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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몽환도
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들어 단편소설을 읽곤 합니다.
긴 호흡보단 짧은 호흡으로, 그때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짬짬이 시간을 내서 읽을 땐 단편소설집을 꺼내읽곤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장르를 발견하였습니다.
'스마트소설'
우리의 일상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처럼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그야말로 단편보다 더 짧은 단편소설이라고 합니다.
왠지 새롭기도 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찾아보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빗소리 몽환도』

스마트폰의 배경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겨보듯 그렇게 책장을 넘겨보았습니다.
첫 소설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담주는 줄리엣>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습니다.
그런데 줄리엣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찰나!
누군가의 등장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한 남자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건 뭔가 좀...? 더구나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 page 8
"아, 으, 음, 어휴, 전 그저 독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름다운 여자가 그런 방식으로 죽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어 참견하게 된 겁니다. 책읽기에서 독자란 그냥 방관자로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책이 우리를 바꿀 수 있듯이 독자도 책에 대한 이해 정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page 9
와~!
과연 줄리엣은 '독자'의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꿀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더니 줄리엣이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린 상징으로 남아야 하는 운명이죠. 두 가문의 원수의 상황을 풀기 위한 희생양으로 죽어야만 하는 거였죠. 다른 도리가 없어요! 낭만적인 사랑의 죽음이 아니랍니다. 그건 어쩌면 오해이고 곡해이자 왜곡인지 몰라요. 어찌해서 우리가 현대인에게 사랑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는지 모르지만요. 그래요, 세상이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리고 인간이란 그 상징을 살아가는 거고요." - page 10 ~ 11
'상징'.
이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다가올지 몰랐습니다.
이 상징의 의미처럼 다음에 이어지는 소설들도 환상과 현실의 경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과연 우리는 가상과 현실 속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는지에 대해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준 소설들이었습니다.
<빗소리 몽환도>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서가 유일한 취미이자 등대이자 위안이자 유일한 동반자로 여기며 사는 그, '공상호'.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어느날.
그에게 소설 속 인물들이 난데없이 등장합니다.
그러곤 마치 오래전부터 현실 속에 살아온 것처럼 행동하는, 소설과는 다른 그녀.
캐릭터의 변질이라니! 그건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소설을 떠나면 인간은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의아해하며 공상호는 조금 아까 끝낸 소설책을 흘끔 내려다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혹시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이 아닐까...? 혹시라도 현실과 상상의 두 공간이 사랑하듯 만나 돌연히 합선되어 버린 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영 미쳐버린 게...? 그는 뺨을 한번 더 꼬집어보려다가 대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 page 120
꿈이라면 한바탕 난리를 치고 사라진 그들.
그들이 남긴 잔상과 여운은 다시 공상호가 현실로 돌아온 것을 느끼게 하고 또다시 공상호는 환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소설 속 그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전 살고 싶어요. 세상이 어떤 곳인가 알고 싶어요.
공상호는 그제야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알아차렸다.
아저씨, 전 간절히 삶을 맛보고 싶어요.
그래? 난 살맛을 통 못 느끼는데......?
자신이 별로 신통치 않게 여기는 세상을 그토록 보고 싶어 하다니! 난감한 일이었다! 누구나 저마다 다른 세상을 이고 사는 것이니, 자신의 의견이 정법이라고 함부로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세상은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어버려 구제불능이고 타락하고 사악한 구조라고 돼먹지 않는 사적인 의견으로 순수한 영혼을 오염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 page 129 ~ 130
누군가에겐 간절히도 보고 싶고, 살고 싶은 이 곳.
과연 그곳은 가상일까 현실일까......
짧지만 긴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현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가상 속의 세계인지 자꾸만 되뇌어 묻곤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 역시도 제가 바라는 세계는 가상에서만 가능한 것인지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나도 소설을 읽다가 소설 속 인물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궁금하고도 궁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