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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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은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고 어엿하고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다양성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정욕의 주인공들은 다양성이나 소수자라는 범주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래서 미친 사람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특이한성적 취향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분출하는 성적 욕망을 억누를 수도,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 할 수도 없는 이들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정욕의 핵심 서사입니다.

 

10대 때부터 서로의 비밀스런 성적 정체성을 알고 있는 기류 나쓰키와 사사키 요시미치, 그리고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자로 오해받는 모로하시 다이야는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성적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부러 평범한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감으로써 자신을 숨기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극도로 꺼림으로써 자신의 비밀을 지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욕망을 풀 방법도, 비밀을 공유할 상대도 없는 암담한 현실과 희망이나 낙관은커녕 절망만 남아있을 뿐인 미래는 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관계는 잠시나마 이들을 희열에 들뜨게 만들지만 현실은 잔인한 코미디와 함께 이들을 파국으로 내몹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정욕(正欲), 즉 바른 욕망이라는 점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른 것인가? 바른 것은 누가 정한 것인가? 바르지 않은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과연 욕망에도 바른 것이 있고 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가?

사람들은 이성과 도덕이라는 잣대 아래 대다수가 지향하는 성적 욕망을 바른 것이라고 규정해왔고, 거기에서 벗어난 모든 형태의 성적 욕망을 바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여전히 편견과 혐오의 시선이 남아있지만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LGBTQ의 욕망은 더 이상 바르지 않은 것으로 매도당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욕의 주인공들처럼 LGBTQ에게마저 미친 사람취급을 받는 자들의 욕망은 눈곱만큼의 여지도 허락받지 못한 채 음지 중의 음지에서 숨을 죽여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순수하고 본능적인 욕망이 바른 것이겠지만, 세상의 잣대는 가차 없이 바르지 않은 욕망으로 처단할 뿐입니다. 그 세상의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정욕의 주인공들은 정말 바르지 않은 욕망의 소유자일까요? 그들의 욕망이 바른 욕망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오긴 올까요?

 

다양성이라는 말의 안이함에 돌을 던지는 작품.”, “이제 다양성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겠다.”라는 독자들의 서평처럼 정욕은 감당하기 어렵고 곤혹스런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작품입니다. 누군가에겐 공감의 여운을 남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피하고 싶은 불쾌감만 남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덕과 철학과 심리학에 걸친 난해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정욕의 해설을 맡고 정말 많이 후회했다. 이 이야기는 너무 벅차다.”로 시작되는 후반부의 해설100%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특정 물건이나 신체부위에 집착하는 온갖 페티시즘을 비정상적인 것’, ‘변태혹은 불법적인 것으로 치부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을 혐오 어린 시선으로 보기만 했지 그들의 욕망 자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아성애, 속옷 절도, 온갖 종류의 도촬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만 해소될 수 있는 욕망은 철저하게 단죄해야겠지만, ‘정욕의 주인공들처럼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할 뿐인 자들을 그저 미친 사람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과거 LGBTQ바르지 않은 것으로 억압했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욕의 주인공들에게 조금이라도 공감한 독자라면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해설자의 평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것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하고 특이한 성적 취향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욕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적잖은 충격과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과연 주인공들의 처지와 심리가 얼마나 잘 그려졌는지, 또 원작의 미덕이 얼마나 잘 반영됐는지 궁금해서라도 꼭 찾아보려고 합니다. 묵직한 돌덩어리처럼 남은 여운이 영화를 보고나면 더 무거워질지, 조금은 가벼워질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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