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해변에 앉아 있으면 절로 나른해져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 바글거리는 관광객 탓에 토박이며 갓 이사 온 주민들에게는 여행과 일상이 뒤섞여버리는 번잡함. 탁하지만 어김없이 강풍과 잔잔함이 깃든 강을 유영하는 보트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내 자리를 찾을 수 없어 겉돌며 어른이 되기를 강요당하는 그 즈음의 소년. 이쯤 되면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겠지?
사우스엔드는 런던의 하구에 자리 잡은 관광지이다. 원래 영국이란 나라는 햇살과 휴양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니, 해변과 일광욕만 할 수 있으면 그리 까다롭게 굴지 않을 것 같다. 템스 강이 지중해로 바뀔 리도 만무한데. 그런데도 영국이며 템스 강의 박무와 간간히 찾아드는 햇살 좋은 날에 익숙치 않은 나는 이탈리아의 짙푸르고 맑은 바다 위, 요트와 젊음과 파멸을 떠올리고 있다.
알랭 드 롱이 헐리웃으로 건너가면 맷 데이먼으로 탈바꿈되지만 인격이 바뀌었으니, 그 정도는 눈감아 주며 본 <리플리>에서, 리플리는 딕을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울컥함과 좌절된 동일시에 그만 푸른 바다 위에서 치정살인을 벌이고 만다. 섬뜩한 생명력의 리플리는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의 섬세한 소년 핼과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덜컥 ‘죽임’을 당한 딕은, ‘죽어’버린 배리와 참 많이 닮았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영원과 천상의 시간을 함께 누리지만, 열락이 지나고 나면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사랑에 구속받지 않을 수 있는 붙들어 매 둘 수 없는 영혼의 소유자들.
배리가 표류하는 요트에서 핼을 ‘건져낸’ 순간, 핼의 뒤죽박죽인 일상마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겨우 두 살 위일 뿐인데도 배리는 핼에게 새 인생을 주고, 사랑을 주고, 앞으로의 매 순간을 지배해버리는 유일한 의미가 되어버린다. 소년과 소년이지만, 한 소년은 이제 소년이기를 그만두라는 강요(진학이냐, 취업이냐의 갈림길)를 받고 있으며, 한 소년은 하루의 반은 약에 취에 있는 심약한 어머니를 돌보며 유능한 가장이 되어있어야 한다. 문학에 심취해 있고, ‘밥벌이는 안 되지만 글 쓰는 천형’을 타고났다는 선고를 들은 선택받은 자들의 동류의식이 둘의 의식을 그토록 쉽고도 단단히 포개지게 만든다.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쪽은 핼이었지만, 덜컥 죽어버린 것은 배리다. 그리고 배리는 한 사람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는 것을 가볍게 거부했지만, 상대가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에고의 소유자다. 길 위에서 날듯이 죽은 배리가 ‘무덤에서 춤추기’를 낙인처럼 남긴 것은 핼의 본성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핼에게 남겨진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한 배리의 환영과 무덤에서 춤을 추는 것의 의미를 더는 물을 수 없는 자의 고뇌와 이성으로는 이름붙일 길 없는 자기행동의 고립된 결과물이다. 죽어서까지 배리는 핼을 놓아주지 않는다.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할 자신의 그림자에 그럴듯한 형체와 회한을 듬뿍 안길 수 있는 그 맹세를 핼은 꼭 지킬 테니까.
한때 ‘문학반’이란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참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토록 성장통을 호되게 앓으면서도, 여린 속을 들킬까 더 빨리 어른인 채 해야 했던 그때를 거친 사람들은, 배리의 망령을 뒤집어 쓴 핼을 상식적인 잣대로 이해하지 않아도 마음의 영역에 불쑥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망자의 무덤에서 춤을 춘 핼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상담원이 커트 보네거트를 읽듯, 나 또한『제 5 도살장』을 잇따라 읽었다. 그리고 알게 된다.
핼이 써내려간 세상을 이해시키기 위한, 그리고 자신다움을 되찾기 위한 광인의 기록들은 소금기둥이라는 것을.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천명 받지만, 어쩔 수 없이 뒤돌아 보고나서 기둥으로 변해, 앞으로의 빛의 시간과 단절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기둥 안에서 치열하게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있는 이유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