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과거 전통인 성리학을 오늘날 독자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책들 중 내 마음에 드는 몇몇 책들이 있다.

 수당부터 송명청에 이르기까지 문헌(사상부터 문학서까지도)에 정통한 피터 볼이 내가 좋아하는 저자 중 한명이다. 그의 저서 중 두권이 번역되어있다.

 

 

 

 

 

 

 

 

 

 

 

 

 

 

 

<역사 속의 성리학>과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이다. 앞의 책은 성리학이 북송과 남송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과정을 성리학 외부와 내부 양방향으로 설명한다. 외부로는 수당시대 인물과 남송시대 인물의 가치관과 관심을 비교하며 750년대와 1050년대를 사는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바램을 갖고 사는지 보여준다. 이 간극을 채울, 그 변화를 설명할 내용을 적합해보이는 증거를 통해 증명한다. 단순히 신유학이 개인 수양을 강조했다는 식으로 가치관의 변화나 어떤 정신을 강조하지 않고 그런 가치관이 사람들에 설득력있게 수용되는 과정을 타당하게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성리학 내부로 돌아와 세부적인 성리학 내용을 말하고 남송이후 원명청대에 끼친 영향까지 살핀다. 이런 흐름이 저자를 좋아하는 이유다.

뒤의 책도 역시 좋다. 여기에서는 정주학이 꽃피기 직전까지, 신유학이 성립하게 되는 과정을 당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온다. 차례를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2장 사대부의 변화
 3장 당 왕조 초기 조정의 학문과 문장 혹은 문학 창작
 4장 755년 이후 문화의 위기
 5장 문치 정책과 문학적 문화 : 송대 지성적 문화의 시작
 6장 사상가, 그다음이 문학적 작가 : 11세기 중기 지성사적 조류
 7장 완전한 질서를 위하여 : 왕안석과 사마광
 8장 소식(蘇軾)의 도 : 개성을 다하되 전체와 통일을 이룬다
 9장 정이와 도학의 새로운 문화

 

시대 별 특징을 잘 짚어주면서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변화의 원인을 정말 잘 그려낸다. 복잡한 문헌변천사가 잘 정리되어있고, 문헌의 이해를 시대상황을 반영시켜 설명하여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런 설명방식들은 서양수사학전통에서 기인한 논증 형식에서 온다. 보통 다른 입장을 갖는 사람들 간 논쟁과 헷갈리기 쉽지만, 논증은 그런 좁은 행동과 말하기를 넘어, 독자에게 설득력있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오랜 세월 잘 다듬어진 글쓰기 형식을 말한다. 잘 씌여진 논증의 경우 위와 같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타당한 구성을 통하여 드러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 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글쓰기 형식은 달라 보인다. 글의 내용이나 저자의 이해가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흡족하게 드러낼 구성을 잘 못만들어 내는 거 같다.

다음은 김교빈의 <이언적>이다.


 

 

 

 

 

 

 

 

 

 

 

 

 

 

오랜 기간을 준비한 충분한 내공이 녹아들어 있는 멋진 저서다. 그렇지만 그 내공이 구성을 통하여는 볼 수 없다.

 제1부 이언적의 시대와 생애
 1장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
 2장 사상적 배경
 3장 이언적의 생애와 저술
 4장 이언적 관련 유물과 유적
 제2부 이언적의 철학 사상
 1장 태극논쟁
 2장 <대학자욱> 개정
 3장 단본청원의 심학
 4장 치중화의 경세관
 5장 이언적 철학의 의미
 제3부 이언적의 저술
 1장 시(詩)
 2장 부(賦)
 3장 잡저(雜著)
 4장 무극태극 논쟁 편지

 

제1부에 담긴 내용을 읽어보면 저자가 갖고 있는 중국유학과 한국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성이 달랐다면 그 이해를 좀 더 정교하고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거 같다.

구성과 연관된 글쓰기 과정은 결국 글쓰기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목적, 주제에대한 주장잡기, 읽을 독자를 설정하기, 이런 것들이 모여 구성을 낳기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저자의 깊은 이해와 자료모음과 해당분야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이 포석없이 함께 섞인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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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현상학 뉴아카이브 총서 6
미셸 앙리 지음, 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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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책들을 읽으려는 동기는 무척 다양하고, 그만큼 현상학을 입문시켜주는 방식도 다양할 수 있을 거 같다. 몇 가지 떠오른 동기 중 하나는, 몇몇 책들에서 저자가 지금까지 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현상학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아니면 아예 폄하하는 모습니다. 그렇지만, 현상학을 옹호하든 그렇지않든, 다들 본격적으로 현상학을 응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매끄럽게 전개하지는 못하는 인상이었다.

내가 책들에서 본 현상학은 현상학자체로 쓰이기 보다는 다른 관점을 제공할 도구로서 활용을 언급당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현상학자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잘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후설의 책을 직접 탐색하기에는 철학배경이나 시간이나 수고가 엄두가 나지 않아 그 주변에서 기웃기웃대고 있다가 이 책을 만났다. 이 책도 그리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후설의 현상학을 근본적인 방향에서 정리하고 설명해나가면서 자신의 현상학을 제시하기 때문에, 나름 현상학을 입문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점이 있다. 그리고 번역자의 한글 번역본 참조와 번역어 선택이 초보자가 읽는데(이해는 둘째치고)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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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 - 세계의 중심이 이동한 천 년의 시간
피터 히더 지음, 이순호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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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히더의 역사 책들은 신선한 주장과 그 주장을 떠받치는 알찬 증거들로, 여타 저자의 책들과는 다른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 글쓰기 태도가 학계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30페이지 분량의 논문과는 달리 900페이지 다되는 분량 속에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며 기하학같은 논증을 펼쳐내는 모습을 보면, 책 읽을 때도 그런 진지함에 반응되어 집중이 된다.

비슷한 시기(로마제국 쇠퇴부터 유럽이 탄생할 때까지)의 여러 소재를 다룬 여러 관점의 책들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바바리안들이 유럽을 탄생시키는 모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서양 중세사>는 개론서답게 큼직큼직한 사건들로 시간과 공간이 잘 나열된 역사를 보여준다. 게르만족 이동은 보통 훈족에 쫓겨 일어났다고 보고, 그 원인으로만 훈족을 다루고는 하는데, <훈족의 왕, 아틸라>에서는 훈족의 지도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훈제국을 번영시키고 그뒤 쇠퇴하게되었는를 속도감이 느껴지는 분량으로 잘 짚어준다. <바바리안>은 약간 색다른 방향으로 가는데, 실제 부족들을 현실감있게 다가가려고, 고고학 성과를 바탕으로 '바바리안'들을 소개한다.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으며, 스스로 발품을 팔아 기존에 잘 소개되지 않은 그들의 면면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피터 히더의 책은 이주로 생긴 정치사회적인 결과보다는 이주과정 자체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게르만족, 훈족, 슬라브족 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때로는 공통점을 보이고 때로는 고유함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춰가며 이성적이고 설득력있는 주장을 펼쳐간다. 일반적인 유럽사에서 소홀히 다루기 쉬운 여러 빈틈들을 훌륭히 메꿔가며 유럽의 탄생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응원하는듯한 모습이다.

켈트족의 나라 영국에 게르만족이 이주하는 모습, 서로마 제국 멸망 후 게르만족 왕국들이 이주와 함께 자리잡는 모습, 동로마 제국 멸망 후 민족 이동 모습, 로마제국 쇠퇴와는 다른 게르만족 제국들의 쇠퇴과정 등, 생각해보면 궁금증이 날만한 유럽사 빈틈을 날카롭게 메꾼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늘날 유럽의 모습과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중세 직전 유럽 각국(부족)의 개성있는 모습이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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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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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이명박정권에 대한 반응 중 하나는 돈과 밀접한 혹은 이전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던 가치들이 점차 돈의 영향권안으로 포함되면서 생기는 판단의 기준들을 점검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뜨겁게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우리들에게 선보인 샌델의 문제제기 방식은 수많은 동의와 그리고 우리 삶에 침투한 무분별한 공리주의를 반성하는 계기를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의를 한 걸음이라도 낫게 실천할 해결방식은 무엇일까를 열심히 찾았지만 샌델은 답을 주는데는 큰 관심이 없이 계속 정의와 관련된 다양한 상황과 미묘한 시각차이, 그리고 여러 입장간 비교를 던져주는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공리주의가 무차별스럽게 스며든 우리 일상이 얼마나 어떻게 정의를 훼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작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같은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어떤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공리주의와 거의 대등한 돈의 힘이 우리 일상 가치를 변화시키고 흐뜨러 놓는 모습을 그의 장기인 윤리학을 다루는 방식으로 꼼꼼하게 그러나 논증의 방향은 잘 느낄 수 있도록 생동감있게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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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과 문학
박우수 / 동인(이성모)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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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에 대한 접근은 무척 다양하다. 일반인들이 수사학이라고 하면 떠올리기 마련인, 논어에 나온대로 교언영색하는 부정적인 인상부터 논리학, 언어학 같은 최신 성과를 반영한 수사학 분야의 이해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다. 수사학을 화제로 올리는 순간부터 이 혼란스러움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이지만, 길고 긴 수사학 역사를 알고 이해하면 그런 오해는 많이 수그러들 수 있을 거 같다. 우리 동아시아 전통과는 다른 논증과 수사학 문화를 거의 직접적으로 체험해 볼 기회가 이 책 <수사학과 문학>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수사학으로 활약한 세 부류,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려진대로 독자적인 철학과 사상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수사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도교가 고대인들을 자기 종교로 설득시킬 수 있었던 까닭들, 고대인들을 감흥시키고 설득시킬 종교내용을 제안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베이컨, 니체, 흄, 셰익스피어 들의 작품 중 수사학과 관련된, 수사학이 잘 드러난 작품들을 골라 수사학적 맥락을 소개해준다.

 

전반적으로 색다르면서 진지하게 접근한 수사학 입문서다.

 

수사학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각 시대마다 부각되는 부분을 찾아 풀어 주기 때문에 수사학에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으면 시대별 흐름에 공감되기 조금 어려울 거 같은 단점은 있다. 저자가 책 제목으로 잡은 '수사학과 문학"으로는 이 책에 담긴 시대별 중요한 문화와 사상을 수사학적 입장에서 다룬 연구 성과를 제대로 가리키지는 못하는 거 같다.

 

수사학을 정의하는 다양한 방식은 박성창 <수사학>을 참조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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