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줄리앙 의 책을 새로 접했다. <불가능한 누드>다. 이 책은 <무미예찬> 과 함께 중국미술비평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중국고전도 그렇지만, 중국미술도 오늘날 시선으로 한눈에 그 아름다움을 다 잡기는 쉽지 않은데, 이는 동아시아 문화는 형이상학을 위한 추상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점을 말로 풀어 적당히 설명해내기는 쉽지 않은데, 우리가 현대한국인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당연시하고 익숙하지만, 그 원래 맥락을 모르는 지점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말하자면, 서양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느정도 추상적인 가치관들을 여러 과정을 통해 수용했고, 동아시아 책읽기 전통도 낯설지 않기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고, 모르면서 익숙한 점들이 많다. 예를 하나 들면 과거나 현대 중국인 저자들의 고전읽기나 인물전기에서 흔히 보게되는, 관련 문헌이나 주석을 거의 빠짐없이 읽어내 해석하고 글을 쓰기때문에 생기는 경향이 그렇다. 필력도 느껴지고 정보도 어느정도 주지만, 뭔가 겉돌고 있는 느낌이 있다. 이런 글쓰기도 나름의 장점과 시선을 갖고 있지만, 우리 현대인이 갖는 의문점이나 의문을 해결해주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양의 문제도 있다. 중국고전과 이를 설명해줄 서양고전에 둘다 정통하고 어느 선까지 능통해야 할 수 있기도 하다. 이 두 문화에 정통하기는, 언듯,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던 사람이 서양고전문화에 진입하는 것이, 서양문화권에 있는 사람이 동아시아 고전문화에 진입하는 것보다 쉬울거 같지만, 서양문화를 동양문화로 설명하기는 정말 어려울거 같다. 정량화하고 계량화하는 객관적 관점은 서양문화의 전통인 거 같다.


<불가능한 누드>는 중국전통미술과 서양전통미술을 '누드'라는 키워드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차가 없는게 아쉬웠지만, 로마문자로 숫자로만 챕터를 해놓은 것이 읽다보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예를 들면손자병법같은 고전읽기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똑같이 동아시아 문화와 서양문화를 대비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읽어 내는 순서가 예상되는 고전읽기와는 다른 미술읽기다.
















서양문화가 누드를 어떻게 중요하게 다루는지를 얘기하면서, 고대중국이 왜 누드에 관심이 없었는지 다 방면으로 보여준다.

3장에서 중국 회화사를 일부 다룬다. 당연히 <중국화론유편>이 계속해서 인용된다.

4장에서 해부학적 지식과 누드 사이의 관련을 다룬다.

5장에서 '형상'에 초점을 맞춘 서양문화를 설명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를 인용한다. 형상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정지'에 집중하게 됨을 얘기한다.

6장에서 사람그리기와 바위그리기를 같은 선상에서 설명하는 중국그림을 언급한다. 형상에 중요한 요소인 경계에 주목하지 않는 중국미술을 설명한다.

...

이런 식으로 서양과 동아시아를 오가면서 설명해낼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그 관련의 깊이를 만들어 낸다. 다 읽고나서도 저자가 못한 얘기들이 당연히 더 있겠구나 생각이 들고, 두 문화의 차이를 어느정도 미술영역에서 설명해냈다는게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수아 줄리앵의 책 중 그림에 관련됐을 싶은 다른 책들도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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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흐(Christof Koch)의 신작 <The Feeling of Life Itself> 를 보고 있는 중이다. 이 분의 글에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아서 모을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모았다. 시작은 <의식의 탐구>였고, 여기서 엄청 좋아서 모으기 시작했다.















이 세 권이 <The Feeling of Life Itself>에서도 언급되는 '의식은 경험'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관련된 책이다. 이번 책 서문에서 밝혔듯이, <의식의 탐구>는 저자가 수년간 수업에서 다룬 주제를 가지고 주관적 경험과 관련된 수많은 심리학과 신경학 문헌들을 살펴, 내게 큰 지적인 자극을 주었다. <Consciousness>는 과학적인 성취와 발견을 자신의 자서전같은 톤으로 살폈다. <The Feeling of Life Itself>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은 다루지 않고, '의식은 경험'에 주로 초점을 맞춰 논증을 만든다.

<빨강보기>에서 보여준, 의식을 돌아보는 신선한 접근들 중 하나인 현재성 과 어쩌면 통하는 시선이 '의식은 경험'이라는 관점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인간수준의 '의식'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는지, 그 의식의 존재의의 같은 것을 살핀다고 한다.


그외 좀더 본격적인 신경학책도 구해 좀 봤지만, 거의 도움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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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들의 완고함이나 한계를 오늘날 관점으로 쉽게 지적하는 만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선형적으로 단순화시킨 부분이 많아 보인다. 마치 얇은 국사책에서 단순하게 정리된 어떤 시대 흐름처럼말이다. 조선에서도 중국에서도 선형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현실의 필요성과 당위를 잘 짚어내 줄 방법도 필요하고 전문적인 해석과 안목도 필요하다. 적절히 시작점을 잡고, 어떻게 도착지까지 올 수 있었는지 차분하게 샅샅히 훑어 올라가는 시선이 필요하다. 조선은 성리학이 도입되어 자리잡고 독자적인 조선유학이 나올 때까지, 중국은 도학(성리학)이 성립될때까지 과정을 그런 차분한 방식으로 샅샅이 조사한 책들을 읽고 있다.
















유학이나 성리학이라는 개념속에 너무나 쉽게 한데 뭉뚱그려진 몇몇 차이점들이, 역사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자리잡게 됐는지를 다방면으로 멋들어지게 논증으로 잡아준다.


고려말 조선초 지식인들에게 유학이 도입되어 수용된 과정은, 거의 중국에서 성리학(도학)의 탄생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학의 여러 입장 중 이미 도학의 입장에서 한차례 걸러진 내용이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도학을 수용한 고려말 조선초 지식인들은 어떤 이들일까? 그리고 이들이 들여오고 수용하고 퍼져나간 유학의 정체와 내용은 무엇이고 어디에 소용이 있었을까? 

유학이 기반하고 채택하는 텍스트들은 있지만, 과거이상사회에 대한 기록에 가깝고, 그 쓸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활전반을 살펴 보아야 한다. 그런 지식인들의 현실적인 맥락하에서, 그들에게 가치있는 지식이나 그들이 무엇을 왜 중요시 했을까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몇백년동안 긴 세월 속에서 지식인들의 지적 움직임을 차근차근 쫓아다녀야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고대 텍스트들, 공자, 맹자, 주자, 주역 등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것도 알 수 있다. 즉 텍스트 바깥의 현실상황이 이 텍스트들을 좌지우지 한 것이다. 그 후에 스스로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면 조선 성리학이 자리잡은 뒤인, 조선 중, 후기 유학자들의 선택과 해석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끝나면, 다시 물어 볼 수 있다. 유학자들에게 지식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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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에서 목격한 독특한 '논리 철학'의 여러 주장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입체감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빛을 밝혀줄 등대 같은 내용이 <빨강보기>에 적지않게 들어가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반기를 대표하는 <논리 철학 논고>에는 대담하고 과감한 주장들이 있고, 처음 접할 때 그 박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고, 분석철학의 탄생에 기여한만큼 이성적이고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내용도 적지 않은데다가 그 내용들을 받치는 논리에 신비롭게 빠져들기 쉽다.

그러나 그런 논리를 적용할 실제 언어적 증거들에 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결국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연구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었다. 

언어와 관련된 비트겐슈타인의 주장들이 어째서 그런 모습들일까 하는 이야기들이 이 책 <빨강보기>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이야기들은 크게 의식을 이루는 것들이 감각으로부터 직접 형성됐다기보다는, 오히려 감각과는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감각적인 것을 수용해서 통합해서 지각으로 느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감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으면서 우리 의식과 관련깊은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고 그 의미하는 바를 논증으로 만든다. 원래 대학교에 초청받아 강의한 내용을 다듬어 쓴 책이라 내용과 형식 모두 눈 앞에 청중을 대상으로 한 느낌이 들 정도로 구어체여서 딱딱하지 않고, 그렇지만 담긴 내용은 몇번을 음미해도 새로운 감상이 나올 정도로 깊이가 있다.

어쨌든 이렇게 감각과 의식 사이의 관계는 <논리 철학 논고>의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와도 깊이 엮여있어 서로 울림을 준다.

그외 생각의 재료 같은 방향으로도 이해를 높여 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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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학이나 일반수학, 행렬 같은 것을 배울 때, 그리고 중력이론, 통신이론 같은 것을 배울 때, 벡터는 스칼라, 텐서 등과 함께 어떤 방향정보, 양정보를 담아내는 방법임을 수없이 계산하고 연습하면서 알게 된다. 그럼에도 계산과 떨어진 영역에서 '물리적 이해'를 들여다 볼 수 있지 안을까 조금 시도하다가 금방 실타래가 엉긴듯 되버려 손을 놓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이해를 도울 강의나 책들을 보지만, 그런 관점으로 조금이라도 진전되고 끝이거나, 그 작은 진전을 밑천삼아 다른 얘기를 한다거나 그런다. 

속는 셈치고, 또다른 벡터 얘기 책을 본다. 시작은 아주 좋아 보인다.
















기하학적인 벡터라니, 계산 중심의 대수적인 벡터말고, 벡터를 깊은 얘기로 풀어낸다는 것이 정말 감동이다. 이제 앞부분만 본 뒤지만, 시간들여 음미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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