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들의 완고함이나 한계를 오늘날 관점으로 쉽게 지적하는 만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선형적으로 단순화시킨 부분이 많아 보인다. 마치 얇은 국사책에서 단순하게 정리된 어떤 시대 흐름처럼말이다. 조선에서도 중국에서도 선형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현실의 필요성과 당위를 잘 짚어내 줄 방법도 필요하고 전문적인 해석과 안목도 필요하다. 적절히 시작점을 잡고, 어떻게 도착지까지 올 수 있었는지 차분하게 샅샅히 훑어 올라가는 시선이 필요하다. 조선은 성리학이 도입되어 자리잡고 독자적인 조선유학이 나올 때까지, 중국은 도학(성리학)이 성립될때까지 과정을 그런 차분한 방식으로 샅샅이 조사한 책들을 읽고 있다.
















유학이나 성리학이라는 개념속에 너무나 쉽게 한데 뭉뚱그려진 몇몇 차이점들이, 역사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자리잡게 됐는지를 다방면으로 멋들어지게 논증으로 잡아준다.


고려말 조선초 지식인들에게 유학이 도입되어 수용된 과정은, 거의 중국에서 성리학(도학)의 탄생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학의 여러 입장 중 이미 도학의 입장에서 한차례 걸러진 내용이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도학을 수용한 고려말 조선초 지식인들은 어떤 이들일까? 그리고 이들이 들여오고 수용하고 퍼져나간 유학의 정체와 내용은 무엇이고 어디에 소용이 있었을까? 

유학이 기반하고 채택하는 텍스트들은 있지만, 과거이상사회에 대한 기록에 가깝고, 그 쓸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활전반을 살펴 보아야 한다. 그런 지식인들의 현실적인 맥락하에서, 그들에게 가치있는 지식이나 그들이 무엇을 왜 중요시 했을까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몇백년동안 긴 세월 속에서 지식인들의 지적 움직임을 차근차근 쫓아다녀야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고대 텍스트들, 공자, 맹자, 주자, 주역 등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것도 알 수 있다. 즉 텍스트 바깥의 현실상황이 이 텍스트들을 좌지우지 한 것이다. 그 후에 스스로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면 조선 성리학이 자리잡은 뒤인, 조선 중, 후기 유학자들의 선택과 해석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끝나면, 다시 물어 볼 수 있다. 유학자들에게 지식이란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