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여행 풀빛 그림 아이 3
파울 마르 지음,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하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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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마르라는 낯선 원작자 대신 김경연씨의 번역이 눈에 띄인다. 풀빛에서 나오는 주목할만한 번역물들의 대다수는 김경연씨의 손끝에서 전설화한다. 행복한 청소부, 바람이 멈출 때, 생각을 모으는 사람, 잠자는 책, 브루노를 위한 책, 색깔을 부르는 아이, 바다로 간 화가, 새로운 피노키오- 한권한권 너무 소중한 핀두스 시리즈까지. 풀빛판으로 나온 책만이 이런데, 이분의 비룡소나 시공사 번역물까지 합치면 그 방대함과 범작을 웃도는 그 양질의 번역 세계에 감사드릴 따름이다. (소수의 북유럽과 영역을 제외하고)독일어권 아동문학번역에 있어, 이 분처럼 독보적인 캐리어를 가진 분이 또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  '번역'이라는 문학의 한 장르를 당당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이 분, 작가소개란의 한 구석에서 너무나 자주 뵌 나머지, 안부를 여쭙는 사이가 되어있지는 않은지 착각이 들 정도.  

<엘리베이터 여행>의 첫 인상은- 게걸스러운 불친절한 난쟁이 아저씨,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는 애교빵점의 똥똥한 여자 아이,  적당히 호화롭고, 적당히 안락한 엘리베이터. 독일적...이구나-였달까. <메리 포핀스>를 남성으로, 허영을 전부 빼고, 불퉁거림을 100배 강화시켜 비호감도를 높이면 이 엘리베이터지기로 변신할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시민대학에 가는 목요일밤, 일상의 기다림이 비일상, 일탈, 비상식의 영역으로 바뀌는 한 주의 한 날, 로자는 궁금해하기보다 여행에 동참하며, 그 특별한 시간을 즐긴다. 7층엔 뭐든지 7개가 있는 세계가 펼쳐지고, 3층엔 뭐든지 세 개씩 있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절대 눌러서는 안되는 U버튼, 지하로 가면 뭐가 나올 것인가.  

부모님의 늦은 외출에 혼자 남은 외동아이가, 일상을 작은 축제로 만드는 소소한 마법이, 못난 외양의 부르퉁쟁이 난쟁이 아저씨와의 티격거림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볼 때, 이 책은 성장을 멈추고 판타지의 포장 안에 머물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자라는 평범한 아이의 일상의 비중이 더 커 보인다. 금기의 U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제 잔소리와 안정과 보호의 영역인 부모의 귀가를 맞이하게 되는것으로 볼 때.  

판타지 안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것을 꿈꾸지 않는 로자는, 네버랜드나 원더랜드 안의 공주과의 히로인이 아니라, 이미 작은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과 닮아 있다.  

참 어렵게 읽혔고, 참 더디게 결론을 내린 결과, 어른인 나는 참 재미없게 책을 읽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웃음의 코드를 재발견한다. 그림책은 내 잃어버린 성장통이다. 금기를 하나하나 깨뜨린 후, "집보다 좋은 것은 없다"식의 대사를 타이밍에 맞춰 한 후, 현실의 얼굴로, 판타지의 잔상없이 복귀하는 내 모습은 과연 언제부터였는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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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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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프레드릭보다 네 마리 들쥐가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겨우 내 먹을 양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들쥐 무리 안에서 프레드릭은, 단연 동떨어진 녀석이다. 성격장애, 사회부적응, 노동력제로로 낙인찍혀 매장당하지 않았던 것은 네 마리 들쥐들의 '똘레랑스' 때문이다!  

춥고, 어둡고, 배고픈, 기나긴 겨울 동안의 양식을 마련하는라 네 마리 들쥐는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우리의 주인공 프레드릭도 바쁘긴 매한가지이긴 하지만. 양식보다 더 귀한(어찌보면 그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 우습다) 햇살 모으기, 색깔 모으기, 이야기 모으기에. 네 마리 들쥐는 프레드릭이 "나도 일해"라는 소리에 "그래, 일이라는대, 뭐"하며, 나와 다른 녀석 하나 쯤은 너그러히 인정할 줄 아는 멋진 공동체이다.  

흑설공주 식의 통념을 뒤집는 이야기의 가장 품격있는 원조가 아닐까 싶다. 1968년의 발표연도가 무색할 정도로 시대정신과 메시지가 살아있다. 배 부르고 아늑한 쉴 곳이 있다면 우린 충분히 만족스럽다. 간혹 여기에 반기를 드는 예술가 기질의 구성원이 존재하고, 받아들여진다면, 실로 삶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부와 명예, 육체와 정신, 보신과 이상의 연장선상에는 그 교차점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교활함이 느껴질 정도고 정교한 콜라주. 레오 리오니 풍의 정점에 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 작품마다 명작에 육박하는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 우리 시대의 천재 작가, 레오 리오니는, 밀도 높은 작품 활동으로 인해 이유있는 추종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여섯 마리 까마귀>나 <으뜸 헤엄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아주 신기한 알>... 나는 레오 리오니가 때론 얄밉다!  

천재 아니면 바보? 프레드릭을 지향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프레드릭'을 소외시키고, 매장시키지 않을 만한 인정과 아량을 갖춘 들쥐들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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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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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실직, 일감이 떨어진 엄마... 아마 미국의 불황기인 모양이다. 그래서 리디아 그레이스 핀치는 대도시의 외삼촌네로 살러 가야한다. 빵가게를 하는 짐 외삼촌네로 가면서도 리디아는 씩씩하다. 분명 지금 울어버리면 가족과 헤어질 용기가 없어지기 때문이겠지. 황톳빛, 할머니와 일군 텃밭의 초록으로 둘러쌓여 있던 아이가, 황량한 대도시, 철제 콘크리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짐짓 걱정이 앞선다.  

리디아네 가족이 정거장에서 리디아를 배웅하는 장면이다. 아빠는 침울한 표정으로 리디아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가 온 가족의 미안함을 대신해 리디아에게 여러 번 당부를 전하는 모양이다. 할머니께서 분명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쓰여있지는 않지만 들려온다.

"가서 짐 외삼촌 말씀 잘 듣고, 편지 자주해야 한다. 리디아, 우리는 널 사랑해.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게야. 건강해야한다. 리디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짐 외삼촌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리디아의 그리 넉넉치 않은 짐가방 안에는 할머니가 알뜰살뜰 챙겨주신 씨앗이 들어있고,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무능한 부모의 회한이 뭍어 있는 듯 보인다. 짐 외삼촌은 정말 좋은 사람일까?  

뉴욕의 이민자가 넘쳐나던 브루클린 쯤일까? 아니면 자동차가 많은 걸 보니, 공장이 활기있게 굴러가던 디트로이트 시가 쯤? 어딜봐도 빽빽한 건물 틈바구니에 철제 계단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허리를 펼 틈도 없이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이 도시에선 먹을 땅조차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묵하고, 얼마쯤은 일에 중독된 아저씨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건강하고 건강한 이 아이는 역경에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다. 온통 검고, 붉은 녹도 잔뜩 슬었을 게 분명할 빵가게 건물에서 열심히 꽃을 피워내는 리디아. 할머니가 보내주신 씨앗이며, 구근이며, 고향의 질 좋은 흙을 굴러다니는 그룻들을 화분삼아,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잊지 않으려는 듯, 무던히도 피워내고, 피워내는...  

그러다 손님이 많은 날이면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줄 알게 된 짐 외삼촌을 위해, '서프라이즈!'하고 외칠 비밀을 만들어내는 리디아 그레이스. 크로커스, 데이지, 물망초, 메리골드, 나팔꽃, 제라늄, 맨드라미, 수국, 히야신스, 양치식물...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던 버려진 옥상 한컨을 얼마나 바삐 오르내려야 그렇게 환한, <공중정원>을 가꿔낼 수 있을까? 왈칵...

몰래 흐뭇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외삼촌이 리디아 몰래 구워 둔 꽃으로 뒤덮힌 케이크는 또 어떤가! [할머니... 리디아 그레이스는 참 열심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답니다.] 리디아 대신 불쑥 편지를 쓰고 싶은 심정이다.    

<리디아의 정원>은 내 영혼의 한 권인 <도서관>의 콤비가 199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너무 예뻐서, 표지며, 간지며, 선 하나하나, 터치 하나하나... 나를 행복하게 도발하는 작품이다. 모든 것은 리디아 그레이스 핀치의 편지로 알 수 있다. 고향으로 보내는 정겨운 수다를 가득 담은 편지며, 이제는 돌아와 짐 외삼촌께 띄울 것이 분명한, 기분좋은 '앤 셜리'식 표현으로 가득할 안부편지들. '주디 애버트'식 뻔뻔함도 가미해서.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리디아 그레이스는 꼬불꼬불, 덥수룩, 숱많은 빨강머리라는 공통점 말고도 자신의 인생을 향기롭게 하는 원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몇 안 되는 '요셉을 아는 일족'임에 분명하다. 내 삶이 척박하고 황량하기 그지 없다면, 꽃 한 포기 키워낼만한 여유도, 기분도 갖고 있지 않다면, 쓰레기 더미에서도 제비꽃 광산을 찾아내는 소녀의 순정을 담아, 당신에게 발그레한 혈색을 갖게 해줄 것이 분명할 <리디아의 정원> 한 자락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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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의 생일은 365일 미래그림책 23
론 바레트 그림, 쥬디 바레트 글, 정혜원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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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아홉 살바기 벤자민의 즐거운 생일 파티가 막 끝났을 때, 벤자민은 너무 슬펐어요.

열 살 생일까지 꼬박 1년을, 365일을 기다려야 하다니!

즐거운 기분은 다 어디로 갔는지, 벤자민은 생일이 금새 지나가버린 것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어요.

아하-!!!

벤자민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1년, 365일을 생일처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벤자민은 선물을 받고 포장을 처음 뜯을 때의 행복함을,

다음 날, 그 다음 날, 그 다음다음 날도 느끼려고 했어요.

오늘의 선물을 포장해놓고, 다음 날 아침, 태연한 얼굴로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을 거에요.

벤자민은 바보? 천재?  

 

선물을 하나 씩 포장해두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척하는 벤자민,

눈 뜬 새 아침에 전혀 새로운 선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다음 번 생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요!

오늘 밤엔 TV를 포장했어요.

다음 날엔 냉장고, 욕조, 식탁, 제라늄 화분, 할아버지 초상화, 소파, 커튼, 베개, 자명종 시계...

집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선물인걸요!

비록 만화영화도 못보고, 목욕도 못하고, 배고파도 참아야 하지만,

요런 난감함은 생일선물을 받았을 때의 '서프라이즈~'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거랍니다.

 

벤자민은 정말 웃겨요. 그리고 귀엽죠.

생활 속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자기 마음 먹기 나름 아닐까요?  

아이에게 생일처럼 특별한 날은 또 없어요.

정말 받고 싶은 선물을 주문할 수 있고, 그 날 만큼은 작은 왕처럼 모두에게 떠받들여져요.

생일이 아니라도, 아이의 하루하루가 응석과 투정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1년에 딱 하루>라는 메리트는 참 대단하거든요!

벤자민은 아홉 살이지만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법이,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비밀을 발견해내요.

아주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비우면,

365일이 내게는 매 순간 '1년에 딱 한 번뿐인' 특별한 날로 기억될 수 있어요.

요 조그만 벤자민 녀석, 보기보다 정말 대단한걸요!  

 

집 안의 모든 가구며, 소품이며, 식기며, 집기며...

하루하루 포장하고, 포장하던 벤자민은, 이번엔 진짜 열 살바기 생일을 맞았어요.

꼭 1년 전의 생일처럼 친구들도 초대했고요.

친구들은 벤자민을 찾아 지붕 꼭대기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벤자민의 집이 커다란 포장지로 곱게 에워싸 있고, 바람에 기다란 리본이 깃발처럼 펄럭여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선물이라는군요!

와우!  

 

벤자민은 더 이상 새로운 선물을 바라지 않을 거에요.

굳이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자기 앞의 모든 것들이 다 선물이고, 앞으로도 변함없을테니까!

어리지만 누구보다도 현명해요. 벤자민은 작은 철학자 같아요.

어른은 그래서 아이를 동경하고, 때로는 존경할 수도 있답니다.  

 

일상의 특별함을 발견해버린 벤자민들이여-

아홉, 열 살 무렵의 생일처럼, 스물이 되고, 서른을 맞을 너희들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생일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너희들이 한 때 생일이 되면,

한 없이 반짝이며, 티없이 말끔한 얼굴로 주위를 따사롭게 만드는 미소를 짓곤 했다는 것을 기억하렴.

그 때의 기억이, 너희가 만날 어떠한 회색빛 생일이라도 무찔러 줄 힘을 줄테니!

지금이란, 하루하루가 생일처럼 마음 껏 응석부리며 지낼 수 있는 다시 없을 마법의 시간이란다.

너희들의 꼬박 1년, 365일이 늘 그렇게 특별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을, 감사하며 살지 않는다해도, 기억하렴.  

 

분명 365일이 전부 내 생일이었던 그 한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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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네버랜드 클래식 17
오스카 와일드 지음, 마이클 헤이그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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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동화와 도저히 연결해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약력의 소유자. 그렇지만 그도 두 아이(시릴과 비비안) 아버지였고, 진정성이 담긴 동화집을 남길 수 있었다. "누구나 자기 아이를 위한 이야기를 지어야한다" 맞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쓴 케네스 그레이엄도, <위니 더 푸우>의 알렉산더 밀른도, <돌리틀 선생 항해기>를 쓴 휴 로프팅...도 자기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지 않았던가. 자신의 재능의 극히 일부분만을 작품을 위해 쓰고, 대부분은 자기 인생에 쏟아부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오스카 와일드는, 정말 딱 자기 세계의 틀 안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조롱과 가혹한 진실이 담겨진 잔혹동화를,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는 게 분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창조했다.  

<<행복한 왕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기존의 성향을 뒤집어 놓은 듯한 종교적인 색채와, 눈에 띄게 들어나 있는 교조적이기까지한 메시지로 무장하고 있는 동화들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정수는 정말 아이들에게 주어도 좋을까... 하는 의문이 새록새록 들만큼 충격적이다. 물론 나도 어릴 때 읽었으니, 한참 앞뒤에 맞지 않는 말이 되고 말았지만.  

종교적이고 자못 도덕적인 교훈들로 가득한 동화는, 아이들에게는 한 없이 가슴 저릿해지는 슬픔과 아련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내게는 사악한 인간성 속에 숨겨진 휴머니즘의 불씨를 발견해낼 수 있게 한다. 정말? 와일드의 의도는 분명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도 세상의 온갖 추한 욕망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에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사해적인 무엇인가를 발견해나갈지, 선택은 이제 아이들의 몫으로 남는다.   

<<행복한 왕자>>는 왜 이토록 하나같이 고통스러운가? 왜 이렇게 아픈 이야기였다는 것을 십 수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는가? 맞다, 성장통을 유예해보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정관념의 평온함에 기대어서.

<행복한 왕자>에서는 고철덩어리 깨진 납덩이 심장과 싸늘한 제비의 시신으로 남아, 세상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추앙받지만, 되돌려받을 길 없는 이생을 던져버려야 했고,

<욕심쟁이 거인>은 늘 겨울인 자기 정원 안에 봄을 맞이하기 위해 메시아를 영접하고 나서, 더 찬란한 은총의 증거로 주님의 정원으로 불려간다.

<진정한 친구>의 한스는 우정을 귀히 여기는 증거로 이기적인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 허울 좋은 친구에게 충성한 댓가로.

<저밖에 모르는 로켓 폭죽>은 끝도 없는 자만에 빠져 진흙탕에서 쳐박혀야만 한다.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읽다가 내 심장에서도 한방울, 선혈이 흘러나왔다. 나이팅게일이 가난한 청년의 순결한 사랑을 위해 심장을 백장미의 가시에 단단히 밝고 '스완송'을 부르다고결한 생을 마감한 채 피워낸 붉은 장미는, 보석보다 못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불평 앞에 쓰레기로 변해야한다.

<어린 임금님>의 금욕주의자로 거듭나는 성 프란치스코 식의 수행이나,

<스페인 공주>나 <별 아기>같은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타락한 혼들의 씁쓸함,

<어부의 그의 영혼>에서 사랑으로 가득 찬 어부의 심장에는 영혼이 들어갈 자리가 없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죽고 어부의 심장이 고통으로 쪼개지자 그제서야 영혼이 흘러든다.  

 

오스카 와일드는 현실의 잔혹한 일면을 극대화하고 종교적인 안식을 구원처럼 등장시키지만, 여전히 이교도적이며 사악하리만치 탐미적인 자기욕망의 분출을 곳곳에 드러낸다. "예술은 윤리적일 필요가 없다"고 부르짓던 그가, 아이들에게만은 윤리적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확언할 수가 없다. 처절하다. 죽음으로 완성을 이룬다. 보답받지 않는다. 희생은 오히려 영광의 이름이다. 영혼을 잃지 않으면, 절대적인 자신을 잃지 않으면 다른 가치를 이룰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실이지 않은가. 인간의 본성이란 어둡고 사악한 일면이 있어, 행복에 이르기까지 치뤄내야할 댓가를 간과하기 쉽상인 것을.  

일단 시공네버랜드클래식판의 <<행복한 왕자>>의 안팎은 와일드의 벨벳망토 마냥 빛이 난다. 아름다운 색채와 몽환적인 삽화 또한 말끔하다. 마이크 헤이그는 오스카 와일드의 내면의 일부를 삽화로 옮겨놓은 듯, 지나치게 맞아떨어지는 삽화를 구현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겉치레에 정신을 빼앗길 지경이다. 오히려 어린이작가정신에서 나온 <행복한 왕자>(단편선이 아닌 단편)의 삽화에 끌린다. 조르쥬 르므완느의 보다 은은하고 한 발 물러서 있는 삽화가 와일드 월드에는 어울린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가 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공네버랜드클래식의 <<행복한 왕자>>에 더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린이작가정신은 불어판을 중역하고 있다는 데 있다.  

동화를 그저 단번에 읽어내지 못하고, 가슴에 멍울이 맺혀 삭히고, 삭히며 읽게 된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행복한 왕자>>, 아름다움이란 참으로 덧 없다. 행복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무조건적인 희생 앞에 깊이 고개를 숙여야한다고 지금껏 믿어왔을지 모르나, 아직도 그래야하나?  

 

부럽다. 동화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아도 되는 영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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