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집
리브 앤더슨 지음, 최유솔 옮김 / 그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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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코니와 순종적이고 연약한 리사는 아기 때 양모(養母) 이브에게 입양된 쌍둥이입니다. 가학적인데다 모든 걸 통제하길 원했던 이브는 쌍둥이에게 잔혹한 차별대우와 함께 정신적인 고문을 일삼았는데, 특히 코니에겐 이른바 생존게임, 즉 몇 푼의 돈만 쥐어준 채 낯선 도시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하곤 했습니다. 쌍둥이가 26살이 된 해, 이브가 뜻밖의 사고로 사망하자 코니는 해방감을 만끽하지만, 그녀가 남긴 잔인한 유언장 때문에 새로운 생존게임을 시작할 처지에 놓입니다. 리사에게 거의 모든 재산을 물려준 이브는 코니에겐 뉴멕시코주 닐라의 황량한 사막에 있는 작은 빨간 집만을 물려줍니다. 문제는 그 빨간 집이 위치한 닐라는 오래 전부터 무수한 여자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끔찍한 장소라는 점입니다.

 

일그러지고 비틀린 소시오패스들이 난무하는 독특한 스릴러입니다. 15살 나이에 출산과 동시에 자기보다 27살 많은 남자와 결혼한 뒤 오랫동안 끔찍한 학대를 당하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이브, 죽은 아버지를 꼭 닮아 잔혹하고 반항적인 10대가 된 이브의 딸 켈시, 그리고 이브에게 입양된 뒤 감금과 학대와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성장한 쌍둥이 코니와 리사 등 이 작품 속의 주요 인물들은 평범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캐릭터들입니다.

또한 20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 닐라에서 벌어진 무수한 납치살인사건 역시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의 소행으로밖에 볼 수 없고, 닐라를 지배하고 있는 음울하고 불온한 분위기라든가 납치살인사건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주민들의 비밀스런 행태는 그 자체로 무형의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집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닐라의 빨간 집에 살게 된 코니의 이야기로, 죽어서까지 자신에게 가혹한 생존게임을 강요하는 이브의 태도에 의문과 분노를 품던 코니가 닐라에서 벌어진 연쇄 납치살인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위험천만한 탐문을 전개하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20여 년 전, 실종된 10대 딸 켈시를 찾기 위해 닐라에 온 이브가 온갖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힘으로 분투하는 이야기인데, 재미있는 건 이브의 분투가 결코 상식적인 모성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일종의 게임, 즉 반드시 켈시를 찾아내 굴복시키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됐다는 점입니다.

 

코니와 이브의 여정은 언제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쉴 틈 없이 벌어집니다. 또한 20여 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코니와 이브는 마치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해 달려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같은 사건들이 두 사람의 행보에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코니와 이브는 닐라에 만연한 비밀과 거짓말을 걷어내고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애쓰지만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서있는 섬뜩한 빨간 집은 두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남깁니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줄거리와 캐릭터 모두 꽤 흥미진진한 서사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 자체가 산만해진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두세 번만 비틀어도 괜찮았을 텐데 지나치게 비틀고 또 비튼 나머지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렸습니다. 사건뿐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과 내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선지 주요 인물들의 경우 다 읽고도 이 사람은 이런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결말부도 다소 불만스러웠는데, 연쇄 납치살인의 진실도, 실종된 딸 켈시의 행방도 딱히 반전이나 해결의 매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일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하기도 했고 일부는 작위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알게 됐지만 ?’는 모호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닐라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소시오패스의 광란의 결과이니 ?’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돼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수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적잖은 오타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조사(助詞) 오타가 특히 많았고, 주요 지명 중 하나가 샌타페이-산타페이-산타페로 계속 바뀌기기도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른 건 몰라도 오타만큼은 어떻게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두 개라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이라면 실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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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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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에도의 변두리 마을 고비키초의 극장 뒤편에서 복수가 이뤄졌다. 기쿠노스케라는 소년이 아버지의 원수 사쿠베에를 죽이고 잘린 목을 든 채로 사라진다. 항간에서 고비키초의 복수라 불리는 이 사건 이후 2, 한 남자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다며 극장을 찾아온다. 남자는 당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거듭 묻는다. 동시에 사건과는 무관한, 목격자들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과연 2년 전에 벌어진 복수의 실체는 무엇일까? 극장을 찾아온 남자가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목격자들의 진술 끝에 드러나는 진실은 무엇일까?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고비키초의 복수2023년 나오키상과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입니다. 나가이 사야코는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데, 휴머니즘이 진하게 담긴 시대소설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장르인데다 복수가 이뤄지고 2년 후, 그 상황을 목격한 자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라는 설정도 매력적이어서 읽기 전부터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모두 다섯 명의 목격자가 등장하는데, ‘극장을 찾아온 남자’, 즉 청자(聽者)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목격자들은 2년 전 사건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에 대해 마주 앉은 청자와 대화하듯 찬찬히,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이런 독특한 형식은 마쓰이 게사코의 유곽 안내서에서도 활용됐는데, 에도 시대의 정보를 쉽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화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한 생생함을 만끽할 수 있어서 이 작품에 딱 맞는 형식이었습니다.

 

몸을 파는 유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극장 호객꾼이 된 잇파치, 하급 무사 출신으로 역시 기구한 사연을 거쳐 무술 연기 배우가 된 요사부로, 천애고아가 되어 화장터에서 키워진 뒤 말단 배우들의 의상을 담당하게 된 호타루, 뛰어난 직인이었지만 소중한 아들을 잃은 뒤 연극 소도구를 맡게 된 규조, 그리고 상급 무사 출신이지만 미래가 보장된 무사로서의 안락한 삶을 집어던지고 각본가가 된 긴지 등 2년 전 기쿠노스케의 복수를 지켜본 목격자들은 하나 같이 내밀하고 고통스러운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사연들을 품은 채 여기저기 치이다가 당도한 곳은 악처(아쿠쇼, 惡所), 즉 막부가 필요악으로 인정해 규제하고 관리하던 극장 마을이었고, 그들은 각자의 과거와 상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에도에 왔다는 15세 소년 기쿠노스케는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매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복수의 사연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절절하긴 하지만, 극장 사람들은 한편으론 기쿠노스케의 복수 준비를 도우면서도 동시에 그가 복수에서 손을 놓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복수의 대상이 자신에게 각별한 사람인 탓에 괴로움에 빠지고 만 기쿠노스케의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이 복수는 성공해도 전혀 기쁘지 않은 일이고, 실패할 경우엔 평생을 회한에 사로잡혀야 하는 일이란 뜻입니다. 극장 사람들의 이런 심경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돼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쿠노스케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마조마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신분과 나이를 떠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도우려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피의 복수를 전제로 이뤄진다는 이 아이러니는 이 작품의 핵심이자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고비키초의 복수는 복수 미스터리의 외양을 띠긴 했어도 천민으로 취급받던 에도 시대 극장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로지 무사의 길만 알고 살아온 소년 기쿠노스케가 극장 사람들 덕분에 또 다른 삶의 방식, 또 다른 가치관, 또 다른 꿈과 미래가 있음을 알게 되는 애틋한 성장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읽으면서 수시로 눈가가 뜨끈해지는 건 바로 이런 휴먼 드라마의 요소들 때문입니다.

미스터리가 해소되고 진실이 드러나는 막판 반전은 조금 일찍 눈치 챌 수 있어서 살짝 맥이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쿠노스케와 극장 사람들의 엔딩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허겁지겁 전력 질주하듯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복수극이 이렇듯 의외의 뭉클함과 애틋함을 남길 거라곤 예상 못했는데, 휴머니즘이 진하게 담긴 시대소설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는 나가이 사야코의 필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기억에 남을 책읽기가 된 것 같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을 비롯하여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다 좋아하는데, 부디 고비키초의 복수가 호응을 얻어 나가이 사야코의 다른 작품들도 머잖아 한국에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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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의 단검
이정훈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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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 김도형은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정신과 상담까지 받게 됐지만,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고 확신한 그는 상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했고, 후배의 도움으로 대기업 회장 아들의 뺑소니 혐의를 포착합니다. 또한 그자를 비호하거나 사건을 은폐하는데 일조했던 자들이 있음도 알게 됩니다. 김도형은 법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직접 그들을 단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둘씩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기 시작합니다. 김도형은 이 연쇄살인이 혹시라도 뺑소니의 진실을 덮으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더 살인범 수사에 열을 올립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김도형은 도리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복수라는 캐릭터 때문인지 네메시스는 소설, 특히 스릴러 장르의 제목으로 자주 차용되곤 하는 여신입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이 작품은 신화 속 복수의 여신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 경찰 소설입니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형사 김도형이 법에 의한 처벌 대신 직접 복수를 결심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관련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하고, 그 진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인간의 탐욕은 물론 복수심에 잠식된 인물들의 처절한 사연들이 공개되는 이야기입니다.

 

복수극답게 이야기 시작과 함께 악의 정체와 복수의 주체가 공개됩니다. 그런데 복수의 주체인 김도형의 응징이 시작되기도 전에 뜻밖의 연쇄살인이 벌어지면서 김도형은 물론 독자 역시 가벼운 혼란과 함께 연쇄살인범이 우연히 끼어든 제3의 인물인지 아니면 단검을 든 네메시스인지, 복수를 꿈꾸는 김도형의 아군인지 적군인지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동시에 김도형의 주변인물 중 그 누구라도 연쇄살인의 범인이 될 수 있음도 깨닫게 됩니다. 다만 범인의 동기를 짐작할 수 없어 궁금증을 품은 채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작가가 곳곳에 흘려놓은 작은 단서들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단서들은 막판의 연이은 반전의 토대가 되는데, 그 덕분에 일찌감치 첫 번째 반전을 눈치 챌 독자는 더러 있을지 몰라도 마지막 반전까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연쇄살인과 김도형의 수사 이야기가 다소 평범하게 전개됐다면, 중후반부터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복수 미스터리 서사는 연이은 반전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흥미진진함을 선사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개성인 연쇄살인범의 정체와 수법에 대해선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인데, 개인적으론 반전의 매력을 만끽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였는지 그다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호불호가 어떻게 갈릴지, 각각 어떤 의견들이 담겨있을지 궁금해지는데, 인터넷서점이나 SNS에 독자들의 서평이 충분히 올라오면 꼭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가장 아쉽게 느껴진 건 캐릭터, 구성, 문장 등 전체적으로 가볍다는 인상을 받은 점입니다. 읽는 동안 영미권 스릴러의 묵직함과 깊이가 수시로 떠오르곤 했는데, 아무래도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복수극이다 보니 가벼움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몇몇 디테일에서도 살짝 억지스러움이나 작위적인 느낌을 받곤 했는데, 혹시 김도형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후속작이 나온다면 이런 부분은 제대로 극복됐으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후반부에 후속작을 암시하는 듯한 떡밥을 남겨놓았기에 이런 기대와 바람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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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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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은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고 어엿하고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다양성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정욕의 주인공들은 다양성이나 소수자라는 범주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래서 미친 사람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특이한성적 취향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분출하는 성적 욕망을 억누를 수도,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 할 수도 없는 이들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정욕의 핵심 서사입니다.

 

10대 때부터 서로의 비밀스런 성적 정체성을 알고 있는 기류 나쓰키와 사사키 요시미치, 그리고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자로 오해받는 모로하시 다이야는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성적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부러 평범한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감으로써 자신을 숨기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극도로 꺼림으로써 자신의 비밀을 지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욕망을 풀 방법도, 비밀을 공유할 상대도 없는 암담한 현실과 희망이나 낙관은커녕 절망만 남아있을 뿐인 미래는 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관계는 잠시나마 이들을 희열에 들뜨게 만들지만 현실은 잔인한 코미디와 함께 이들을 파국으로 내몹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정욕(正欲), 즉 바른 욕망이라는 점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른 것인가? 바른 것은 누가 정한 것인가? 바르지 않은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과연 욕망에도 바른 것이 있고 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가?

사람들은 이성과 도덕이라는 잣대 아래 대다수가 지향하는 성적 욕망을 바른 것이라고 규정해왔고, 거기에서 벗어난 모든 형태의 성적 욕망을 바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여전히 편견과 혐오의 시선이 남아있지만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LGBTQ의 욕망은 더 이상 바르지 않은 것으로 매도당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욕의 주인공들처럼 LGBTQ에게마저 미친 사람취급을 받는 자들의 욕망은 눈곱만큼의 여지도 허락받지 못한 채 음지 중의 음지에서 숨을 죽여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순수하고 본능적인 욕망이 바른 것이겠지만, 세상의 잣대는 가차 없이 바르지 않은 욕망으로 처단할 뿐입니다. 그 세상의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정욕의 주인공들은 정말 바르지 않은 욕망의 소유자일까요? 그들의 욕망이 바른 욕망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오긴 올까요?

 

다양성이라는 말의 안이함에 돌을 던지는 작품.”, “이제 다양성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겠다.”라는 독자들의 서평처럼 정욕은 감당하기 어렵고 곤혹스런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작품입니다. 누군가에겐 공감의 여운을 남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피하고 싶은 불쾌감만 남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덕과 철학과 심리학에 걸친 난해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정욕의 해설을 맡고 정말 많이 후회했다. 이 이야기는 너무 벅차다.”로 시작되는 후반부의 해설100%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특정 물건이나 신체부위에 집착하는 온갖 페티시즘을 비정상적인 것’, ‘변태혹은 불법적인 것으로 치부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을 혐오 어린 시선으로 보기만 했지 그들의 욕망 자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아성애, 속옷 절도, 온갖 종류의 도촬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만 해소될 수 있는 욕망은 철저하게 단죄해야겠지만, ‘정욕의 주인공들처럼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할 뿐인 자들을 그저 미친 사람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과거 LGBTQ바르지 않은 것으로 억압했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욕의 주인공들에게 조금이라도 공감한 독자라면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해설자의 평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것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하고 특이한 성적 취향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욕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적잖은 충격과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과연 주인공들의 처지와 심리가 얼마나 잘 그려졌는지, 또 원작의 미덕이 얼마나 잘 반영됐는지 궁금해서라도 꼭 찾아보려고 합니다. 묵직한 돌덩어리처럼 남은 여운이 영화를 보고나면 더 무거워질지, 조금은 가벼워질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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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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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品再讀은 오래 전에 읽었지만 서평을 남기지 않았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제가 갖다 붙인 조잡한 타이틀입니다. 기억 속엔 명품으로 남아있지만 다시 읽었을 때 예전 그대로의 감흥을 전해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87, 오하이오 주 남부의 소도시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는 행크 미첼은 어느 날 형 제이콥과 형의 친구 루와 함께 눈 덮인 숲에서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합니다. 조종사의 시신 외에 비행기에 남아있던 건 무려 440만 달러가 든 더플백. 무직에 가난하기까지 한 제이콥과 루는 당장 돈을 나눠 갖자고 주장하지만, 행크는 돈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진 그럴 수 없다며 6개월의 유예기간을 제안합니다. 결국 행크가 돈을 보관하다가 6개월 후 나누기로 합의하지만, 간단한 계획은 얼마 못가 균열과 함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합니다.

 

출간 직후인 2009년에 읽었으니 자세한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세 남자가 눈 덮인 숲에서 추락한 경비행기와 돈다발을 발견하는 첫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스릴러의 쾌감보다는 외줄에 올라탄 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긴 기분 역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서평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는 그 조마조마한 심정이 실은 쫄깃한 긴장감을 훌쩍 넘어선 불쾌함, 또는 눈에 빤히 보이는 비극적 결말을 목도하기 위해 페이지를 넘겨야만 하는 기분 나쁜 중압감에 가까웠다는 점 때문입니다.

 

주인공 행크 미첼은 한때 변호사를 꿈꿨지만 지금은 몰락한 소도시에서 평생 회계원으로 늙어갈 게 뻔한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정도로 순둥이 같기도 하고, 아내 사라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범적인 남성이기도 합니다. ‘심플 플랜지금껏 이 책에 견줄 만한 서스펜스는 없었다.”는 스티븐 킹의 극찬대로 거액의 돈을 둘러싼 팽팽한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소시민 행크가 뜻밖의 큰돈을 발견한 뒤로 어떻게 탐욕의 화신이자 연쇄살인마로 변해가는 지를 그려낸 지독한 심리스릴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상당한 분량이 행크의 요동치는 심리를 묘사하는 데 할애되고 있는데, 그 대목들이야말로 심플 플랜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핵심입니다.

 

돈을 발견한 세 남자는 6개월의 유예기간에 합의를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들 사이엔 비밀과 거짓말, 탐욕과 적개심, 불신과 배신이 끼어듭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살인은 그들 사이의 균열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벌려놓았고, 그 균열은 끝내 피비린내 진동하는 참극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참극이 마무리된 후에도 큰돈을 둘러싼 위기는 그치지 않고, 행크는 돈을 들고 도망칠 수도, 돈을 포기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고 맙니다. 행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돈에 대한 탐욕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그 탐욕을 구현하기 위해 끔찍한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러야 한다. 우리가 한 일은 그럴 법하고 용서될 만한 일이라고.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상황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우리 잘못은 전혀 없다고. 우리가 저지른 일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뿐이었다.” (p339~340)

 

앞서 긴장감을 넘어선 불쾌함 또는 기분 나쁜 중압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이 작품이 재미없다는 뜻도 아니고, 불쾌감만 남기는 소설이란 뜻도 아닙니다. 다시 읽고 보니 그런 기분을 느꼈던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됐는데, 그건 주인공 행크에게 어떤 결말이 주어지는 게 맞는 건지, 즉 그가 제대로 처벌받기를 바라야 할지, 아니면 반대로 어떻게든 계획을 성공시켜 행복한 미래를 거머쥐기를 바라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의 화신이자 끔찍한 연쇄살인마로 추락했지만 선한 소시민이자 모범적인 남편 행크의 본질은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행크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한 이 이중적인 정체성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불쾌함과 중압감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억측에 가까운 역설이지만 어쩌면 이런 감정들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평까지 쓰고 나니 미루고 미뤄온 큰 숙제를 마친 기분입니다. 물론 처음 읽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무겁고 씁쓸한 여운에 짓눌리긴 했지만, 왜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극찬했으며 미국에서 전설의 데뷔작이라고 불리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심플 플랜의 여운이 좀 가시고 나면 스콧 스미스가 이 작품 이후 무려 13년 뒤에 내놓은 호러 소설 폐허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단 한 작품으로 서스펜스의 거장 소리를 들은 작가가 긴 공백 끝에 호러 소설로 복귀했다는 사실 때문에 늘 궁금했던 작품인데, 왠지 폐허역시 불쾌함과 기분 나쁜 중압감을 유발할 것 같아 기대감 못잖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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