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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평점 :
조선시대에 살아간 여자.
하지만 한중일 3국 실학자 99인 중 유일한 여성 실학자이자 <규합총서>와 <청규박물지>의 저자, 빙허각 이씨.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였습니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첫 이야기는 그녀의 작은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숙정이가 툭하면 친정 나들이를 할 때부터 제가 알아봤습니다."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네. 내가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운 탓이라네."
작은성의 살아서의 고통을 헤아리며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집안의 체통과 자신의 출세만 헤아리는 오라비와, 그런 오라비에게 죄인이 되어 전전긍긍하는 어머니의 말에서, 선정은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과 함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낀다.
선정이 밤새워 읽고 또 읽었던 책에서는 형제간의 우애와 의리를 강조했었다. 선정이 알고 있는 선비는 의를 위해 글을 읽을 뿐이며, 관직은 의를 실천하기 위한 직업일 뿐이었다.
'아! 여자인 작은성의 죽음이 고기나 가죽을 남기는 백구나 누렁이가 죽은 것보다도 못하구나.'
선정은 '잘 나가는 명문가의 고집 세고 고지식한 규수'에 불과한 자신과 현실의 상황이 혼란스러워 머리를 쥐어 싸고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 page 34 ~ 35
하지만 선정은 누가 보아도 호감을 느낄 만한 청순한 외모와 아버지처럼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아는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었기에 학문에 대해 누구보다 더 열의를 가지고 다가갔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여느 사내들도 힘들다는 청나라 연경 여행을 떠나고 건륭제 앞에서도 당찬 조선 여인의 기상을 보여주곤 합니다.
"조선의 여인들이 그렇지만 너는 참으로 명민해 보이는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건륭제는 당돌하면서 기품이 넘치는 조선 소녀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싶은 듯 안경 너머로 가늘게 실눈을 뜨고 물어본다.
"부모님이 내려 주신 성은 전주 이가이고 지어 주신 이름은 착할 선 곧을 정 이선정이옵고..."
"부모가 준 이름이 이선정이면 네가 지은 이름도 있느냐?"
선정이 말을 잇기도 전에 건륭제가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하옵니다. 제가 지은 이름은 빙허각이옵니다."
"오! 빙허각! 빙허각이라 참으로 특별한 이름이구나. 무슨 뜻이냐?"
"기댈 빙, 빌 허, 집 각 빙허각이온데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이름입니다." - page 106 ~ 107
그녀는 자신이 지은 이름처럼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을 합니다.
식견이 트인 서씨 집안 사람이 되어 자동탕약기를 만들고 대규모 차밭의 농장주가 되는 등 조선에서 '여성'으로써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시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
그 어떤 슬픔도 이보다 더하진 못할 것입니다.
이로인해 그녀는 잠시 자신의 뜻이 옳은 것인지에 회의를 느끼곤 합니다.
'인생은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세상의 문을 열어가며 살겠다던 자신의 신념이 자식들의 죽음으로 무너진 것도 빙허각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빙허각은 혼자 장구치고 북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처럼 살았던 자신이 우습다.
'내가 책을 읽으며 깨우쳤던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자 했던 것부터 잘못된 선택인가?' - page 379 ~ 380
다시금 그녀가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
빙허각은 불현듯 아버지 이창수의 당부가 떠오른다. 아버지 이창수는 시집가기 전날 친정에서의 마지막 저녁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온 선정을 보고, 간곡한 얼굴로 딸에게 부탁을 하였다.
"선정아! 살아가면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네 몸을 해하는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것만은 이 아비하고 꼭 약속하거라!"
이창수는 선정의 구부러질 줄 모르는 강한 성정과 숙정의 일로 몸을 해하는 일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정은 지하에 계신 아버지가 일흔이 다된 외숙모 사주당을 보내, 수렁 같은 슬픔에 빠진 자신을 위로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며 슬픔을 거둘 것을 결심한다.
자신의 식어버린 몸에 따뜻하면서 강한 기운이 휘몰아 오는 것을 느낀 빙허각이 뒤를 돌아본다. 빙허각의 슬픔을 덜기 위해 자식을 잃은 아비의 슬픔조차 드러낼 수 없던 유본이 더 내어줄 것 없어 안타까운 빈 수수깡이 되어 빙허각을 보고 있다. - page 390
그렇게 그녀는 <규합총서>를 집필하게 됩니다.
그녀의 삶.
화려하면서도 한편으론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아마 '여성'이기에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인지......
'빙허각'이란 이름이 자꾸만 가슴에 맴돌았습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큰 울림이 제 가슴 속에 파동으로 자꾸만 맴돌았나봅니다.
그녀처럼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허공에 기대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