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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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品再讀은 오래 전에 읽었지만 서평을 남기지 않았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제가 갖다 붙인 조잡한 타이틀입니다. 기억 속엔 명품으로 남아있지만 다시 읽었을 때 예전 그대로의 감흥을 전해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87, 오하이오 주 남부의 소도시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는 행크 미첼은 어느 날 형 제이콥과 형의 친구 루와 함께 눈 덮인 숲에서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합니다. 조종사의 시신 외에 비행기에 남아있던 건 무려 440만 달러가 든 더플백. 무직에 가난하기까지 한 제이콥과 루는 당장 돈을 나눠 갖자고 주장하지만, 행크는 돈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진 그럴 수 없다며 6개월의 유예기간을 제안합니다. 결국 행크가 돈을 보관하다가 6개월 후 나누기로 합의하지만, 간단한 계획은 얼마 못가 균열과 함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합니다.

 

출간 직후인 2009년에 읽었으니 자세한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세 남자가 눈 덮인 숲에서 추락한 경비행기와 돈다발을 발견하는 첫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스릴러의 쾌감보다는 외줄에 올라탄 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긴 기분 역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서평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는 그 조마조마한 심정이 실은 쫄깃한 긴장감을 훌쩍 넘어선 불쾌함, 또는 눈에 빤히 보이는 비극적 결말을 목도하기 위해 페이지를 넘겨야만 하는 기분 나쁜 중압감에 가까웠다는 점 때문입니다.

 

주인공 행크 미첼은 한때 변호사를 꿈꿨지만 지금은 몰락한 소도시에서 평생 회계원으로 늙어갈 게 뻔한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정도로 순둥이 같기도 하고, 아내 사라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범적인 남성이기도 합니다. ‘심플 플랜지금껏 이 책에 견줄 만한 서스펜스는 없었다.”는 스티븐 킹의 극찬대로 거액의 돈을 둘러싼 팽팽한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소시민 행크가 뜻밖의 큰돈을 발견한 뒤로 어떻게 탐욕의 화신이자 연쇄살인마로 변해가는 지를 그려낸 지독한 심리스릴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상당한 분량이 행크의 요동치는 심리를 묘사하는 데 할애되고 있는데, 그 대목들이야말로 심플 플랜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핵심입니다.

 

돈을 발견한 세 남자는 6개월의 유예기간에 합의를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들 사이엔 비밀과 거짓말, 탐욕과 적개심, 불신과 배신이 끼어듭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살인은 그들 사이의 균열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벌려놓았고, 그 균열은 끝내 피비린내 진동하는 참극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참극이 마무리된 후에도 큰돈을 둘러싼 위기는 그치지 않고, 행크는 돈을 들고 도망칠 수도, 돈을 포기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고 맙니다. 행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돈에 대한 탐욕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그 탐욕을 구현하기 위해 끔찍한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러야 한다. 우리가 한 일은 그럴 법하고 용서될 만한 일이라고.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상황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우리 잘못은 전혀 없다고. 우리가 저지른 일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뿐이었다.” (p339~340)

 

앞서 긴장감을 넘어선 불쾌함 또는 기분 나쁜 중압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이 작품이 재미없다는 뜻도 아니고, 불쾌감만 남기는 소설이란 뜻도 아닙니다. 다시 읽고 보니 그런 기분을 느꼈던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됐는데, 그건 주인공 행크에게 어떤 결말이 주어지는 게 맞는 건지, 즉 그가 제대로 처벌받기를 바라야 할지, 아니면 반대로 어떻게든 계획을 성공시켜 행복한 미래를 거머쥐기를 바라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의 화신이자 끔찍한 연쇄살인마로 추락했지만 선한 소시민이자 모범적인 남편 행크의 본질은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행크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한 이 이중적인 정체성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불쾌함과 중압감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억측에 가까운 역설이지만 어쩌면 이런 감정들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평까지 쓰고 나니 미루고 미뤄온 큰 숙제를 마친 기분입니다. 물론 처음 읽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무겁고 씁쓸한 여운에 짓눌리긴 했지만, 왜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극찬했으며 미국에서 전설의 데뷔작이라고 불리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심플 플랜의 여운이 좀 가시고 나면 스콧 스미스가 이 작품 이후 무려 13년 뒤에 내놓은 호러 소설 폐허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단 한 작품으로 서스펜스의 거장 소리를 들은 작가가 긴 공백 끝에 호러 소설로 복귀했다는 사실 때문에 늘 궁금했던 작품인데, 왠지 폐허역시 불쾌함과 기분 나쁜 중압감을 유발할 것 같아 기대감 못잖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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