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끌렸던 것은 책 표지에 적힌 이야기때문이었습니다.

"할매"

"왜?"

"괜찮아, 안 죽어요."

진료실을 나서려던 할매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인사를 하시려나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마주 보는데 할매가 말한다.

"다 죽어, 사람은."

왠지 스웩이 넘치는 할매의 한 마디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괜찮아, 안죽어


그의 이야기는 10년 전 작고 조용한 동네 의원 진료실로 오고난 뒤 느낀 소생기록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이야기는 Prologue에서부터 정겨움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어느새 '저 할매집 마당에 있다는 감나무는 대체 얼마나 큰 걸까?'라고 상상하는 일 따위에 익숙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할매가 놓고 간 감 봉지를 보며 '감을 이렇게나 많이 딴 걸 보면 작은 나무는 아닐 텐데... 사다리를 놓고 올라간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다시 계단을 올라온다.

"아, 왜요, 또. 숨차다는 양반이."

"아유 그게..."

길을 건너 버스를 기다리다 깜빡 잊고 말을 안 한 게 생각나서 다시 올라왔다는 할매.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할매는 감을 절대로 눕혀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감꼭지를 아래로 가게 세워놓아야 예쁘고 맛난 홍시가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옆으로 눕혀놓으믄 썩어!"

저 우라질 계단을 다시 내려가면서 할매는 기어코 한 번 더 소리를 지른다. - page 8 ~ 9


책을 읽고 있노라면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에 그만 미소를 짓고 맙니다.

또한 책 속에 나온 할매들이 보고싶었습니다.

할매가 '툭'하고 던지는 한 마디.

그 한 마디로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가 당시 응급실에서 진료를 할 땐 환자의 위중 정도에 따라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가'에 따라 환자의 치료 순위를 정했고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아내와 딸이 아프다고 해도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괜찮아, 안 죽어." - page 28


응급실에서 동네 의원의 진료실로 옮겼을 때 무심코 자신의 오래된 유행어를 내뱉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할매의 말은 제 가슴 속에서도 맴돌았습니다.

"다 죽어, 사람은."


아니, 내 말은 팔다리 쑤시고 아픈 게 당자아 죽을 일은 아니라는 거였는데.... 주절주절 변명할 틈이 요만큼도 생기지 않을 만큼 말문이 턱 막힌다. 내 말이 맞는지, 할매 말이 맞는지 따질 이유도 겨를도 없다.


안 죽는다, 그러나 다 죽는다. - page 31


<그저>에서 나온 할배와 할매의 모습이 마냥 좋았습니다.

앞서 걷는 할배.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걸어오시는 할매.

아프지도 않으시면서 할배를 따라온 할매는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아이고, 사이도 좋아. 누가 보면 신혼인지 알겠어요."

"저 양반이 좋아해. 내가 따라다니는 거."

"아, 그렇게 좋으면 손이라도 잡고 다정하게 다니시지."

"50년 같이 살면서 든 버릇이 어디 가나."

...

새삼 고맙다. 1분 만에 다시 들어온 전기도, 50여 년을 같이 산 노부부가 눈이 채 녹지 않은 이 미끄럽고 험한 길을 걸어 내게 와준 것도, 그저 고마운 일이다. - page 140 ~ 141

저도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저에게 와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저 좋았습니다.


때론 비트를 주지 않았지만 따끔한 일침을 던지는가하면 때론 가슴 찡한 이야기를 건넨 할매들.

그런 할매들이 있기에 그는 마냥 행복한 의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

그저 빠르게만, 바쁘게만, 냉정하게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이 사회에 아직 이런 '할매'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아갈만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난 뒤 문뜩 <괜찮아, 사랑이야>란 드라마가 떠올랐습니다.

이 드라마에선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곤 하였습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명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모두, 환자다.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

그걸 인정하고 서로가 아프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 <괜찮아, 사랑이야> 중에서


오늘 하루도 힘겹게 버틴 이들에게 전합니다.

"괜찮아! ​"

이 한 마디가 지친 그대가 기댈 수 있는 작은 어깨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니면 가만히 이 책을 읽으며 할매들이 전하는 위로에 기대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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