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 속에 홍차를 주문하고 여자가 준 책을 읽기로 했다. 전에 잡지에서 읽은 작품이었다. 누나도 그렇고, 와타야에게 ‘알고 있다‘라고 말한 것도그렇고, 히노와의 약속을 깬 것도 그렇고, 갖은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수선해서 소설의 세계에 좀처럼들어갈 수 없었다. - P163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지 누나는 웨이터에게 홍차를주문했다. 1년 반 만에 만나는 건데도 어제 헤어졌다가오늘 다시 만난 사람들 같은 분위기였다. - P165
"누나는 일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가계를 꾸렸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래도 계속 썼다. 지금껏아버지가 도전 중인 《문예계> 신인상에 몰래 응모해 그해6월에 투고한 작품이 10월 최종 후보작으로 남았다. 아쿠타가와상을 위한 등용문이라고 이야기되는 상이다. 10대가 거기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쾌거라할 수 있었다. - P168
나는 당시 누나가 소설가의 길을 포기하려 했다는 것을알고 있다. 아버지가 집에없을때 유선전화로 담당 편집자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NTREPRIS믿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가 통화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맞대응하고 있었다. 재능이 있어도 그 때문에 가족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라고 했다. - P169
"누나는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야단쳤지. 그러니까 나도야단칠게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안 돼. 제발 부탁이야. 소설가가 되는 게 누나 꿈이었잖아?" 누나는 잠자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기를 쓰고 말했다. "이 집에 꼭 계속 있을 필요도 없어. 아버지는 내가 보살펴드릴게." - P170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뭔가 칭찬할 점이 있다면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는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반년밖에 안 된 어린애였다는 것이다. 애써 참아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사실은 많이 무서웠다. 내 생활에서 누나가 사라진다 - P170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부터누나는 서서히 퇴직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버지 옆 이부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작별을 깨달았다. "가게?" 아버지가 깨지 않게 살며시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현관에서 신을 신는 누나에게 말했다. 앉아 있던 누나가 일어섰다. 돌아서서 맑은 눈으로 나를 꼼짝 않고 쳐다봤다. "도루...... - P172
"지금은 이렇게 날마다 아무 일 없는 듯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여름방학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 히노는 어떻게 될까.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기억장애라는 사실을 안다. 수첩등을 읽어 서서히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낮이 되어도학교에 가지 않는다. 남아도는 시간과 눈부시게 환한 햇빛 속에서 히노는 무슨 생각을 할까 - P192
히노에게는 어제까지 봄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느새 여름이 되어 있는 셈이다. 놀랐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한 일일 것이다. - P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