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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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들 옛이야기에 부여하는 효용가치 중에서 선과 악의 개념을 가르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며, 일차적인 교육기관인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도덕을 훈육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금도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당당하게 실려 있기도 하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전형적이기까지 한 욕망의 적나라한 형상들이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혹자들의 말마따나 취학 전 아동들이 읽기엔 지나친 구석이 너무도 많다. 그렇지만 옛이야기 없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그리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옛이야기를 사심 없이 즐기기엔 너무도 많은 어지러운 상황들에 찌들어있는 탓에 여러 잣대가 필요한 시기에 도래함이 분명하며,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활력 넘치게 그것을 논하는 책과 만나 어찌 즐겁지 않을쏘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지만, 옛이야기는 원형 그대로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전의 상징과 시대정신을 고착하여 전승하는 것은 외려 옛이야기를 시대착오적인 구태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원형과 재조명의 치열한 접점의 향방이 고전에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재확인한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와 원본과 완역본이 세트로 출간되기도 하며, 패러디의 경계가 확장될수록 원형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늘고 있기도 하다. 대학 강단에서 살아있는 고전을 표방하며 전 방위적인 대중문화와의 소통을 논하는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시종 유쾌하고, 참신한 해석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이야기는 교교히 우리네의 시간 속에 깃들어 현재의 의식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운다. 책에서 분석하는 바대로 고전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대중문화의 향연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섣부르고, 참신하지 못한 패러디일수록 지탄과 외면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나친 비약은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한데 아우르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높이 사고 싶다. 새롭게 발굴한 논점과 해석이 돋보인다기보다 고전의 다양한 진화와 재생산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해박한 그물망이 인상 깊다. '옹고집전'을 자기복제의 원론적 텍스트로 분석해내는 시초부터, 블록버스터와 황우석 사태까지 사고를 확장시켜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구성지다.


옛이야기는 저잣거리의 통속적인 수다에서부터 시대정신의 표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녔다. 늘 고여 있는 종지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넘실대는 파고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구분 짓는 단순명쾌한 이분법으로 남겨두기엔 교과서가 포용하지 못한 옛이야기 너무도 많아 새로운 학설과 해설이 공존하기 시작한 즈음이 한참은 늦되었다 할만하다. 우리 문화의 가장 대중적이며 풍성한 콘텐츠로써의 옛이야기를 늘 새롭고, 신선하게 유통기한 없이 즐길 수 있는 강연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활자에서 영상까지 넘나들며 머물렀던 시간이 되어주었다. 얼마든지 리뉴얼될 수 있고, 기꺼이 이설을 수용하면서 다음 세기에까지 소비되고, 생산될 옛이야기를 자연스레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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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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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메사추세추의 방직도시 로렌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동맹파업을 일컬어 '빵과 장미 파업'이라고 부른다. 세계에서 몰려든 가난한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던 방직공장의 작업환경은 결코 낯설지가 않은 백태를 보여주는데, 스물도 안 된 젊은이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나갔던 1970년대의 우리나라 평화시장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늘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절망 속에서 그들이 택한 연대적인 투쟁은 '빵과 장미'로 대변되는 전설적인 슬로건과 더불어, 지금도 여전히 그 구호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일깨운다. 캐서린 패터슨의 『빵과 장미』는 이 파업의 한가운데로 우리를 이끄는데, 성장소설의 틀을 택하며 진행되는 스토리텔링은 처절한 고발의식의 발로이기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로렌스의 이민노동자들을 조직화했던 유명한 이탈리아계 사회주의자들을 내세우기보다, 경찰의 총탄과 무고에 스러져간 희생자를 조명하기보다, 노동자 가정의 가장 여린 구성원인 아이들의 일화를 중점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이 파업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최후의 보루, 그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파업에 휩쓸려 거리로 나선 아이에게 위스키 값을 벌어오지 않으면 주먹질을 해대는 아버지를 둔 제이크 빌과 자신을 사랑한다면 파업에 동참하기보다는 '미국시민'답게 정부에 순응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로사 세루티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당시 로렌스에서 벌어졌던 소요를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최소한의 생계, 일한만큼 받는 대우를 기대하는 것이 사치인 당시의 로렌스에서 파업에 동참하는 일은 무정부주의자, 반미국적인 사회주의자의 선동에 휘말린 결과로 치부되었던 시절. 결국 '미국적'이라는 기치 자체가 공장주와 공권력에의 무조건적이 순응이며, 노동자의 생존이자 인권을 논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토박이'들이 아닌 이민자, 그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분연한 움직임은 미국 전역에 이 파업의 실체와 당위성을 알리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토박이가 아닌 이민자 계층, 남성이 아닌 여성노동자와 나이를 속인 어린이 노동자들이 받았던 처우 속에서 탄생한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는 슬로건이 가진 울림은 무서운 속도로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
 

젊고 나이든, 찌들고 지친 어머니들이 거리에 나서자 곡기와 온기가 사라져버린 집안에 방치되거나, 거리에서 곤봉과 물대포와 총구에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들을 구제하고자 벌어졌던 '휴가'로 불리던 다른 도시로의 잠시잠깐의 입양운동은 '빵과 장미파업'이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재확인시킨다. 로렌스의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그들과 처지가 비슷한 타 지역의 노동자 가정들은 앞 다투어 '휴가'를 제공하기 위해 일어선다. 캐서린 패터슨이 『빵과 장미』를 쓰게 된 동기가 바로 이 파업 기간 동안 버몬트 주 배러에 머물렀던 로렌스의 아이들의 사연을 접하게 되고 나서라고 한다. 부유한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파업 노동자들을 무고하고, 폭력으로 대항하는 동안, 가장 누추한 곳을 인간적인 배려와 희망으로 불 밝히던 그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강력한 지지세력이 되어주었을 것이 자명하다.
 

'빵과 장미'라는 슬로건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분분한 설은 많지만 시초를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고 한다. 파업에 진심으로 동참할 수 없고, 미국시민이 되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던 로사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묘사된 부분("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우리의 배를 채워줄 빵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빵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죠. 우리는 우리의 가슴과 영혼을 위한 양식도 원해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푸치니의 음악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것들도 어느 정도 필요해요.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우리는 장미도 원해요."(p.114-115))은 캐서린 패터슨의 창작이지만, 이 슬로건이 서부의 여성 노동자 운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순간을 포착하려했다면 그리 벗어날 것은 아닐 것이다.

파업보다 가정의 생계, 노동자의 인권보다 가족의 안위가 더 절실했던 파업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전면으로 부상시켜 '빵과 장미파업'의 이상과 현실의 접점을 포착해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는 100여 년 전의 메사추세추의 로렌스를 넘어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이것은 사회주의 연대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미국노동자들의 발자취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현재진형형인 그들의 싸움을 쉬이 잊어버리고 만 우리를 향한 노성이기도 하다. 용산, 이랜드, 쌍용자동차……. 100년 전의 로렌스가 어떻게 '빵과 장미'를 쟁취해냈는지를 너무도 쉽게 망각한 우리네는 인간답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연대에 대한 회의감에 찌들어있었음을 발견하게 한다. 모든 이들이 빵과 장미를 나누는 아름다운 정경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문제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해진다.

'빵과 장미'파업 이후 한 세기가 흘렀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빵과 장미를 향한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프다. 로렌스의 위대한 승리가 이 땅에 쉬이 강림하지 않는 것은 타인의 아이를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진한 동질감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 몫의 정당한 빵과 생에 대한 헌화를 누려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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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엄마 찬양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저 / 문학동네 / 9900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헤르타 뮐러와 치열하게 만났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5편의 소설을 너무나 힘겹게, 그러나 절대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하게 전작하고 나니, 요사의 수상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해서 좋은 작가, 작품이 아니라 그의 거대한 문학적 성취에 대한 오마주에 동참하고자하는 마음으로 전작을 해보려고 합니다. <판타레온과 특별봉사대>를 막 읽으려는 참이고 <염소의 축제 1,2>는 예판을 했습니다. 독서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한 <새엄마 찬양>을 주저없이 만나보고 싶습니다!

  

 

 

 2, 3. 울프 홀 1, 2 / 힐러리 맨틀 저 / 올 / 12150원, 13050원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울프 홀>입니다. 16세기 영국의 문제적 인물인 토머스 크롬웰의 일대기를 그린 팩션으로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는 평입니다.  

  

 

 

 

   4. 일러스트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저 / 뫼비우스 그림 / 문학동네 / 8800원

  국내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독자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소성 높은(?) 이가 바로 저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거대한 명성과 끊이지 않는 추종에 합류하기보다는 멀리서 관조하며,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브리다>를 예판하면서 그의 책들을 하나하나 만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늦었지만, 더는 망설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골랐습니다.

 

 

 5. 흐르는 강물처럼 / 파울로 코엘료 저 / 문학동네 / 7800원 

<연금술사>와 같은 이유로 고른 파울로 코엘료의 에세이입니다. 기꺼이 압도당할 마음으로 그의 에세이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 총 51700원 

거장들의 거대한 작품과 함께 풍성한 가을을 맞이할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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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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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친위대였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전후 루마니아의 소수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몰락과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강도 높은 감시를 당하며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독재와 감시에 시달리는 이들의 강박을 제하면 그의 문학이 성립할 수 없듯이, 헤르타 뮐러의 가족력과 루마니아의 독일계 주민의 역사는 그가 평생을 천형처럼 매달리게 되는 테마가 된다. 삶과 문학이 서로를 비추어 공포의 시대를 무력하게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모습을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서 다시금 해후한다. 

히틀러의 몰락과 더불어 영락해버린 이방인들, 슈바벤 주민들은 이중의 감시, 이중의 탄압, 이중의 수치, 이중의 절망을 안고 산다. 쉽게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 않는 삶에 대한 유일한 희망은 독일로의 이주뿐이다. 추방과도 다름없지만 자발적인 망명으로 포장되어진 채, 이주를 염원하는 이들을 둘러싼 거래에서는 거의 모든 부정한 것들이 판을 친다. 거대한 독재 못지않은 구석구석에 깃든 악취, 생존의 대가로 치러야할 인간다움의 상실, 신뢰와 애정 대신 자리 잡은 협잡과 추문의 향연으로 들썩이는 이 작은 마을은 『저지대』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빈디시는 이장의 집에, 경찰에게 쉴 새 없이 밀가루 포대를 나른다. 5번만 옮기면 나올 것 같았던 여권은 해가 바뀌어도 발급되지 않고, 밀가루 포대 이상의 무언가를 이장, 경찰, 주임신부에게 바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권과 서류를 허가해주는 일이 이루어지는 은밀한 장소인 권력자의 침대에 외동딸을 밀어 넣어야하는 빈디시의 용납할 수 없는 심정과는 달리 아내는 딸 아말리에가 잡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반긴다. 육신을 욕보이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낙오와 기회를 잃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임을 아내는 수용소 시절에 이미 겪은 바가 있음으로 해서. 

「저지대」에 등장했던 어느 촌로는 슈바벤 마을이 샤르데냐 같은 섬이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푸념한다. 슈바벤 공동체의 지정학적인 특수성은 그네들을 더욱 고루하고 편협하게 만들고, 챠우세스쿠 시절은 이를 더욱 강화하고 무력감을 대물림하게 한다. 밀가루 포대, 모피 외투, 유리 세공품, 가축이며 농작물을 모조리 바치고,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은밀한 침대에 밀어 넣은 후 가까스로 얻게 된 이주의 기회는 자유와 희망을 보장해주는 듯 했지만, 새 땅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을 또 다른 슈바벤 공동체의 축소판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오욕의 더불어.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라고 말하던 야간경비원은 재혼을 하고 마을에 남기를 자처한다. "인간은 강해. 짐승보다 더 강하지(p. 15)" 인간은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도 전쟁과 수용소를 뒤로 할 수 있다. 살아가기 위해 무감해지고, 살아내기 위해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살아남게 된다. 그렇지만 생존이 곧 극복은 아니며, 흉물스러운 과거는 흉터를 남긴다. 날개가 둔화된 꿩은 위협을 받으면 자기 몸에 머리를 묻는다. 옥죄이는 공포가 야기한 절망은 근시안적인 자기보신과의 타협을 강요한다.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슈바벤의 음험한 유지들을 뒤로하고 자유에의 이주를 성공했을지라도, 결코 맞바꾸거나 내주어서는 인간다움을 상실했다면 그들이 자유의 땅에 건설하는 것은 또 다른 슈바벤 촌락일 수밖에 없다. 

공포와 불안이, 감시와 위협이, 부패와 부정이 어떻게 인간을 잠식해나가는지, 인간을 '세상의 거대한 꿩'으로 전락시키는지에 대한 헤르타 뮐러의 보고서는, 날카롭게 단련된 언어로 이루어진 고발장이다. 이 정제된 자성적 문학은 전쟁과 독재의 파괴력이 이름과 모습을 달리해서 등장하는 그리 낯설지 않은 현실과의 싱크로를 불러일으킨다. 빈디시, 그의 아내 카탈리나, 외동딸 아말리에와 그 주변인들이 이름과 모습을 달리해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낀다. 불온한 시대, 인간은 머리를 묻는 대신 누추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꿩이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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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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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일찌감치 비밀정보국의 감시망 안에 걸려든 거였다. 당시 루마니아 문학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미학이 없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신문과 교과서에 넘쳐나는 당의 문학이 머릿속에 주입되었다. 거짓, 허위, 프로파간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언어들이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만큼 주변에 널려 있었다. 그 모든 걸 거론하는 것은 물론 정부에 대한 반발이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비밀경찰들로부터 미행을 당했고,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문학 프로그램의 골자는 우선 삶의 경험과 연관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학은 섬광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공동체를 통해 우리를 지켰다. 모임은 우리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계간『문학동네』2010년 여름호 헤르타 뮐러 인터뷰 中에서)


헤르타 뮐러의 삶은 고스란히 문학으로 화한다. 감시와 강제, 탄압과 위협,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담고서.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낱말로 치환하는 과정은 섬세할수록 혹독한 통증을 동반한다. 그의 낱말상자 안의 어휘들이 아름답게 단련되어갈수록 현실에 대한 고발 또한 강도 높아진다. 아름다움이 삶을 구원하는 이상적인 일들은 쉬이 일어나지 않지만, 미추의 경계를 세밀하게 중계 할 수는 있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결코 쉽사리 다음 문맥으로의 등정을 허락하지 않은 채 지독한 여운을 안긴다. 전작을 읽는 것도 힘겨웠고, 날뛰는 '마음짐승'을 다스리는 것 또한 어렵기 그지없음을 고백한다.
 

『마음짐승』에 등장하는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와 '나'는 헤르타 뮐러가 루마니아에서 활동했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젊은 독일어권 작가들의 모임인 '악티온스그루페 바나트'을 연상시킨다. 독일에서 건너온 금서를 읽고, 불온한 사상을 담은 시를 공유하며, 당에 가입하라는 압력을 죽음의 위협과 맞바꾸는 일원들. 부당하게 죽어, 또 다른 부당한 죽음의 전신이 되어버린 롤라를 추모하기 위해 맺어진 이들은, 비밀경찰의 표적이 되어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감시, 미행, 협박, 회유, 예비 된 사망선고로 범벅된 일상을 버텨내는 그들이 무너져가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마음짐승은 소리높여 절규할 수조차 없다.

 

구름 한 점마다 친구가 들어 있네 /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서 친구란 그런 거지 /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 친구야 아무렴 어떠니 /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루마니아의 시인 겔루 나움의 시는 『마음짐승』에서 네 명의 친구들의 저항의식과 비밀경찰과의 알력관계를 동시에 표방하는 선언문인 셈인데, 불온한 시대에 읊기에는 적절하지 않아서기보다는 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독재정권의 폭거의 증명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물도록 훈련받은 개 프옐례와 같은 이름을 가진 프옐례 경감은 이 시를 다음과 같이 왜곡해 노래하도록 강요한다.

 

구름 한 점마다 세 남자친구가 들어 있네 / 구름이 가득한 세상에서 창녀란 그런 거지 /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 남자친구가 셋이면 어떠니 /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누구도 신뢰할 수 없고, 어디서도 자유롭지 못한 젊은이들은 비밀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한 체계를 만들어낸다. "날짜 쓰는 거 잊지 마. 편지 속에 머리카락 한 올 넣는 것도. 머리카락이 들어있지 않으면 누군가 편지를 펼쳐봤다는 거야.", "심문은 손톱가위, 수색은 신발, 미행은 감기 걸렸다로 써. 호칭 다음에는 언제나 느낌표를 쓰고, 생명에 위협을 받을 때는 쉼표 하나만 찍어."(p.107). 머리카락 한 올과 대치된 단어와 부호에 기대에 안전을 도모하려는 그들의 미숙함이 서글프다. "일주일째 감기에 걸려 있고 손톱가위가 보이지 않아", "일주일째 감기에 걸려 있고 손톱가위가 말을 듣지 않아."(p.121)라는 문장들은 자신들에게조차 요새가 되어주기보다는 의혹과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며, 심문 중에 다양한 색상의 머리카락을 내보이던 프옐례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어찌 보면 『마음짐승』은 커다란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필요치 않는 소설이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만들어낸 이삼중의 감시체계가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 중심에 서서, 예정된 좌절과 죽음을 불러낸다. 독재자의 지병에 대한 유언비어는 비밀경찰이 불순세력을 속아내기 위한 함정이며, 실패한 도주에 대한 은밀한 속삭임과 부검이 허락되지 않은 의문사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사망선고이다. 가족과 지인들을 포섭해 감시의 대리인으로 파견하는 악랄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중 언어사용자들의 처절한 절망이 마음짐승마저도 침묵하게 만든다.

스탈린 정권의 소비에트에 살았던 유대인만큼이나 혹독한 탄압의 역사를 지닌 루마니아의 소수 독일계 주민들은 염원하던 독일로의 이주가 성사된다 해도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독일 땅에서조차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영향력은 사회적 살인이나 다름없는 자살로 그들을 내몰기도 하며, 다음 차례의 사형집행을 통보하기도 한다. 공문서에 대한 권리행사를 막거나 스파이 혐의를 흘려 정착을 방해하는 끈질김까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편히 죽을 수도 없는 공포의 시대를 묘사하는 헤르타 뮐러의 정련된 언어는, 고통과 더불어 시가 가진 근원적 힘을 복원해낸다.

'시적 고발'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찾기 힘든 헤르타 뮐러의 문학. 끊임없이 독재의 폭압을 재현하고 공포와 불안에 잠식당한 인간유형을 그려내는 테마와 마주쳐야하는 것은 참담한 듯 보였다. 독재자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암울한 그림자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지난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멈추지 않는 인간에게 허락된 언어의 힘이 생동하는 것에서 희망을 본다. 마음껏 울부짖지도 못했던 그들의 마음짐승은 강요된 거짓에 침묵했을 지라도, 공포의 시대가 멸시하던 인간은 언어가, 시가, 문학이 가진 결코 왜곡될 수 없는 근원적 진실에 힘입어 생존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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