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 속에 홍차를 주문하고 여자가 준 책을 읽기로 했다. 전에 잡지에서 읽은 작품이었다.
누나도 그렇고, 와타야에게 ‘알고 있다‘라고 말한 것도그렇고, 히노와의 약속을 깬 것도 그렇고, 갖은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수선해서 소설의 세계에 좀처럼들어갈 수 없었다. - P163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지 누나는 웨이터에게 홍차를주문했다. 1년 반 만에 만나는 건데도 어제 헤어졌다가오늘 다시 만난 사람들 같은 분위기였다. - P165

"누나는 일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가계를 꾸렸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래도 계속 썼다. 지금껏아버지가 도전 중인 《문예계> 신인상에 몰래 응모해 그해6월에 투고한 작품이 10월 최종 후보작으로 남았다.
아쿠타가와상을 위한 등용문이라고 이야기되는 상이다. 10대가 거기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쾌거라할 수 있었다. - P168

나는 당시 누나가 소설가의 길을 포기하려 했다는 것을알고 있다. 아버지가 집에없을때 유선전화로 담당 편집자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NTREPRIS믿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가 통화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맞대응하고 있었다.
재능이 있어도 그 때문에 가족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라고 했다. - P169

"누나는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야단쳤지. 그러니까 나도야단칠게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안 돼. 제발 부탁이야. 소설가가 되는 게 누나 꿈이었잖아?"
누나는 잠자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기를 쓰고 말했다.
"이 집에 꼭 계속 있을 필요도 없어. 아버지는 내가 보살펴드릴게." - P170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뭔가 칭찬할 점이 있다면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는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반년밖에 안 된 어린애였다는 것이다.
애써 참아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사실은 많이 무서웠다. 내 생활에서 누나가 사라진다 - P170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부터누나는 서서히 퇴직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버지 옆 이부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작별을 깨달았다.
"가게?"
아버지가 깨지 않게 살며시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현관에서 신을 신는 누나에게 말했다.
앉아 있던 누나가 일어섰다. 돌아서서 맑은 눈으로 나를 꼼짝 않고 쳐다봤다.
"도루...... - P172

"지금은 이렇게 날마다 아무 일 없는 듯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여름방학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 히노는 어떻게 될까.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기억장애라는 사실을 안다. 수첩등을 읽어 서서히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낮이 되어도학교에 가지 않는다.
남아도는 시간과 눈부시게 환한 햇빛 속에서 히노는 무슨 생각을 할까 - P192

히노에게는 어제까지 봄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느새 여름이 되어 있는 셈이다. 놀랐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한 일일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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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는 풍부한 맛뿐만 아니라 한때 풍부한 부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했다. 이 작은생선은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원인이었다.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건 아니었다. 당시 페루는 바닷새의 구아노 guano(마른 새똥)을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구아노는 질산염과 인이 풍부하고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아서 인기 높은 비료였을 뿐아니라 화약의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어서 화약 제조에도 사용되었다.

페루의 구아노는 태평양 연안의 섬들에 모여 사는 새들인 가마우지와 부비booby(얼가니새)의배설물이다. 이 새들의 주된 양식은 생선, 특히 칠레 남쪽에서부터 페루 북쪽을 잇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영양소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멸치들이다.

구아노가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는 페루만이 아니었다. 1856년 미국 의회는 ‘구아노제도법Guano Islands Act‘를 통과시켜서 아무도 살지 않고 다른 나라 정부의 관할 아래 있지 않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구아노가 있는 섬은 미국 시민이 점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 덕분에 미국은 태평양과 카브리해의 100개가 넘는 섬을 점거해서 페루산 구아노 무역을 독점하고있던 영국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에 진행된 기술 혁신으로 원자재 수출길이 막힌 사례가 이외에도 여러 건 있다. 영국과독일에서 인공 염료가 발명되면서 전 세계 천연염료 산업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때 중국이 차를 독점 생산하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인도, 케냐, 스리랑카도 주요 생산국이되었다. 이 모든 것은 많은 사람이 ‘천연자원‘이라 생각하는 상품이 실은 식민주의의 산물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식민 통치자들이 상업적으로 이윤을 낼 수 있는 작물을 원산지에서빼내 와 식민지로 가져가서, 많은 경우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플랜테이션에서 기른 결과라는뜻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높은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산업화밖에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혁신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근원인 제조업분야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에서 미성숙한 제조업체들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보호해야 한다는논리를 유치산업론 infant industry a rgument‘이라 부른다. 경제 발달과 아동의 성장 발달을 비슷하게 보는 관점에서 나온 용어다.

자유 무역의 본고장이라는 현재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영국과 미국은 경제 발전 초기에는세계에서 가장 강한 보호주의 국가였다. 그들은 산업적 주도권을 획득한 후에야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다.

유치 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한때 경제적 새우였던 나라들 18세기의 영국과 19세기의미국,독일, 스웨덴, 20세기의 일본, 핀란드, 한국 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고래로 성장하지못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1988년까지 외제 자동차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일본산 차는 1998년까지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운용해 현대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클 때까지‘보호막이되어주었다. 수십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 차를 견뎌 내야했다는 의미지만, 이런 식으로 보호받지 못했으면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성장은커녕 살아남기조차힘들었을 것이다.

자국의 ‘자유 기업‘ 체제에 대해 높은 긍지를 보이고 영웅적인 기업가를 늘 칭송해 마지 않는미국마저 현대 경제에서 ‘집단적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통해 발전한 나라다. 미국이야말로 ‘유치산업론‘을 발명하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자국의 어린 기업들이 성장할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보호주의의 장벽을 높게 둘러쳐서 우월한 외국 제조업체, 특히 영국의 제조업체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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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배움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진정한 독서를 할 수가 없다. 배움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학문에 뜻을 두려면 먼저 바탕을 세우는 것이 필수이다. 그 바탕은 바로 효(孝: 부모에 대한 효도)와 제(悌: 형제간의 우애)이다. 그것으로 바탕을 세우면 자연히 학문은 몸에 배게 되고 학문이 몸에 배고 나면 독서는 별도로 그 세부 단계를 논할 필요가 없게 된다. 가난한 학생으로서 처신을 잘하는 방법은 오로지 독서를 하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서는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아이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아니고 또 촌마을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가까이에 두고 스승으로 삼을책 한두 권을 갖는 것이 독서의 큰 보람이요 행복이다.

일상의 작은 행복과 깨달음은 큰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하고 순간이동을 기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사람들을 만나고,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들. 그 사소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이 진정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논어와 서양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한다고 하여도 받아들이는 이의 그릇이 작다면 티끌만큼도 배우고 실천하기가 힘들 것이다. 반면에 동화책을 읽어도 배우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 지극하다면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살아가며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는 가끔 동화책이나 아동 도서를 펼쳐 들어라. 그 속에 삶의 기본이 되는 진리가 모두 담겨 있을 것이다. 얻고자 하면 얻지 못할 것이 없고 배우고자 하면 배우지 못할 것이 없다. 사소하다고생각되는 그 속에서 크나큰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결코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군자가 책을 지어 세상에 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진가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만일 내 책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너희보다 나이가 많다면 아버지처럼 모시고 너희와 비슷한 연령이라면 형제처럼 지내도 좋다.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어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친다고 치자. 그렇게 시체가 된 몸이 차가워지기도 전에 이름부터 먼저 사라지는 자가 된다면 이는금수일 뿐이다. 금수인데도 그것을 원할 것인가.

다산의 편지 中

백날 책만 읽는 제나라 환공이 될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의 슬기로움을 깨닫는 것이 좋다. 깨달은 이후 직접 수레바퀴를 깎아보면 어떨까. 기록하지 않는 삶의 경험은과거 속으로 매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배움이 없는 이는 금수와 같다.
학문은 우리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학문은 제일의 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병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 사물마다 법칙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수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에 대해서 수없이 글과 편지로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도덕, 혹은 예술에 관해 질문조차 하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 않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마음속에 약간의 성의만 있다면 아무리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는 법이다. 집에 책이 없느냐? 재주가 없느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다산의 편지 中

늘 궁금증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궁금한 것이 늘어가는 법이니 말이다.

다 같은 우리 백성이다.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다 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멍청하면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악을 퍼뜨린다. 반면 누구는 어질면서도 아랫자리에 눌려있어 그 덕이 빛을 못 본다. 그래서 붕당을 없애고 공평하고 바른 도리를 넓히며, 어진 이를 등용하고 못난 자를 몰아내어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바로 ‘정‘이다.
반드시 경학(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하여 바탕을 다진 후 옛 역사책을 섭렵하여옛 정치의 득실을 따지고 그것이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늘 ‘오륜 오륜‘ 하지만 붕당의 화가 그치지 않고 정치인을 반역죄로 몰아넣는 옥사도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군신유의의 도리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

다산의 편지 中

대중들은 늘 정치인들이 설치해놓은 몇 가지 큼직한 프레임 Frane (어떤 사건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것을 다른백락에 갖다 놓는 것)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슈 Issue를 덮기 위해 새로운 프레임을 갖다 붙인다. 그중 하나가 ‘정치 혐오‘ 프레임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치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이 바로 진흙탕 싸움이다. 이를 통해 일부 정치인들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사람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두 마디는 바로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그놈이 그놈이야."라는말일 것이다.

찾아보기 귀찮다고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피해를 결국 누군가는 감내해야 한다. 귀찮더라도 다시 한번 진실을 확인해보고, 싫더라도 다시 한번 더 찾아봐야 한다. 매트릭스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선택‘이다. 평생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빨간약을 먹고 현실세계로 나올지는 본인의 몫이다.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내 바꿔야 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타당성을 너무 많이 정당화시키며 주위에 전파한 후다.
부끄럽기도 하고 오기도 생겨 죽을 때까지 종교처럼 믿고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하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라 너무 아깝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inferiors.)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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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무렵 로마가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은 다 정복해서 대제국을 이루었던 대략 200년 동안의 국제질서를 팍스 로마나 Pax Romana 라고 한다. ‘팍스‘가 라틴어로 피스 Peace, 평화니까 팍스 로마나는 로마식의 평화, 로마가 완전히 모든 것을 장악하고 결정할 수 있는 체제 안에서의 평화라는 말이다. 겉으로는 무역을 한다. 외교를 한다고 하지만 팍스 로마나 체제에서벗어나려 하거나 저항하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유럽에 팍스 로마나가 있었다면 동아시아에는 2천년 동안 중국이 주도권을 주었던 팍스 시니카 Pax Sinica, 즉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가 있었다. 중국이 하늘처럼 가장 높은 나라여서 다른 나라는 무조건 중국에 복종하고 복속해야 했다. 작은 나라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모시면, 덩치 큰 중국은 반대급부로 작은 나라들을 보살펴 준다는 사대자소 事大字小라는 중국식국제질서에는 일방적인 압제나 착취가 아니라 보호도 해주는 의리관계가 작동했다.

삼국시대까지는 우리가 중국 밑에 있지 않았다. 특히 고구려는 수나라나 당나라에 조공을 바않아서 오히려 맞먹으려고 했치거나 그 밑에 들어갈 생각이 아예 없었다. 영토 규모가 작지다.

중국이 주변 국가들을 다스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천문을 이용한 농업기술 정보였기 때문에그 날짜를 아는 기술을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명나라는 주변 국가들이 보낸 동지사에게세배를 받고, 그다음 해의 파종 시기나 수확에 필요한 절기들, 예컨대 입춘, 입하,입추,입동, 춘분,하지,추분, 동지,청명, 곡우 등 농사에 중요한 날짜를 알 수 있는 농사 달력인 능력을줬다.

중국에서 가져온 능력에 따르면 비가 온다는 청명, 곡우에 비가 안오는 경우도 많았다. 세종은 거기서 벗어나 우리 절기에 맞춰 씨 뿌리고 수확하려 했을 것이다. 해시계 앙부일구 仰釜日晷를 만든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신들이 명나라가 알면 큰일 난다며 거세게 반대했지만결국 만들어 사용했다.

영화 <천문>(2019)에서 세종이 천문기구 간의 簡儀를 만드는 것을 두고 ‘명나라가 허락하지않을 거‘라고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너는 명나라의 신하냐 조선의 신하냐‘라고 묻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무력을 강화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세력을 키운 영국 못지않게 일본이 부러워했던 나라가 네덜란드다. 유럽 최초의 무적함대를 만든 네덜란드와 스페인 무적함대를 꺽고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를 누리는 영국. 이 두 나라는 중화 문명권 변두리에서 설움받던 일본이 선택한새로운 국제질서의 모델이자 중심이었다.

무력을 중요성을 깨달은 일본은 1868년,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 부국강병을 핵심으로 한개혁을 시작했다. 메이지유신 明治維新을 실행한 것이다. 국비로 인재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며 열심히 유럽을 따라 배운다.

일본은 유럽 열강을 보고 배워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를 깨뜨리고 일본 중심의 천하 질서를세우려고 했다. 나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만주 침략, 중국 대륙 침략에는 천대받던 것에 대한일종의 복수심이 작용했다고 본다.

일본은 섬나라 영국이 이룬 팍스 브리타니카를 보면서 섬나라인 일본도 얼마든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여기며 팍스 자포니카를 꿈꿨다. 중국이 누렸던 권세를 누리고 싶어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에까지 들었지만, 패전하면서 미국 밑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질서로 들어가 첫 번째 중간 보스가 됐다.

일본이 미국에 굴종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미국 유학은 잘 가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도 잘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일본은 언젠가 미국의 힘이 떨어지면 중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미국은 이미 저성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일본도보고 있으니까

지금 일본이 미국의 중국 경제 견제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속마음에는 그런 비수가 숨겨져 있다. 소리장도 笑裏藏刀. 공손한 태도로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가슴 속에는 비수를 품고있는 것이 일본이라고 봐야 한국 외교가 뒤통수를 맞지 않을 수 있다.

7세기 중엽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백제의 지배층을 비롯한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다. 백제는 패망 이전에도 일본 왕실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유민들에게신라는 자기네를 쳐서 쫓아낸 적국이니 적대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고 한반도는 ‘빼앗긴 땅‘이었을 게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겹쳐서 애증이 교차하는 곳, 한반도 1986년 출간된 최인호의 장편소설 《잃어버일본에 있린 왕국에 이런 사정이 잘 묘사되어 있듯이 백제와 일본은 매우 가까웠다. 백제 18대 전지왕이 돌아와서 왕위를 승계했을 정도로 일본 왕실과 백제의 왕족들은 가까웠다. 또한 백제가 불교 등 선진문화를일본에 전수해 주었기 때문에 신라에게 패망한 후 유민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본의 지배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국제질서의 중심인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싶었다. 그런데 중국이 조공을 아무한테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초 일본은 중국한테 소개 좀해달라고 조선에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보다 아래라고 봤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토가 되기전, 지금의 오키나와에 있던 당시 류큐왕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칠 수 있는 나라였다. 일본은 최소한 조선만큼은 대접받고 싶었으나 끝내 무시당한 열패감과 조선이 도움을 주지 않은 데 대한 원망이 컸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을 당시 대만 사람들은 청일전쟁에 패한 후 청나라가 자기네들을서슴지 않고 버렸다는 데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공내전(1927-1949)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패한 장제스의 국민당이 1949년 난데없이 대만으로 도망와서 대륙 수복의 기지로 삼은 데에도 불만이었다. 오늘날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의 민진당이 대륙 수복 대신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뿌리가 있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중국 정치의 중심에 가까이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역사적으로 중국에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계속 유지했다. 조공을 바치고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고 한자를 쓰면서도 중국 문화에 동화되지않은 독특한 독자성과 정통성은 고수한다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우리말을 유지하고 우리 문자를 새로 만들어 쓰고 역사도 고유하게 정리해 왔다. 우리말 발음과 비슷하게 표기하도록 만든 한글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민족의식이 확실하게 뿌리 내리지 않았을까. 지리적으로 중국과 매우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또 중국한자를 1,500년 이상 쓰면서도 고유한 말과 글자를 사용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이렇게 ‘적‘을 설정하고 그 적을 악마화시키는 건 기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어간다. 국내 정치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권력을 빼앗아 오기 위해 정부가 하는 일은 뭐든지 비판하면서 정부와 여당을 악마화한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서도 누군가를 악마로 지목해야 한다. 악마가 최소한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일제시대 만주국과 조선에서는 그 악마를 중국인으로 잡은 거다. 그들을 가리켜 부르던 ‘되놈‘이라는 말 속에는더럽고 거짓말 잘하고 음흉한 이미지가 농축돼 있지 않나. 중국 문화권에서 미개한 족속이라고 멸시하며 이르던 오랑캐라는 말보다 더 얕잡는 말이 ‘되‘다. 일본은 신생 제국으로서 하나라도 더 협조자를 끌어내기 위해 덩치도 크고 역사가 긴 중국을 악마로 설정했고 조선 사람들한테 그런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국민당 정부가 일본에 치받히고 공산당에 쫓겨서 난징으로 그리고 충칭까지 밀려가면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데리고 다닌 것은 오랜 우호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외교의 전통 원칙이었던 사대자소의 정신에따라, 즉 조공바치던 나라를 보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서였을 수도 있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집권 말기 북한의 핵·미사일 때문에 사드를 주한 미군기지 내에 갖다 놓는 걸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드 배치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사드 체계의 일부인 엑스밴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2천킬로미터나 된다. 따라서 주한미군 기지 내 사드 배치로 인하여 미국은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가있는 화북·화동 지방과 동북3성 일대의 군사적 움직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게 됐다. 바꿔 말해, 북한 핑계를 대고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한 사드로 중국이 미국의 손바닥 안에 들어간 셈이 된 것이다. 중국의 한한령은미국이 대중국 압박정책을 실행하는 데 협조한 한국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컸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시작한 2010년부터 경제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국강병의 원리에 따라 중국의 군사력도 더 강화될 것이다.

힘과 이익으로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피해를 적게 볼지, 그러려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외교를 해야 할지, 이 문제를 고민해서 그에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도 우리와 비슷하게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반감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찝쩍거리더니 중국을 심지어 패배자로까지 만들었다는 원한 같은 것이다. 특히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려고 1937년 12월부터1938년에 걸쳐 난징 인민 수십만 명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학대한 난징대학살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잡아떼지만 중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과하고 배상을 하지 않으면 상종하지않겠다는 입장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중국이 일본한테 패배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 치욕스럽게 시달렸던 기억이 있는 데다 지금 일본이 미국 등 여러 동맹국가 뒤에 숨어 실질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도록 부추기고 있으니아마 중국으로서는 미국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을거다. 표면적으로는 앞장서 밀고 들어오고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이 귀찮고 밉지만 그 뒤에 일본이 숨어 있다는 걸 아니까. 중국으로서는 기회만 오면언젠가 한번은 일본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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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남자친구가………? 어째서? 이런 상태인데 대체어떻게 된 거지?
용기를 내어 먼저 수첩의 ‘남자친구님‘ 페이지를 폈다.
상대방은 다른 반 남학생인 가미야 도루라고 했다. 접점이 없으니 잘 기억나지 않았다. - P95

그런데 남자친구님이 등장한 뒤로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내용만 적혀 있었다. 남자친구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다느니, 그때 표정이 좀 귀여웠다느니, 지금의 비정상적인나는 그냥 그런 일을 그냥 그렇게, 그런 것을 느낄 여유가과거의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데서 용기를 얻었다. - P98

"규칙을 어긴 건 나니까. 혹시, 혹시 말인데, 히노 네가아직 내가 가짜 남자친구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내가널 좋아하는 건 모르는 편이 낫잖아? 병에 관해서도 원래는 가르쳐줄 생각이 없었다면, 나한테 말한 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면 잊어버리는 편이 낫지. 나도 앞으로모르는 척할 테니까. 어때?" - P109

좋아한다는 감정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사람은 어째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다른 사람을좋아하게 된다는 게 아프고 슬픈 일일 때도 있는데 의문에 대한 대답은 없이 설거지 소리만 그저 단조롭게 울렸다. - P114

"도루, 전이랑 좀 달라진 것 같아."
"그 말은 다시 말해 수첩이나 일기에 적혀 있던 내 인간성과 지금 나 사이에 차이가 생겼다는 뜻일까. 그 변화가기뻤다.
오늘의 히노는 내가 자신의 장애를 아는 줄 꿈에도 모를 것이다. - P136

결국 다음 날 방과 후에도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오늘의 히노는 매일이 한 번뿐인 히노다.
히노는 둘이 같이 자전거 타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일로 즐기며 어제처럼 웃었다. - P137

‘니시카와 게이코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발매 기념 사인회‘
의미를 깨달은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잠깐 주저한 뒤 내 발은 곧장 서점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니 줄을 서달라고 말하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인회는 서점 중앙 부근에서 하는 듯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 P140

작가 니시카와 게이코가, 내 누나가 그곳에 있었다.

목이 바싹 말랐다. 누나는 긴 테이블 뒤에 놓인 접이식의자에 앉아 줄 선 사람들이 내미는 책에 사인을 해주고있었다. 검정 정장을 입은 여자가 곁에 있다. - P141

"히노한테 말하면 안 돼."
"응? 뭔데?"
"난 진짜로 히노를 좋아해.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진짜로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내가 할 수있는 일이면 뭐든 해주고 싶어. 아니, 해준다는 건 오만한말이네. 하고 싶어. 히노가 기뻐할 일이면 뭐든 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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