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는 언제나 옳다 - 아빠와 함께, 조금 더 지적인 파리 여행
강재인 지음 / M31 / 2019년 1월
평점 :
'파리'.
이름만으로도 예술적인 도시.
오~ 샹젤리제~♬
거리 곳곳마다 울려퍼질 것만 같은 그곳, 파리.
그곳으로의 여행을 떠난 이가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아빠와 함께!
『파리는 언제나 옳다』

아빠와 딸.
솔직히 나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기에 그들의 여행이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낭만의 도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부녀는 어떻게 바라볼까......
"인간의 개성과 개인의 존엄성에 모든 비중을 두고 있는 그들의 가치체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39년 전 아빠의 여행기 일부를 옮긴 글이다. 아빠와 딸, 노인과 청년, 남자와 여자, 취향은 비슷하지만 친하지는 않은 우리 부녀가 유별난 준비 기간을 거쳐 얻게 될 이번 여행의 수확은 과연 무얼까 ? - page 18
아빠의 시선과 딸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여행.
이 부녀의 여행은 예술가의 흔적을 좇아가며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예술가가 살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들의 흔적에 부녀의 추억을 더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여느 '파리' 여행에세이와는 다르게 한층 성숙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여행 중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 유독 인상깊었습니다.
"난 이 책방을 작가가 쓰는 소설처럼 만들었소. 방 하나하나가 소설의 매 장이요. 그래서 새 장을 여는 것처럼 새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책속으로 들어가듯이." - page 90
그래서 그 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닌 사람과 책, 작가와 독자를 엮어주는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왠지 이 곳에 가면 '안식처'마냥 편안하고 위로받는 느낌을 얻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콩코르드 광장에 오벨리스크 탑을 세운 진짜 이유>.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했던, 반동분자로 붙잡힌 자들의 처형이 이루어졌던 기요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장 이름엔 '화합'과 '조화'의 의미인 '콩코르드' 광장.
이제는 기요틴 자리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이유.
루이 15세의 기마상을 파괴한 자리에 처음엔 '기요틴', 그 다음엔 혁명이 만든 '자유의 여신상', 그 다음엔 '루이 15세 기마상', 그 다음 왕정복고 시대엔 '루이 16세 기마상'을 세웠다. 이건 그냥 내 해석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식의 좌우개념으로 접근해선 정치보복과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떠올리게 할 뿐이라는 당대인의 판단이 있었던게 아닐까? 그래서 루이 필리프는 마침 오스만 튀르크의 이집트 총독이 선물한 이집트 룩소르의 오벨리스크가 파리에 도착하자 그 방첨탑을 기요틴 자리에 세우고 '콩코르드 광장'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게 아닐까?
딸이 다시 물었다.
"그게 화합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
없다. 이집트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테베의 람세스 신전에 세웠던 기념비에 무슨 좌우개념이나 중재를 위한 화합의 개념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좌우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떠올리지 않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 역사와 아무 연관도 없는 오벨리스크를 보면 사람들은 기요틴 대신에 3천 년 전의 이집트 문명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해석을 듣고 난 딸이 한마디 했다.
"속임수네요." - page 229 ~ 230
정말로 아이러니하였었습니다.
과거를 덮기 위해 마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인 오벨리스크 탑의 존재.
시간이 흘러 그 의미도 변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점.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의미마저도 무색하다는 것이 '역사'의 의미인 것인지 되뇌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행'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아빠가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은 인생 자체도 한 번뿐이지만 사실은 매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깨달음이다. 같은 사건, 같은 인물, 같은 환경, 같은 느낌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더라. 그래서 너와의 이번 여행이 아빠의 남은 삶 속에서 '이동축제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는 어떠냐?" - page 283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생각을 공급해주는 샘이고 삶의 자신감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인생은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책인데 나는 너무 띄엄띄엄 읽어왔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읽어보자.
그런 각오와 다짐은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실타래같이 뒤엉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를 스트레스와 공허감으로부터 빠져나올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강력한 충전이다. 우주의 한 별 위에서, 지상에서, 파리에서, 파리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속도감 있게 축소되어 진주처럼 영롱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 page 285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책이라는 것.
참으로 인상깊었습니다.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도 단 한 번인, 마지막인데 그냥 무심코 흘려보내지는 않았는지......
그들을 통해 저 역시도 서울에서, 어느 아파트의 한 공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찬찬히 읽어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