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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사라지던 밤 1 ㅣ 나비사냥 3
박영광 지음 / 매드픽션 / 2022년 6월
평점 :
7년 전, 하태석 형사는 12살 소녀들을 납치 살해한 것이 확실한 김동수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독직폭행을 저질러 중징계를 받고 지방으로 좌천됐습니다. 물증도 없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자 김동수는 유유히 법망을 벗어났고 사건은 여전히 미제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김동수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납치된 소녀들의 가족이 범인이란 걸 알게 되자 하태석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서울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에 지원한 하태석은 김동수 사건의 전말은 물론 7년째 미제상태인 소녀들 납치사건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7년 전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이 하태석의 수사를 방해합니다. 소녀들 사건의 재수사를 위해선 죽은 김동수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지만 하태석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히곤 합니다.
‘나비사냥’(2013), ‘시그니처’(2017)에 이은 ‘나비사냥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소녀가 사라지던 밤’은 시리즈 첫 편에서 하태석 형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김동수 사건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소녀들의 가족이 김동수를 살해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7년 전 두 소녀를 납치 살해한 것이 분명한 김동수의 범행을 입증하는 것, 그리고 메인 스토리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결국 한줄기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경기-인천 일대 연쇄실종사건’이 막간극처럼 끼어듭니다.
하태석과 미제사건전담팀의 1차 미션은 소녀들 사건이지만, 죽은 김동수에 대한 조사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경찰 상층부는 김동수 사건을 서둘러 종결하려고만 할뿐 하태석의 조사에 조금도 협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7년 전처럼 갖은 핑계를 대가며 하태석의 행보를 방해할 뿐입니다. 결국 조직 내부로 시선을 돌린 하태석은 경찰을 그만둘 각오까지 다지며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현직 형사만이 풀어낼 수 있는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경찰조직 내부의 문제, 현장을 뛰는 형사들의 애환, 서무와 관제 등 빛나진 않지만 꼭 필요한 경찰 업무 등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디테일이 곳곳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대형로펌의 변호사, 법최면 전문가, 범죄피해자 가족모임 등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서사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아마 한국에서 출간된 경찰 미스터리 가운데 ‘나비사냥 시리즈’만한 리얼리티와 볼륨감을 갖춘 작품을 찾아보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스릴러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는 ‘죄책감 가득한 트라우마이자 반드시 풀어야 할 평생의 숙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마지막 무대이자 총결산편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작품에서 김동수의 범행을 입증하고 소녀들의 유해라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태석에게 과연 얼마나 잔혹한 시련들이 닥칠지 읽기 전부터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그 걱정의 몇 배나 되는 고난들이 하태석과 미제사건전담팀을 위기에 빠뜨리곤 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꽤 야박한 평점을 준 이유는 전작들에 비해 군더더기와 사족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고받는 대화는 불필요할 정도로 길게 늘어지고, 스토리와 무관한 대목에도 적잖은 분량이 할애됩니다. 동일한 정보가 거듭 설명되기도 하고, 꼭 필요한 정보도 지나칠 정도로 여러 겹으로 포장돼 설명됩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하태석에게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 대목, 그러니까 클라이맥스로 진입하는 곳에서부터 이 군더더기와 사족이 더욱 많아진 점인데, 정작 몰입도가 가장 높아야 할 지점에서부터 거의 스킵하듯 책장을 넘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작가가 온 힘을 다했다는 건 알겠지만, 그 도가 지나친 나머지 거꾸로 독자의 진을 뺀 느낌입니다.
한 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잔혹한 스릴러를 어지간히 많이 읽기도 했고 또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소녀가 사라지던 밤’의 마지막 부분은 도저히 읽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해서 결정적인 몇 페이지는 건너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마지막 부분 때문에 책을 다 읽고도 여운은커녕 지독한 씁쓸함만 남았는데, 그래선지 ‘없었으면 더 좋았을 과잉’으로 여겨진 게 사실입니다.
엔딩만 보면 ‘나비사냥 시리즈’는 이 작품으로 마무리될 것 같은데, 언젠가 하태석의 이야기가 또다시 독자를 찾아올지는 작가 외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하태석의 복귀는 언제라도 환영하겠지만 군더더기와 사족과 견딜 수 없는 참혹함만큼은 충분히 덜어내진 상태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