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집
리브 앤더슨 지음, 최유솔 옮김 / 그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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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코니와 순종적이고 연약한 리사는 아기 때 양모(養母) 이브에게 입양된 쌍둥이입니다. 가학적인데다 모든 걸 통제하길 원했던 이브는 쌍둥이에게 잔혹한 차별대우와 함께 정신적인 고문을 일삼았는데, 특히 코니에겐 이른바 생존게임, 즉 몇 푼의 돈만 쥐어준 채 낯선 도시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하곤 했습니다. 쌍둥이가 26살이 된 해, 이브가 뜻밖의 사고로 사망하자 코니는 해방감을 만끽하지만, 그녀가 남긴 잔인한 유언장 때문에 새로운 생존게임을 시작할 처지에 놓입니다. 리사에게 거의 모든 재산을 물려준 이브는 코니에겐 뉴멕시코주 닐라의 황량한 사막에 있는 작은 빨간 집만을 물려줍니다. 문제는 그 빨간 집이 위치한 닐라는 오래 전부터 무수한 여자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끔찍한 장소라는 점입니다.

 

일그러지고 비틀린 소시오패스들이 난무하는 독특한 스릴러입니다. 15살 나이에 출산과 동시에 자기보다 27살 많은 남자와 결혼한 뒤 오랫동안 끔찍한 학대를 당하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이브, 죽은 아버지를 꼭 닮아 잔혹하고 반항적인 10대가 된 이브의 딸 켈시, 그리고 이브에게 입양된 뒤 감금과 학대와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성장한 쌍둥이 코니와 리사 등 이 작품 속의 주요 인물들은 평범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캐릭터들입니다.

또한 20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 닐라에서 벌어진 무수한 납치살인사건 역시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의 소행으로밖에 볼 수 없고, 닐라를 지배하고 있는 음울하고 불온한 분위기라든가 납치살인사건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주민들의 비밀스런 행태는 그 자체로 무형의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집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닐라의 빨간 집에 살게 된 코니의 이야기로, 죽어서까지 자신에게 가혹한 생존게임을 강요하는 이브의 태도에 의문과 분노를 품던 코니가 닐라에서 벌어진 연쇄 납치살인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위험천만한 탐문을 전개하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20여 년 전, 실종된 10대 딸 켈시를 찾기 위해 닐라에 온 이브가 온갖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힘으로 분투하는 이야기인데, 재미있는 건 이브의 분투가 결코 상식적인 모성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일종의 게임, 즉 반드시 켈시를 찾아내 굴복시키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됐다는 점입니다.

 

코니와 이브의 여정은 언제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쉴 틈 없이 벌어집니다. 또한 20여 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코니와 이브는 마치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해 달려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같은 사건들이 두 사람의 행보에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코니와 이브는 닐라에 만연한 비밀과 거짓말을 걷어내고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애쓰지만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서있는 섬뜩한 빨간 집은 두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남깁니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줄거리와 캐릭터 모두 꽤 흥미진진한 서사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 자체가 산만해진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두세 번만 비틀어도 괜찮았을 텐데 지나치게 비틀고 또 비튼 나머지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렸습니다. 사건뿐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과 내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선지 주요 인물들의 경우 다 읽고도 이 사람은 이런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결말부도 다소 불만스러웠는데, 연쇄 납치살인의 진실도, 실종된 딸 켈시의 행방도 딱히 반전이나 해결의 매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일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하기도 했고 일부는 작위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알게 됐지만 ?’는 모호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닐라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소시오패스의 광란의 결과이니 ?’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돼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수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적잖은 오타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조사(助詞) 오타가 특히 많았고, 주요 지명 중 하나가 샌타페이-산타페이-산타페로 계속 바뀌기기도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른 건 몰라도 오타만큼은 어떻게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두 개라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이라면 실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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