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는 천국에 있다
고조 노리오 지음, 박재영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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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목이 베어져 살해된 여섯 명의 남녀가 바닷가 대저택에 모입니다. 그곳은 현세에서 일명 천국 저택으로 불리던 곳으로 여섯 명이 참혹하게 살해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살해될 당시의 상황만 기억할 뿐 자신의 이름이나 직업조차 잊어버린 여섯 남녀는 왜 자신들이 이곳에 모인 건지, 자신들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추리를 벌입니다. 또한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야만 이 천국을 떠나 제대로 성불할 수 있다고 믿으며 협력합니다. 다만 자신들 가운데 한 명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기에 저택은 늘 미묘한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이른바 특수설정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동일범에게 살해된 여섯 명의 영혼이 기이하게도 범행이 벌어진 바로 그 저택에 모여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미스터리인데, 말하자면 영혼 판타지와 본격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셈입니다. 현세에서 천국 저택으로 불리던 그곳은 죽은 자들이 모인 곳이란 점에서 진짜 천국이기도 한데, 그런 탓에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살해당한 이유도, 자신을 살해한 자도 모르는 영혼들이 범인을 밝히고 진상을 추적한다고 하면 당연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이 작품은 대체로 화기애애(?)하고 때론 코믹하기까지 한 뜻밖의 분위기를 발산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름과 직업은 물론 살해당한 이유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가운데 한 사람이 범인이지만, 다들 기억이 휘발된 탓에 무턱대고 의심을 품기보다는 어정쩡한 협력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시간들이 몇 날에 걸쳐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친분과 우정이 싹트다 보니 어느 시점엔 딱히 누가 범인이라고 해도 특별히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다는, 아주 묘한 공동체 의식까지 생겨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진상 규명을 포기하고 이대로 사건을 잊는다면 여섯 명이서 영원히 함께 놀 수 있어요.”라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판타지 설정 속에서 본격 미스터리를 이끌어가는 건 명탐정 역할을 맡은 입니다.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아침마다 저택에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현세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정보를 손에 넣은 는 끊임없는 추리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매번 다른 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가 번번이 반론에 고개를 숙이곤 하지만 그는 명탐정 역할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추리를 통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해법을 찾아내는데, 그 대목부터 연이은 반전이 터지면서 클라이맥스에 진입하게 됩니다.

 

일부 작품 때문에 특수설정 미스터리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살인자는 천국에 있다는 판타지와 본격 미스터리가 잘 조합된 작품이라 마지막 장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음울한 설정과 달리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한 점도 좋았고, 복잡하지 않게 잘 짜인 판타지의 규칙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고조 노리오가 일본에서 다른 작품도 내놓았다고 하는데, 한국에 출간된다면 꼭 찾아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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