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불법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베풀더라도 결코 남에게 베풀었다는 생각이나 남을 구제했다는 생각이 남아있어서는 안 됩니다. - P91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에게 있습니다. 탐욕과 어리석음과 게으름 때문에 스스로를 구속하여 자유롭지못합니다. 스스로를 괴롭혀 편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생이라고합니다.
중생은 나의 것, 나의 재산, 나의 행복만을 위해 끝없이 달려갈 줄만 알지,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터득하려는 욕심은 낼 줄 모릅니다.우리가 중생이기를 그만두고자 한다면 욕심과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팔정도(八正道, 지혜와해탈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방법)를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 P95
도인에게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인연의 조화임을 알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세상이이토록 혼란하고 다툼이 많은 것은 옳은 주장이 없어서일까요? 오히려 옳은 것이 너무 많아 문제일 것입니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기 뜻만 관철시키려 하니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진실을 아는 이들은 이렇게 어리석은 집착을 갖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단지 인연의 조화임을 알고 나와 남을 위해서 정말 이롭다는 판단이 서면 옳다고 여겼던 것도 그르다고 바꿀줄 압니다. - P100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중생은 진실을 이야기해주어도지 않을뿐더러, 진실을 밝혀준 선각자를 바보 취급하거나 정신 나간사람 대하듯 합니다.
스스로는 손익을 분명히 따져 영리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탐욕에 눈이 멀어 넓은 안목으로 보지못합니다.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교법을 널리 펴셨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고 불법을 비방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상급의 선비는 도에 관해 들으면 부지런히 그것을 실천한다. 중급의선비는 도에 관해 들으면 어떤 때는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급의 선비는 도에 관해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노자』, <동이편> - P102
불법 가운데 오래 머물다 보면 극락에 가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불가에 있기만 하면 따로 찾을 것도 없이 있는 자리가 그대로 극락이고 불국토입니다.
이미 바다 속에 있다면 물을 찾을 일이 없고, 등산을 하면 산이어디에 있냐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항상 불법 가운데 머물고 있다면 부처님 찾을 일이 따로 없지요. 몸과 마음이 떨어져 있으니까 찾을 일이 있고 돌아갈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염불을하거나 화두를 들게 되면 몸과 마음은 불법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항상 불법과 진리 속에 몸과 마음을 담고 있다면 영원히 근심걱정을 떠나게 되니 이것을 일러 해탈이라고 합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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