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무렵 로마가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은 다 정복해서 대제국을 이루었던 대략 200년 동안의 국제질서를 팍스 로마나 Pax Romana 라고 한다. ‘팍스‘가 라틴어로 피스 Peace, 평화니까 팍스 로마나는 로마식의 평화, 로마가 완전히 모든 것을 장악하고 결정할 수 있는 체제 안에서의 평화라는 말이다. 겉으로는 무역을 한다. 외교를 한다고 하지만 팍스 로마나 체제에서벗어나려 하거나 저항하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유럽에 팍스 로마나가 있었다면 동아시아에는 2천년 동안 중국이 주도권을 주었던 팍스 시니카 Pax Sinica, 즉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가 있었다. 중국이 하늘처럼 가장 높은 나라여서 다른 나라는 무조건 중국에 복종하고 복속해야 했다. 작은 나라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모시면, 덩치 큰 중국은 반대급부로 작은 나라들을 보살펴 준다는 사대자소 事大字小라는 중국식국제질서에는 일방적인 압제나 착취가 아니라 보호도 해주는 의리관계가 작동했다.
삼국시대까지는 우리가 중국 밑에 있지 않았다. 특히 고구려는 수나라나 당나라에 조공을 바않아서 오히려 맞먹으려고 했치거나 그 밑에 들어갈 생각이 아예 없었다. 영토 규모가 작지다.
중국이 주변 국가들을 다스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천문을 이용한 농업기술 정보였기 때문에그 날짜를 아는 기술을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명나라는 주변 국가들이 보낸 동지사에게세배를 받고, 그다음 해의 파종 시기나 수확에 필요한 절기들, 예컨대 입춘, 입하,입추,입동, 춘분,하지,추분, 동지,청명, 곡우 등 농사에 중요한 날짜를 알 수 있는 농사 달력인 능력을줬다.
중국에서 가져온 능력에 따르면 비가 온다는 청명, 곡우에 비가 안오는 경우도 많았다. 세종은 거기서 벗어나 우리 절기에 맞춰 씨 뿌리고 수확하려 했을 것이다. 해시계 앙부일구 仰釜日晷를 만든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신들이 명나라가 알면 큰일 난다며 거세게 반대했지만결국 만들어 사용했다.
영화 <천문>(2019)에서 세종이 천문기구 간의 簡儀를 만드는 것을 두고 ‘명나라가 허락하지않을 거‘라고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너는 명나라의 신하냐 조선의 신하냐‘라고 묻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무력을 강화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세력을 키운 영국 못지않게 일본이 부러워했던 나라가 네덜란드다. 유럽 최초의 무적함대를 만든 네덜란드와 스페인 무적함대를 꺽고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를 누리는 영국. 이 두 나라는 중화 문명권 변두리에서 설움받던 일본이 선택한새로운 국제질서의 모델이자 중심이었다.
무력을 중요성을 깨달은 일본은 1868년,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 부국강병을 핵심으로 한개혁을 시작했다. 메이지유신 明治維新을 실행한 것이다. 국비로 인재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며 열심히 유럽을 따라 배운다.
일본은 유럽 열강을 보고 배워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를 깨뜨리고 일본 중심의 천하 질서를세우려고 했다. 나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만주 침략, 중국 대륙 침략에는 천대받던 것에 대한일종의 복수심이 작용했다고 본다.
일본은 섬나라 영국이 이룬 팍스 브리타니카를 보면서 섬나라인 일본도 얼마든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여기며 팍스 자포니카를 꿈꿨다. 중국이 누렸던 권세를 누리고 싶어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에까지 들었지만, 패전하면서 미국 밑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질서로 들어가 첫 번째 중간 보스가 됐다.
일본이 미국에 굴종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미국 유학은 잘 가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도 잘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일본은 언젠가 미국의 힘이 떨어지면 중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미국은 이미 저성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일본도보고 있으니까
지금 일본이 미국의 중국 경제 견제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속마음에는 그런 비수가 숨겨져 있다. 소리장도 笑裏藏刀. 공손한 태도로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가슴 속에는 비수를 품고있는 것이 일본이라고 봐야 한국 외교가 뒤통수를 맞지 않을 수 있다.
7세기 중엽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백제의 지배층을 비롯한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다. 백제는 패망 이전에도 일본 왕실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유민들에게신라는 자기네를 쳐서 쫓아낸 적국이니 적대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고 한반도는 ‘빼앗긴 땅‘이었을 게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겹쳐서 애증이 교차하는 곳, 한반도 1986년 출간된 최인호의 장편소설 《잃어버일본에 있린 왕국에 이런 사정이 잘 묘사되어 있듯이 백제와 일본은 매우 가까웠다. 백제 18대 전지왕이 돌아와서 왕위를 승계했을 정도로 일본 왕실과 백제의 왕족들은 가까웠다. 또한 백제가 불교 등 선진문화를일본에 전수해 주었기 때문에 신라에게 패망한 후 유민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본의 지배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국제질서의 중심인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싶었다. 그런데 중국이 조공을 아무한테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초 일본은 중국한테 소개 좀해달라고 조선에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보다 아래라고 봤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토가 되기전, 지금의 오키나와에 있던 당시 류큐왕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칠 수 있는 나라였다. 일본은 최소한 조선만큼은 대접받고 싶었으나 끝내 무시당한 열패감과 조선이 도움을 주지 않은 데 대한 원망이 컸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을 당시 대만 사람들은 청일전쟁에 패한 후 청나라가 자기네들을서슴지 않고 버렸다는 데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공내전(1927-1949)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패한 장제스의 국민당이 1949년 난데없이 대만으로 도망와서 대륙 수복의 기지로 삼은 데에도 불만이었다. 오늘날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의 민진당이 대륙 수복 대신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뿌리가 있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중국 정치의 중심에 가까이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역사적으로 중국에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계속 유지했다. 조공을 바치고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고 한자를 쓰면서도 중국 문화에 동화되지않은 독특한 독자성과 정통성은 고수한다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우리말을 유지하고 우리 문자를 새로 만들어 쓰고 역사도 고유하게 정리해 왔다. 우리말 발음과 비슷하게 표기하도록 만든 한글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민족의식이 확실하게 뿌리 내리지 않았을까. 지리적으로 중국과 매우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또 중국한자를 1,500년 이상 쓰면서도 고유한 말과 글자를 사용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이렇게 ‘적‘을 설정하고 그 적을 악마화시키는 건 기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어간다. 국내 정치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권력을 빼앗아 오기 위해 정부가 하는 일은 뭐든지 비판하면서 정부와 여당을 악마화한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서도 누군가를 악마로 지목해야 한다. 악마가 최소한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일제시대 만주국과 조선에서는 그 악마를 중국인으로 잡은 거다. 그들을 가리켜 부르던 ‘되놈‘이라는 말 속에는더럽고 거짓말 잘하고 음흉한 이미지가 농축돼 있지 않나. 중국 문화권에서 미개한 족속이라고 멸시하며 이르던 오랑캐라는 말보다 더 얕잡는 말이 ‘되‘다. 일본은 신생 제국으로서 하나라도 더 협조자를 끌어내기 위해 덩치도 크고 역사가 긴 중국을 악마로 설정했고 조선 사람들한테 그런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국민당 정부가 일본에 치받히고 공산당에 쫓겨서 난징으로 그리고 충칭까지 밀려가면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데리고 다닌 것은 오랜 우호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외교의 전통 원칙이었던 사대자소의 정신에따라, 즉 조공바치던 나라를 보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서였을 수도 있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집권 말기 북한의 핵·미사일 때문에 사드를 주한 미군기지 내에 갖다 놓는 걸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드 배치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사드 체계의 일부인 엑스밴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2천킬로미터나 된다. 따라서 주한미군 기지 내 사드 배치로 인하여 미국은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가있는 화북·화동 지방과 동북3성 일대의 군사적 움직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게 됐다. 바꿔 말해, 북한 핑계를 대고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한 사드로 중국이 미국의 손바닥 안에 들어간 셈이 된 것이다. 중국의 한한령은미국이 대중국 압박정책을 실행하는 데 협조한 한국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컸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시작한 2010년부터 경제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국강병의 원리에 따라 중국의 군사력도 더 강화될 것이다.
힘과 이익으로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피해를 적게 볼지, 그러려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외교를 해야 할지, 이 문제를 고민해서 그에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도 우리와 비슷하게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반감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찝쩍거리더니 중국을 심지어 패배자로까지 만들었다는 원한 같은 것이다. 특히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려고 1937년 12월부터1938년에 걸쳐 난징 인민 수십만 명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학대한 난징대학살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잡아떼지만 중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과하고 배상을 하지 않으면 상종하지않겠다는 입장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중국이 일본한테 패배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 치욕스럽게 시달렸던 기억이 있는 데다 지금 일본이 미국 등 여러 동맹국가 뒤에 숨어 실질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도록 부추기고 있으니아마 중국으로서는 미국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을거다. 표면적으로는 앞장서 밀고 들어오고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이 귀찮고 밉지만 그 뒤에 일본이 숨어 있다는 걸 아니까. 중국으로서는 기회만 오면언젠가 한번은 일본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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