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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지구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힘, 중력.
『중력』

처음엔 그저 단순히 공상소설이겠구나......란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책표지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왜 마음이 찡해지는건지......
우주헬멧을 쓴 그의 모습에서 애처러움마저 느껴지는건 왜인지......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읽게 된 이 소설은 마지막장을 읽곤 어느 한 샐러리맨, 아니 우리 주변에 있는, 아마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느끼고 코끝이 찡! 그저 흐르는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느 샐러리맨과도 같이 살아가던 그, '이진우'.
나는 이 육체로 내 삶을 평생 경험한다. 성실하게 돈을 벌 것이며, 지난해 퇴직한 아내와 함께 딸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행복과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을 자주 맛보며 살고 싶다. 그런 기쁨을 주위에 나눠주고도 싶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 page 38
그런 그가 우주인을 뽑는다는 포스터를 보고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졌던 꿈들이, 열정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되기!
우주인을 선발하는 과정은 마치 직장생활과도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경쟁과 권력.
그 속에 살아남기위해 저마다의 몸부림.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어려운 질문에는 형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안도감을 주었고 동병상련이 생겨나더군요.
그런데 형은 갈수록 저나 교수들의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발휘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자기만의 설명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저는 경쟁자가 그러니까 긴장해서 듣느라고 잠시 무아까지 찾아오더군요. 경계심을 가지고 듣던 교수가 마지못해 칭찬을 해주면 형은 기숙사로 돌아갈 때 바짓가랑이에 바람이 일만큼 힘차게 걸었습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신비감 같은 것이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자신감이 생긴 것이지요. 그게 왠지 스트레스를 가죠오더군요.
우리는 사이좋은 공생을 한 것일까요? 속마음을 감추고 면종복배를 한 것일까요?
이런의문은 그가 경쟁에서 갑자기 낙오하던 날까지 제 속에서 메아리 쳤어요. 며칠 지나서야 이제 남은 우리 셋이 겨루는구나 싶어서 낙담한 그에게 물끄러미 연민이 갔지요. - page 212 ~ 213
치열한 경쟁 뒤에 남는 후회와 연민......
우리 모두의 뒷모습이 씁쓸한 것은 아마 이때문이겠지......란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그리고 울림을 주었던 이야기.
"그렇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지 최초가 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배나 자동차를 처음 운전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는 모르잖습니까?"
"너희 나라에서는 누가 비행기를 처음 조종했는지 모르나?"
"물론 알지요. 그런데 제 말은, 우주인이 되어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게 소중하다, 최초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 page 244
최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SKY 캐슬>에서도 그러했듯이 우리 모두는 '1등'만, '최초'만 기억하기에 이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
어느 개그맨이 외쳤던 유행어가 떠올랐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내가 다니던 연구소든 다른 직장에서든 아랫사람들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만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높이 오를수록 아래를 더 무시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들. 북돋고 끌어주기보다 자르고 떨궈내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이용해서 더 윗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켜주고. 미안함 없이 태연한 모습들. 그렇게 자리를 지켜봤자 고작 몇 달이나 몇 년에 불과해선지도 모른다.
내가 요구받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리를 보장해준다는, 혜택도 아닌 혜택과 맞바꾸는 실토, 강요된 정직이 나는 싫었다.
나는 승자가 아니라도 좋았다. 승자보다 더 승자다운 것, 승자의 됨됨이를 지니는 것, 그래서 미더움을 주고 소박한 정을 나누는 것이 더 소중했다. - page 394 ~ 395
평범한 샐러리맨의 중력을 벗어나 '우주인'이 되고자한 열정과 그 뒤에 남겨진 씁쓸함......
나는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아니,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 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 page 408
하지만 그는 진정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고자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우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힘이 나타나요. 끌어안거나 품어주는 힘이요. 중력 같은 힘 말이에요. 늘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차츰 차츰 강해졌어요. 우리는 그런 힘이 너무 없는 곳에서 살고 있잖아요. ......밀치는 힘, 내쫓는 힘, 책임지지 않는 힘...... 그런 게 많잖아요. 하지만 그는 다른 힘을 보여줄 때가 있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갔어요.
우리는 무중력에서 오래 살 수가 없어요. 지상으로 돌아와야 해요. 제 생각은 평범해지겠다는 것이에요......- page 424
우리에게 존재하는 중력.
그 속에서 무중력으로의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 중력 속에서 자신만의 희망을 향해 그 힘을 발휘하는 건 어떨지......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저도 잠시나마 꿈을 꿔볼까 합니다.
무수히 많은 별들 중 나와의 중력을 끌고 있는 별은 무엇일지......
나는 그 별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가만히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