
서로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의 얘기는 아니지만 그 모래바람이 전한 이야기는 저의 편견 중 하나를 깨주었습니다.
사우디의 모래입자는 너무 가늘어 머릿결에 한 번 착 달라붙으면 감아도 감아도 여전히 끈적입니다. 빗질은커녕 손가락도 안 들어가는데 물탱크에서 나온 물은 결코 차가워지지 않았습니다. 안개와 구분이 안 되는 먼지바람까지 겪고 나니 온몸을 가리는 아바야가 현명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모래바람이 가져다준 생각의 반전이 사우디의 생활에 뒤늦은 너그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매번 히잡으로 머리를 가리지는 않았지만 식은 밥 대하듯 함부로 다루던 아바야를 세탁소에 맡겨 곱게 다림질해서 입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문화 상대주의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임은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page 39
그녀가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아직도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과 시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약한 인간이 살아내는 세상이기에 누구든 마음속의 낙인 하나 있을 터인데 사랑하는 나라, 한국 사회에서 찍어준 이혼의 낙인은 너무도 선명해서 아릿하고 뭉근하게 아팠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품위와 위엄마저 도매금으로 몰수해가던 시선과 매일 부대끼는 삶, 금붕어처럼 눈만 끔벅이며 그나마 쌓아왔던 사회적 관계까지 모두 사라지게 했던 이혼, 무서웠던 세상 속에서 하얗게 지새워야 했던 많은 밤과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많은 낮이 감당하기 벅차서 한국을 떠나 사우디에 와서까지 많은 밤을 악몽에 시달려야 했음을 이제는 고백합니다. 자기연민과 자괴감이 구색을 갖추어 따라오기에 더 몹쓸 단어, 이혼. 한국사회의 구박대기가 되기에 충분했던 사람이 낯선 곳에서 예고 없이 낯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니 여러 생각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했습니다. - page 90 ~ 91
그래서 그녀의 사우디에서의 생활은 보다 적극적이었고, 열린 마음이었으며 누구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인종과 문화의 다름뿐 아니라 인격의 다름마저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곳, <여성 전용 공간, 알마나힐>.
이곳은 리야드의 유일한 여성 헬스센터로 체육관 수업 시간표의 귀퉁이엔 이런 당부의 말도 적혀있다고 합니다.
1. 선글라스 끼고 운동하지 마시오.
2. 운동 중 통화하지 마시오.
3. 운동화 신고 오시오. - page 129
이는 사우디 여성들은 운동은 처네로서의 명예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교육하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무엇을 입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쥬디스'는 그녀에게 요가 강사 공부를 제안합니다.
"못해." "왜?" "할 수 없는 이유를 대봐. 말 못하잖아. 그러면 할 수 있다는 말이지." - page 134
그렇게 그녀는 사우디와 영국을 오가며 영국 정부가 인정하는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가입 절차가 힘들었던 공공 체육관에서도, 입회비가 터무니없이 비쌌던 알마나힐 헬스센터에서도 동양 여자는 유일하게 저 혼자였지만 운동으로 친구를 만나고 운동으로 사우디 여인들의 삶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 마침내 운동으로 제 자신이 구원받았습니다. '열사의 끝, 그 영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 것이라는 시인의 예언이 제게도 왔고 그것은 머리도 마음도 아닌 몸의 의지였습니다. 한 번도 진심으로 곁을 내주지 않았던 몸이 어느새 제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 page 136
'사막'이 전한 이야기 중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만난 우정도 아니지만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다는 동질감으로 사우디에서 처음 만난 까무잡자바한 동양 여자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게 만든 곳,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습니다. 음예 공간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삶이 허약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했지만 세상의 끝이라 느껴지는 지점에서 뜻밖에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 page 284
사막에서 주워온 화석들을 파티오에 늘어놓고 하염없이 쳐다보면 수천 년을 지나온 지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 삶에도 지층 한 개는 생겼을 것 같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화석의 고르지 못한 표면에 남아있는 모래처럼 제 안에서도 저렿게 악착같이 달라붙는 집착과 고집이 있으리라 짐작하면서 시간과 함께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 가주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에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들었습니다. - page 293 ~ 294
제가 알던 '사우디'와는, '사막'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더 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결국 그곳엔 '사람'이 있었고 '인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의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사막에서 온 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저 역시도 그 본모습을 모른채, 편견과 색안경으로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사우디'의 모습을 본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