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
이학준 지음 / 별빛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문학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학준'.

그는 글을 쓰며 삶을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바람들이 모여 한 권의 '에세이'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

 


첫 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비 맞은 잔디처럼 금방은 물기를 털어낼 수 없는. 그럴 때는 만만한 하루를 행인 삼아, 나를 밟고 지나가는 행인의 발목에 물기를 묻혀보자. 행인도 잔디를 안타까워 여겨줄 게 분명하다. - page 11

나는 그런 날 어떻게 했을까......

젖은 내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모란>의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시가 끝난 다음에도 몇 초간의 떨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학생 혼자가 아니라 교실에 앉은 여러 명이 함께 느끼는 떨림이었다. 그 떨림들은 소박한 박수갈채로 이어졌고, 여학생은 흐뭇한 미소를 한 번 지어 주었다. 소녀가 두 손으로 받아 내던 모란 잎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흙으로 내려졌다. - page 26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를 찾아 조용히 소리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조금씩 떨리던 목소리......

혼자 읽어내려가는데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뚝뚝 떨어지는 모란......

그 모란의 꽃잎 하나 하나를 가만히 떼어봅니다.


그 시절.

흐르던 강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흐르는 강물......

하지만 그때 그때의 강물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흐르기에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흔적을 남겨 나중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내미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알아차릴 땐 그 강물은 한낱 강물이 아니었음을......


<기다림>을 읽으면서 '엄마'의 뒷모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들어오니까 엄마 양쪽 볼이 빨갛다. 아빠는 안 보고 빨리 밥 해라 한다. 가게 안인데도 별별 살림이 다 들어있어서 엄마는 오기 무섭게 싱크대 앞으로 갔다. 나는 서 있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가지 말라 하는 걸 엄만 기어코 간 거라 나는 미안할 게 하나도 없는 듯이 됐다. 엄마 스스로 역시 그렇다. 내가 무사히 와 있어서 다행인 그거 한 가지다.

왜. 엄마는 왜 나를 자꾸 기다려주는 걸까. 요즘까지도 말이다. - page 163

어릴 적에도 그렇게 성인이 되었을 때고, 결혼을 해 출가한 지금에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기다려주는 엄마.

그저 괜찮다고만, 잘 지내서 다행이라고만 하는 엄마의 말 한 마디......

미안하면서도 괜한 투정을 내는 제 모습이 이 글을 읽으면서 비춰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때 그 시절.

나의 일상도 그저 흐르는 강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강물이 단순히 흐르기만 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덮고나니 시 한 편이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김춘수의 '꽃'.

가만히 읊어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픈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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