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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흔히들 옛이야기에 부여하는 효용가치 중에서 선과 악의 개념을 가르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며, 일차적인 교육기관인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도덕을 훈육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금도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당당하게 실려 있기도 하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전형적이기까지 한 욕망의 적나라한 형상들이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혹자들의 말마따나 취학 전 아동들이 읽기엔 지나친 구석이 너무도 많다. 그렇지만 옛이야기 없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그리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옛이야기를 사심 없이 즐기기엔 너무도 많은 어지러운 상황들에 찌들어있는 탓에 여러 잣대가 필요한 시기에 도래함이 분명하며,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활력 넘치게 그것을 논하는 책과 만나 어찌 즐겁지 않을쏘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지만, 옛이야기는 원형 그대로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전의 상징과 시대정신을 고착하여 전승하는 것은 외려 옛이야기를 시대착오적인 구태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원형과 재조명의 치열한 접점의 향방이 고전에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재확인한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와 원본과 완역본이 세트로 출간되기도 하며, 패러디의 경계가 확장될수록 원형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늘고 있기도 하다. 대학 강단에서 살아있는 고전을 표방하며 전 방위적인 대중문화와의 소통을 논하는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시종 유쾌하고, 참신한 해석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이야기는 교교히 우리네의 시간 속에 깃들어 현재의 의식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운다. 책에서 분석하는 바대로 고전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대중문화의 향연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섣부르고, 참신하지 못한 패러디일수록 지탄과 외면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나친 비약은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한데 아우르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높이 사고 싶다. 새롭게 발굴한 논점과 해석이 돋보인다기보다 고전의 다양한 진화와 재생산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해박한 그물망이 인상 깊다. '옹고집전'을 자기복제의 원론적 텍스트로 분석해내는 시초부터, 블록버스터와 황우석 사태까지 사고를 확장시켜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구성지다.
옛이야기는 저잣거리의 통속적인 수다에서부터 시대정신의 표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녔다. 늘 고여 있는 종지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넘실대는 파고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구분 짓는 단순명쾌한 이분법으로 남겨두기엔 교과서가 포용하지 못한 옛이야기 너무도 많아 새로운 학설과 해설이 공존하기 시작한 즈음이 한참은 늦되었다 할만하다. 우리 문화의 가장 대중적이며 풍성한 콘텐츠로써의 옛이야기를 늘 새롭고, 신선하게 유통기한 없이 즐길 수 있는 강연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활자에서 영상까지 넘나들며 머물렀던 시간이 되어주었다. 얼마든지 리뉴얼될 수 있고, 기꺼이 이설을 수용하면서 다음 세기에까지 소비되고, 생산될 옛이야기를 자연스레 그려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