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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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3주를 앞두고 연인 안나가 종적을 감추자 라파엘은 패닉에 빠집니다. 무엇보다 안나가 사라지기 직전 세 구의 참혹한 시신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고백한 탓에 라파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 사는 퇴직형사 마르크와 함께 안나를 찾아나선 라파엘은 얼마 안 가 안나가 오랫동안 신분을 바꿔 살아온 사실, 11년 전 벌어졌던 일명 하이츠 키퍼 사건’, 10대 소녀들을 감금하고 폭행했던 사건에 안나가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안나를 찾으려면 그녀의 과거를 파헤쳐야 한다고 확신한 라파엘은 파리에서의 조사를 마르크에게 맡긴 뒤 안나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으로 향합니다.

 

기욤 뮈소의 작품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브루클린의 소녀는 거침없는 속도감과 빠른 국면 전환에 관한 한 가장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안나를 찾기 위한 라파엘과 마르크의 조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그녀에 관한 뜻밖의 정보들 때문에 엄청난 속도와 굴곡을 지닌 롤러코스터처럼 전개됩니다. 마치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과속방지턱에 큰 충격을 받으면서도 과속과 역주행을 거듭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라파엘과 마르크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안나가 자발적으로 모습을 감춘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납치된 게 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그 누군가는 라파엘과 마르크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사건 관련자들을 처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조사는 단순한 실종된 연인 찾기가 아니라 악취와 악의가 진동하는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까지 확장됩니다.

안나의 과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라파엘과 마르크는 11년 전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왔다가 하이츠 키퍼 사건에 연루된 클레어 칼라일이란 소녀가 안나의 실체임을 확신합니다. 마르크가 파리에 남아 하이츠 키퍼 사건을 파헤치는 동안 라파엘은 뉴욕으로 날아가 클레어 칼라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뜻밖에도 같은 시기 그곳에서도 의문의 죽음이 있었던 걸 알게 되곤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줄기에 엮여있음을 깨닫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밝혀질 때마다 거기에 연루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조사해야 할 사건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복잡하게 얽혀있고, 무대마저 파리와 뉴욕으로 양분되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빛의 속도로 책장을 넘기는 와중에도 넘쳐나는 새 정보와 인물들을 머릿속에 담느라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정보와 인물들 속에 안나의 행방은 물론 과거의 진실을 가리키는 작은 조각들이 숨어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수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얼른 책장을 넘기고 싶으면서도, 뭔가 놓친 게 없을까 싶어 다급한 마음으로 활자들을 노려봐야 하는 고도의 몰입감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과거와 현재, 파리와 뉴욕이라는 시공간 속에 배치된 여러 사건들은 대반전과 함께 해소됩니다. 따지고 보면 우연과 필연이 운명처럼 얽힌 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극이 벌어진 셈인데, 그 모든 우연과 필연을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탐문과 추리를 벌인 라파엘과 마르크의 여정은 우여곡절과 반전과 충격으로 가득 차 있어서 막판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기욤 뮈소는 마지막까지 뜻밖의 반전을 남겨놓아서 독자로 하여금 책을 덮을 때까지 조금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가끔씩 마주치곤 했던 장황한 사족들입니다. 딱히 어느 대목이라고 지목하긴 어렵지만, 인물이나 배경을 소개할 때라든지, 사건과 상황을 묘사할 때라든지 한두 줄이면 충분할 것을 한두 페이지에 걸쳐 지루하게 묘사한 경우가 종종 목격되곤 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땐 건너뛰고 싶기도 했는데, 물론 마음만 그랬고 결국 한 줄도 건너뛰진 못했습니다. 어쩌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조급함이 과도해진 나머지 멀쩡한(?) 대목을 사족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만점에서 별 1개를 빼게 할 정도로 아쉬웠던 게 사실입니다.

 

기욤 뮈소는 읽은 작품보다 안 읽은 작품이 훨씬 더 많은 작가인데, ‘브루클린의 소녀를 읽고 나니 우선 스릴러 서사에 충실한 작품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가씨와 밤처럼 재미있게 읽은 작품도 있지만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처럼 실망이 더 컸던 작품도 있어서 다른 독자들의 평을 살펴가며 목록을 만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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