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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 평범한 자녀를 최고의 인재로 키워낸
이상주 지음 / 다음생각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독서의 실천을 강조했다. 경건한 자세로 책을 읽으며 몸과 정신을 수양하는 방법을 강조해왔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고 볼 수 있다. 활자와 종이의 질이 좋아지고 한글의 발명, 서당의 보급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많은 독서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중 양반의 독서는 남달랐다고 할 수 있겠다. 항상 책에서 손을 놓지 않았으며 독서의 게으름을 마치 삶의 포기라 생각했다. 이들이 독서를 그토록 강조했던 것은 책 속에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고 책을 통해 올바로 나아갈 길,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음에 그랬을 것이다.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에게까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조선 명문가들의 독서 교육법’은 바로 이러한 이들의 교육법을 소개한 책이라 하겠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때문에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시했다. 사대부라 불리는 양반들은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신분적 위치를 강조하였고 또한 이를 통해 과거로 진출하고 자기 수양의 방법으로 삼았다. 책 속에는 다양한 독서가들이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도전, 정약용, 송시열, 이황, 이이 등의 학자부터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까지 다양하다.
몇 몇 주목할만한 인물들을 꼽아보자면 첫 번째가 정부인 김씨이다. 조선시대는 남존여비의 사회이다. 여자들의 차별이 그 어느 시대보다 심했던 시대이다. 그런 가운데 책 속에 소개되었다는 것이 무척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린나이에 시집을 와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여 노비의 신분으로 떨어져 유배를 왔음에도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위해 책을 낭독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사실에 대단함을 느꼈다.
다음으로는 조선 최고의 다독가 김득신이다. 당시 기네스 기록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1위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기의 백이전을 무려 1억 1만 3천번을 읽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평생 책 만을 손에 쥐고 살았던 것이다. 독서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다독가에서 김득신이 있다면 다작에는 최한기를 꼽을 수 있겠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서 무려 1000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 분야에 있어 정치, 경제, 사회 등등 모든 분야에서 고루 저술했다고 하니 최한기라는 인물의 식견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보면 ‘독서가들이 책을 좋아해서 독서를 강조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다른 요소도 작용했다고 본다. 당시는 양반, 상민의 신분계층의 사회였다. 선비를 뜻하는 한자 사(士)를 풀이해보면 열(十)명의 사람을 다스리는 한 (一)명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즉 양반들은 자신보다 미천한 계층들을 다스릴 의무가 있었다. 그것의 바탕에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다스리는 자의 입장에서는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입장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똑똑해야만 한다. 조선은 양반이 다스리는 사회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조선시대의 교육열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것 같다. 당시에는 출세의 길이 과거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물며 과거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였기에 어쩌면 지금보다 더 치열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교육법에는 지금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보이는 교육법에는 없는 낭만이 느껴진다.
왜일까? 당시의 교육법은 출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수양, 정신 수양 등의 다른 목적이 공존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시험점수, 등수, 일류대학, 등에만 매달려 끝없이 달려가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교육법과 비교해보니 그저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