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배움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진정한 독서를 할 수가 없다. 배움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학문에 뜻을 두려면 먼저 바탕을 세우는 것이 필수이다. 그 바탕은 바로 효(孝: 부모에 대한 효도)와 제(悌: 형제간의 우애)이다. 그것으로 바탕을 세우면 자연히 학문은 몸에 배게 되고 학문이 몸에 배고 나면 독서는 별도로 그 세부 단계를 논할 필요가 없게 된다. 가난한 학생으로서 처신을 잘하는 방법은 오로지 독서를 하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서는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아이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아니고 또 촌마을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가까이에 두고 스승으로 삼을책 한두 권을 갖는 것이 독서의 큰 보람이요 행복이다.

일상의 작은 행복과 깨달음은 큰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하고 순간이동을 기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사람들을 만나고,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들. 그 사소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이 진정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논어와 서양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한다고 하여도 받아들이는 이의 그릇이 작다면 티끌만큼도 배우고 실천하기가 힘들 것이다. 반면에 동화책을 읽어도 배우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 지극하다면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살아가며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는 가끔 동화책이나 아동 도서를 펼쳐 들어라. 그 속에 삶의 기본이 되는 진리가 모두 담겨 있을 것이다. 얻고자 하면 얻지 못할 것이 없고 배우고자 하면 배우지 못할 것이 없다. 사소하다고생각되는 그 속에서 크나큰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결코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군자가 책을 지어 세상에 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진가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만일 내 책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너희보다 나이가 많다면 아버지처럼 모시고 너희와 비슷한 연령이라면 형제처럼 지내도 좋다.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어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친다고 치자. 그렇게 시체가 된 몸이 차가워지기도 전에 이름부터 먼저 사라지는 자가 된다면 이는금수일 뿐이다. 금수인데도 그것을 원할 것인가.

다산의 편지 中

백날 책만 읽는 제나라 환공이 될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의 슬기로움을 깨닫는 것이 좋다. 깨달은 이후 직접 수레바퀴를 깎아보면 어떨까. 기록하지 않는 삶의 경험은과거 속으로 매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배움이 없는 이는 금수와 같다.
학문은 우리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학문은 제일의 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병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 사물마다 법칙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수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에 대해서 수없이 글과 편지로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도덕, 혹은 예술에 관해 질문조차 하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 않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마음속에 약간의 성의만 있다면 아무리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는 법이다. 집에 책이 없느냐? 재주가 없느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다산의 편지 中

늘 궁금증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궁금한 것이 늘어가는 법이니 말이다.

다 같은 우리 백성이다.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다 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멍청하면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악을 퍼뜨린다. 반면 누구는 어질면서도 아랫자리에 눌려있어 그 덕이 빛을 못 본다. 그래서 붕당을 없애고 공평하고 바른 도리를 넓히며, 어진 이를 등용하고 못난 자를 몰아내어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바로 ‘정‘이다.
반드시 경학(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하여 바탕을 다진 후 옛 역사책을 섭렵하여옛 정치의 득실을 따지고 그것이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늘 ‘오륜 오륜‘ 하지만 붕당의 화가 그치지 않고 정치인을 반역죄로 몰아넣는 옥사도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군신유의의 도리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

다산의 편지 中

대중들은 늘 정치인들이 설치해놓은 몇 가지 큼직한 프레임 Frane (어떤 사건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것을 다른백락에 갖다 놓는 것)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슈 Issue를 덮기 위해 새로운 프레임을 갖다 붙인다. 그중 하나가 ‘정치 혐오‘ 프레임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치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이 바로 진흙탕 싸움이다. 이를 통해 일부 정치인들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사람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두 마디는 바로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그놈이 그놈이야."라는말일 것이다.

찾아보기 귀찮다고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피해를 결국 누군가는 감내해야 한다. 귀찮더라도 다시 한번 진실을 확인해보고, 싫더라도 다시 한번 더 찾아봐야 한다. 매트릭스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선택‘이다. 평생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빨간약을 먹고 현실세계로 나올지는 본인의 몫이다.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내 바꿔야 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타당성을 너무 많이 정당화시키며 주위에 전파한 후다.
부끄럽기도 하고 오기도 생겨 죽을 때까지 종교처럼 믿고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하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라 너무 아깝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inferiors.)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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