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종교적이라기보다 거의 문화적이다. 이 문화적인 시선에서 몇몇 모습들은 전형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중세에는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여러 수도사들의 모습, 뉴튼같은 교리를 벗어나는 이들에게 생사의 재판을 판결하는 모습, 데카메론에 나오는 타락한 이들이 중세 기독교를 떠올리는 전형들이다. 이런 전형적인 장면들 말고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의 면면들이 지중해와 서유럽 역사에는 가득차있다.

예수 제자들과 교부들에 의한 초기 기독교와 중세 기독교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다. 예를 들면 게르만족에게 기독교란? 로마제국 후 이탈리아에서 기독교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기독교 모습은? 같은 다양한 입장에서 오는 의문들이 있다.

이런 연구에 매진한, 이쪽 방면 유명한 학자로 피터 브라운이 있다. 그의 연구는 로마제국의 후기와 유럽 중세 초기의 종교적 문화와 종교적 변혁에 집중되어 있다. 직접적으로 이 시기를 연구한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의 등장>이 있다.

 

 

 

 

 

 

 

 

 

 

 

 

 

 

 

유럽으로 한데 뭉뚱그려 인식된 기독교 수용과정도 생각과는 다른 여러 경로로 형성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0년부터 1000년 사이 불교가 가져온 정서적인 안정감과 통일성을 떠올리면, 유럽에서 기독교가 근대국가 생기기전까지 기여한 바를 어느정도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경전과 부처, 승단으로 이루어진 불교문화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국가형성이라는 틀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얼마간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그 틀에서 지역마다 시대마다 기독교를 수용하고 변화시킨 과정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중세 전의 유럽인의 실제 모습을 느끼게해줄 중요한 원천이고, 불교문화권과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불교 문화권과의 큰 차이점이라면,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승단을 위한 '율'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여, 기독교에서는 시대마다 맡았던 역활에 따라 요구되던 윤리가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교 경전과 성경은 내용상으로도 큰 차이점을 보인다. 물론, 불교 경전 중에도 부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경전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스스로 수행하여 부처가 된다는 내용인데 비하여,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이 믿음을 전제로하는 다양한 가치관과 윤리관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신도에게 주어질 선택과 자유로운 영역이 매우 다르고, 그에따라 형성된 문화도 발전되고 심화한 영역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된다. 이 측면에서 유교가 보장한 영역도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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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랑스, 독일과는 달리 르네상스 이전 이탈리아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다.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이민족 그 자체인 프랑스, 독일과는 달리 로마제국의 심장부였던 이탈리아는 매우 복잡한 상황을 오랜 기간 직면하게 된다. 여러 곳에 있던 주교 중 한명이었던 로마의 주교가 교황으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이기도 하다.

로마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말고도 제국멸망 후 이탈리아를 다룬 여러 책들을 이미 내놓았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바다의 도시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가 그렇다.

 

 

 

 

 

 

 

 

 

 

 

 

 

 

 

세 시리즈 모두 이탈리아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는데 도움을 준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상업적 능력을 활기차게 보여주고, <십자군 이야기>는 여러 차례 진행된 십자군들이 실제 어떤 영향을 끼치고 당시 십자군을 보낸 나라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십자군 전쟁을 둘러싼 배경을 다양하게 묘사한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적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만큼 복잡하게 얽힌 이탈리아를 보여준다. 이탈리아는 사라센인, 노르만족, 랑고바르드령, 신성로마령, 교황령이 어지럽게 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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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개인의 내면' 이라고 하면 그다지 관심사항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중세 서유럽인, 중세 이탈리아인, 르네상스 시대 사람까지가 궁금하고 이들의 실제 생활은 어떠했는지, 이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했는지 궁금해왔다. 알렉산더대왕이 출현하고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하고, 공화국로마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점령하고, 캐사르가 암살당하고 그 계승자가 황제로 등극하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되고, 게르만족 침입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이정도까지가 우리문화와 전혀다른 이색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인들의 오래전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에 이르는 근대화과정은 어떤면에서는 너무나 친숙하고, 거의 궁금할게 없는 회색빛의 음울한 도시이야기가 전반에 흐르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이고, 관련된 사상의 줄거리만은 너무도 쉽게 간략화되어, 누구든지 필요하면 자기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 선입견과 예상을 이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결과보다는 과정중심의 개인에 대한 이해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개인의 출현은 흔히 르네상스의 성과라고 평가된다.

 

 

 

 

 

 

 

 

 

 

 

 

 

 

너무도 유명한 야콥 부르쿠하르트의 책이다. 이 책이 발간되면서 르네상스시대의 개인의 형성이라는 주제가 큰 연구테마로 잡혔다. 그런 책 중의 하나로 좀 더 구체적인 서양 개인의 내면 형성을 꼼꼼하게 보살핀 리하르트 반 뒬멘 <자아의 발견>이 있고, 이를 정리해 분량을 줄인 <개인의 발견>이 있다. 앞의 책은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고, 아마도 분량문제겠지만, 뒤의 책은 나와 있다.

 

 

 

 

 

 

 

 

 

 

 

 

 

 

책에는 개인이 의식을 발전시킨 여러 계기와 장치들이 모아졌있고,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구체적인 과정중심으로 살핀다. 어떤 면에서 근대적 개인은 산업혁명을 통해 폭발한 경제적 인간을 가르키는 말이지만, 어떤 면에서 중세의 신과 결별한 후 세속적 인간이 추구한 개인의 내면을 가르키기도 한다.

 

 

 

 

 

 

 

 

 

 

 

 

 

 

루소의 자서전인 <고백록>이 대표적으로 그런 개인을 보여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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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으로 할만한 얘기들이라면, 우선 토마스 쿤의 표현대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과학사적 소개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어떻게 양자역학에 접근하거나 양자역학을 배울 수 있을까가 또 얘기거리다.

 

보통 상식과는 떨어진 양자세계를 탐색하기 위하여 입문서와 교양서들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가면서 출판되는 것 같다. 크게 수식이 들어간 본격적이면서 친절하게 상세한 방향과 수식을 배제한 채 가까운 비유를 들면서 양자세계를 묘사하는 방향, 두가지가 있다. 어느 방향이나 흡족하게 양자역학을 다루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다. 밑에 책들을 나열한 것처럼 본격적인 방식은 할게 너무 많고, 비유적인 방식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한 분량으로 한권의 책으로 낸다는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권으로 내려는 시도들은 계속해서 부족함을 충족시키려 아마 끊임없이 계속될것이다

 

양자역학이 성립한 변천사를 다룬 <얽힘의 시대>

 

 

 

 

 

 

 

 

 

 

 

 

 

 

수식이 들어간 본격적인 입문서들이 있다. 왼쪽은 물리강의 중 가장 유명한 파인만의 강의 제3권. 양자역학에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들이 모여 양자역학의 수식들을 함께 설명한 책이다.

 

 

 

 

 

 

 

 

 

 

 

 

 

 

본격적인 방향에 도움이 될만한 방식이 있기는 하다. 물리학과 학생이 배우듯이 접근하는 것이다. 양자역학도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중요한 커리큘럼 중 하나이고, 다른 과정에 대한 이해가 양자역학의 이해를 높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양자역학과 관련된 과정을 골라서 배우면 괜찮을 거 같다.

 

이름을 보자. '양자'와 '역학'으로 되어 있다. '역학'은 중력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일반역학과 통하는 내용이고, '양자'는 거시 세계에서는 별로 볼 일이 없고 그나만 가장 친숙한 '전자'와 '빛'을 들 수 있다.

 

전자기학 책은 공대에서도 많이 쓰지만, 물리적인 관점이 뚜렷한 전자기학 책은 따로 있다. 보통 교과서로 많이 쓰이는 Ronald Wangsness와 이론에 충실하면서 이론이 놓치기 쉬운 물리적 관점까지 시원하게 다루는 David Griffiths의 전자기가 있다.

 

 

 

 

 

 

 

 

 

 

 

 

 

 

이런 배경지식을 익힌 후에는 수학방법에 익숙해져야 된다. 이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수학계산에 익숙져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양자역학을 성립시킨 수학방법에 대한 물리적인 의미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는 쉽게 다다르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그제서야 양자역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또다른 얘기거리가 생긴다. 예를 들면 양자 세계에서만 성립하는 구체적인 물리현상들이 그렇다. 바로 이것들이 양자역학책 후반부와 고체물리, 양자광학, 양자화학 등에 있는 내용이다. 

 

 

 

 

 

 

 

 

 

 

 

양자역학 책은 아무래도 양자역학 원리 설명을 위한 기본서이고, 실제 물리적인 현상을 살펴 보기에는 쉽지 않다. 여러 방향으로 고체물리, 반도체물리, 양자광학, 양자화학, 저차원 물리계 등으로 파고 들면서 양자역학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봐야 그 가치를 물리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될 거 같다.

 

양자책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자잘자잘한 계산이 한번씩 끊기기(적분, 행렬, 복소수관련 계산 등등) 시작하면 겨우 잡은 흐름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이럴 때 필요한 수학을 모아 놓은게 있는데, 교과명으로는 수리물리학되겠다.

 

 

 

 

 

 

 

 

 

 

 

 

 

 

 

 

유명한 저자로는 Arfken 과 Boa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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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명명하며 노자를 읽어내는 분은 아직 못본거 같지만, 노자가 씌여졌다는 춘추시대의 시대정신에 맞춰 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최진석<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곽점본을 바라보는 입장은 아쉽다.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기는 했지만,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특정한 주제를 골라내서 편집'하였다는 입장으로 접근했다. 이런 입장은 곽점본의 독립적인 해석을 가로막는다. 이석명의 노자는 완전히 정면 승부다. 백서본, 왕필본, 곽점본을 한글자 한글자 다 따져본다.

 

 

 

 

 

 

 

 

 

 

 

 

 

이석명은 죽간본이 발췌편집됐다기보다 충분히 독립적인 관점을 가진 노자라고 보고 책을 쓰고 있다. 백서본, 왕필본, 죽간본등 노자의 여러 판본이 시대마다 원하는 해석을 내리려는 의도때문에 책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다른 해석을 의도하고 없는 말을 덧붙이는 작업이 있었다고 보고, 이를 세밀하게 구별하는 작업을 펼친다.

 

고대 중국 문헌에 대한 고증학은 현대이전에도 여러 움직임이 있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고고학과 마찬가지로 계속 최신연구가 진행되는 첨단분야다. 주역에 대한 고증학은 김상섭이라는 분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벌써 여러 권이 성과물로 나왔다. 주역의 역경과 역전을 분리하여, 역경이 씌여진 서주시대, 제후와 귀족들에게 점서로 사용되던 춘추시대, 일반 백성들에게도 점서로 활용되던 전국시대, 그리고 철학서로서 해석이 포함된 전국시대 말기와 진한시기 별 주역을 고증하여 각각 책으로 출판하였다. 앞으로 한나라 상수역과 송나라 도서역을 차례로 출판한다고 한다.

 

이러한 고증 후에 읽는 노자들은 정말 다를 것이다. 

도교입장 이 포함된 하상공주가 있다.

 

 

 

 

 

 

 

 

 

 

 

 

위진시대 왕필의 노자주가 있다.

 

 

 

 

 

 

 

 

 

 

 

 

 

그외 불교입장에서 노자에 주를 단 책들이 있다.

노자의 고증은 문헌이 형성된 시기의 전후인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지배적인 사상과 철학의 수준 점검이 빠질 수 없다. 일부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노자라는 문헌은 노자제자가 작성했다는 의견에 따르면 공자와 동시대인 노자의 활동시기를 문헌의 연도라고 볼 수 있고, 이즈음의 사상을 짚어봐야 한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역전이 형성되기전 주역에 반영된 세계관을 살피는 것이다. 노자연도보다 이전인 서주시대 춘추시대에 반영된 주역의 사상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외 나머지 서주시대 춘추시대 문헌 연구는 필수가 되겠다.

도덕경이 표현한 내용의 독자성은 이같은 동시대 문헌비교로 한층더 뚜렷이 나타난다. 독자성으로 인한 파급력은  논어가 유가지식인층을 만들어낸 것에 못지안을만큼 끊임없이 중국역사내내 나타난다. 종교와 권력이 일치했던 '천'개념으로부터 노자가 일깨워놓은 '도'개념은 엄청난 진보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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