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개학 첫날 저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어요. 누군가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제가 그 애도 신입생이냐고 물었거든요. 그 소문은 학교 안에 쫙 퍼졌지요.”

(『키다리 아저씨』, p 27, 진 웹스터 / 이주령 / 시공주니어)



    주디 애버트와는 다르게 모리스 메테를링크(또는 마테를링크)가 ‘올해의 신입생’이 아닌 것쯤은 익히 알고 있으며, 그의 노벨상 수상경력을 비롯해 국내에 참 드물게 번역되어있는 희곡을 읽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 처음 소개된 『벌』을 통해 알게 된 박물학자로서의 모리스 메테를링크는 생경했으며, 그의 박물문학은 생경함을 떠나 진기하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벌』은 면밀히 말하자면 ‘사육 꿀벌’에 관한 책이다. 메테를링크의 박물문학 연작이 『흰개미의 생활』,『개미의 생활』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그의 관심사가 위대한 사회생활을 구현하는 곤충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작가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쁨과, 박물문학 치고 재미없던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그간의 기대심리가 이중으로 작용해 읽기 전부터 얼마나 설렜던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무참히 기대감에서 해방(?)되었는지.


    파브르의 친절함과 흥미진진한 실험의 결과를 기대했다면, 메테를링크의 현학적 은유들에 좌절감이 배가 될 것이다. 베르베르의 『개미』처럼 관찰하는 어느 대상에의 경의가 창작의 영역에서 더욱 빛을 발하더라는 경우를 예상했다면, 메테를링크의 사육벌꿀을 한번쯤 키워봤음직한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매니악한 저술에 기가 꺾이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만약 어느 학자가 특별히 애정을 쏟는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에 몰입하고 있다면, 다른 생물들의 지성을 폄하하거나 단정에 빠지는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메테를링크는 꿀벌의 사회성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인간에게 종속되어있는 듯해도, 결코 노예상태로 머물지 않는 ‘그녀’들을 열정적으로 찬미한다.


    작은 뇌와 거대한 생식기관을 가진 무리의 중추인 여왕벌, 벌집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실질적 몸체인 처녀 일벌, 생식의 문제가 아니면 결코 용납되지 않았을 게으름뱅이 수벌, 후대를 위해 애지중지되기도 하고, 두 개의 태양을 가질 수 없는 성질 탓에 학살당하기도 하는 처녀여왕벌들이 어우러진 벌집의 속사정은 정해진 자연의 법칙을 준수하는 듯 보이지만, 오로지 단 하나의 이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유동적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것은 ‘미래’로, ‘벌집의 정신’이라고 메테를링크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꿀벌에게 ‘벌집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 유일한 손’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번성하는 무리들을 뒤로 하고, 여왕벌과 일부라고 하기에는 거대한 무리인 일벌무리들은 벌집을 떠나는데, 이것이 분봉이다. 분봉이 언제, 왜 이루어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절대적인 자기희생이라고 메테를링크는 말한다. 처녀여왕이 혼인비행을 통해 수천에서 수만의 수벌을 따돌리고 단 한 마리의 정자를 받아 일벌(암벌)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나 ‘벌집의 정신’이 인원감축과 식량저장량의 문제를 숙고하면서 내리는 과정에서 무능한 식객인 수벌들이 숙청당하는 것을 통해,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사육꿀벌의 숙명이 참으로 버겁게까지 느껴졌다.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반복되는 패턴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에, 종종 잘못된 결정으로 스스로를 몰살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사육꿀벌은 지능이 없는 존재라고 혹자는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십 년이 넘도록 서재에 벌통을 가까이 두고 관찰해온 이 희대의 문인이자 박물학자는 이런 식의 단정을 인간 사회에 빗대어 변주한다. 우리가 꿀벌사회를 관찰하는 것처럼, 인간사회를 관찰하는 외부의 시선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지성이 넘치는 무리도 비춰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베르베르의 『개미』에서, 개미와 ‘손가락들’의 밀고 당김을 떠올려보자). 인간의 무지함을 바탕으로 ‘그녀’들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 아니겠는가.


    자연의 ‘본능’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개념 이면에 엄연히 실존하는, 인간의 무지 탓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단순화시키는 오류들을 겸허히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준 한 권이었다. 메테를링크는 꿀벌에 대한 학술논문이나 전문적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 테지만, 문외한들이 읽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괴리가 고스란히 경외감으로 전환되는, 쉽게 하지 못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레기 형제 - 날개가 필요해 우리들의 날개 아름북스 12
이은하 지음, 홍영지 그림 / 삼성당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동화가 점점 진화한다. 판타지는 더욱 촘촘해져 연대기의 빈 곳을 찾아보기 힘들고, 슈퍼히어로가 아니더라도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있으며, 일탈과 금기의 파괴는 이제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동화가 다시 진화한다. 판타지와 모험을 벗어놓고, 현실의 남루함을 찾아 입는다. 일상을 포장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담담함이 강박적 해피엔딩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동화는 점점 아프고, 잔혹하게 진화한다.

    『쓰레기 형제』는 피멍 진 자국에서 나는 비릿함과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서글픈 악취가 책장 너머까지 진하게 풍겨오는 동화다. 대철이는 가정폭력에서 학교폭력, 부모의 무관심과 왕따까지 두루 겪는 분노와 울분이 겹겹이 쌓여있는 아이. 만복이는 재개발로 철거되어가는 동네에서 쓰레기를 주워 근근이 살아야하는, 별명마저 ‘쓰레기’인 극빈한 아이. 대철이의 구석진 반항과 거듭되는 폭력의 반향에 서늘해져간다면, 만복이의 가장 낮은 곳, 버려지고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감추어지지 않는 순수함이 처연해진다.

    사랑스러워야만 사랑받을 때도 있다. 부모는 아이를 무조건 감싸안아주고, 친구는 고민을 나누는 다시없는 사이이고, 아이들은 완전무결한 존재들이다……라는 전제야말로 현실을 왜곡하고, 아이의 현실을 외면하는 자위적인 고정관념이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워야만 사랑받을 때가 정말 있다. 끝없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타박과 분풀이로 자행되는 여기저기의 폭력에, 은밀한 마음 한 구석이 죄다 무너져 내린 대철이의 울퉁불퉁한 몸과 마음은 또 어떤 악순환을 부르게 될까.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다녀야만 철거되어버린 후에도 살집을 찾을 수 있는 만복이에게 짙게 배어있는 악취는 귀한 노동의 향기가 아니라, 끝없이 몸을 낮추고 가학적인 시선들을 감내해야하는 현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모욕과 냉소에도 해맑게 웃어주는 그 모습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비추는지, 조그맣고 지저분한 몸 안에 노인의 지친 혼이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못 견디게 서글픈 구석이 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대철이는 자신이 코뼈를 부러뜨려주었던 옛 친구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얻어맞는다. 이 아이는 아마, 앞으로도 한참을 이 피를 부르는 사슬 안에서 멍들어가겠지. 비록 철거촌의 폐가에서 종이 쓰레기를 덮어주는 것뿐 일지라도, 만복이는 대철이를 보듬어준다. 온 몸과 맘이 세상 모든 것들을 저주하고만 싶은 아이와 쓰레기 더미에서 삶의 희망을 찾아야하는 아이가 흔치 않은 친구가 된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했을 쓰레기’라고 불리는 대철이, ‘쓰레기’라는 별명에서 싱긋 웃으며 절박한 심정을 담은 손길로 쓰레기를 귀한 삶으로 바꾸는 만복이는 ‘쓰레기 형제’로 맺어지면서 마무리 진 이야기. 현실적인 악순환과 궁핍함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쓰레기를 쓰레기가 아닌 귀한 삶의 의미로 뒤바꿔놓을 줄 아는 존재가 서로에게 생겨났다. 대철이는 집에 가면 상처를 씻어주며 토닥거려줄 부모님이 아니라 분명 ‘쓰레기 같은 녀석’이라고 일갈할 부모를 만나야하고, 만복이는 여전히 지독한 쓰레기 냄새에 찌든 채 학교에 가야하지만, ‘쓰레기’는 어느새 치유를 부르는 이름으로 변해있다.

 

    사랑스러워야만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하는 아이가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6-08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차일드 2007-06-08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아이와 함께 읽으신다니, 제 맘이 따뜻해져오네요. 현명한 어머님께서 사랑으로 인도해주실거라 믿으니, 의미있는 아픔으로 승화될 것 같아요.
 

한계를 초월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5월

멀미가 날 정도였지만,

질려서라기보다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내하기에는 벅차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많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저 의무감으로 읽어야하는 리스트가 늘어가는 것과 비례해

내가 스스로 고른 리스트 또한 늘어나야한다는 법칙을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결론은

5월의 법정공휴일에 감사한다는 것.


 


 
(총 34권)

 

 

076   캐리커쳐로 본 여성 풍속사 / 에두아르두 폭스 / 미래 M&B

(700페이지의 분량이 전혀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는 눈이 호강하는 삽화가 돋보였다. 서평완료)

 

077  아버지의 깃발 / 제임스 브래들리. 론 파워스 / 황금가지

(이렇게 오역과 오타가 치열하게 나오는 번역물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나치게 축약되었다는, 그리고 적절히 각색되었다는 것을 확인)

 

078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가케하시 쿠미코 / 씨앗을 뿌리는 사람)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라고 볼 수 없다. 쿠리바야시 타다미찌의 서한이 원작의 일부.

그렇지만 영화의 황당한 비약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을 확인. 서평완료)

 

079  이덕일의 역사사랑 / 이덕일 / 랜덤하우스

(1인 언론으로의 진화를 확인. 역사는 맞불작전이 아니다. 서평완료)

 

080  엽기 고대왕조실록 / 황근기 / 추수밭

(비속하다고해서 엽기가 될 수는 없는 식상함. 서평완료)

 

081  부모로 산다는 것 / 김동명 / 두리미디어

(아버지와 아들, 자격지심을 물려주기 않기 위한 수평적 부자관계가 기억에 남는다. 서평완료)

 

082   엄마 미안해 / 아이리스 크래스노 / 추수밭

(어머니는 관념과 이상이 아닌 불완전한 여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한부의 사랑을 선고받은 딸이다. 서평완료)

 

083   시인 / 이문열 / 문이당

(동명의 소설을 청소년판으로 엮었다.

김삿갓 전설보다는 인간 김병연의 문학적 소명에 대한 전기)

 

084  소설 김삿갓 :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 이청 / 경덕출판사

(200주년 기념판이라는 자의적 타이틀이 버겁다.

전설을 실체화하려는 늘 그런 노력. 서평완료)

 

085   내 입 안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 김선우 / 미루나무

(넘치는 소녀스러움과 순정성에서 벗어나고 싶다. 서평완료)

 

086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 알랭 마방쿠 / 랜덤하우스

(올해의 발견이 된 작가.

저급하고 혼탁한 밑바닥 인생들이 거대 권력과 문단의 위선을 헤집는다. 서평완료)

 

087   가시도치의 회고록 / 알랭 마방쿠 / 랜덤하우스

('외상은 어림없지' 트릴로지의 2편.

인간과 야만과 위선과 위악의 경계없음에 대한 고발. 서평완료)

 

088   세상의 끝에 머물다 / 카타야마 쿄이치 / 랜덤하우스

('젊은' 일본작가 가운데 가장 엷은 색채. 여전히 98% 모자란다. 서평완료)

 

089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 노라 애프런 / 브리즈

(로맨틱한 것은 작가에 대한 기대와 표지뿐이다.

목주름에 관한 심도있는 고찰. 서평완료)

 

090   무지개 원리 / 차동엽 / 동이

(자기계발서를 대하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를 한 권. 서평완료)

 

091   희망수첩 이야기 / 한창욱 / 새론북스

(능숙한 매뉴얼의 활용. 그런데 번역물을 보는 듯하다. 서평완료)

 

092   단테의 신곡살인 / 아르노 들랄랑드 / 황매

([신곡]이 들어간 것치곤 가장 맥빠지는 허장성세.

일곱의 대죄가 억지스럽고, 무협지를 보는 듯한 행동보다는 구변 좋은 히어로. 서평완료)

 

093   톰 소여의 모험 / 마크 트웨인 / 창작시대

([톰 소여] 완역본 가운데 가장 삽화가 예술적이고,

다채로운 풍속을 소개하는 스칼라월드북스 특유의 충실한 사료가 일품)

 

094   피터 팬 / 제임스 매튜 배리 / 비룡소

(전편이 나오고, 속편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는 완역본.

비어있는 곳이 많아 자유롭게 변주되지만 아련하게 남는 원본)

 

095   돌아온 피터팬 / 제럴딘 매커린 / 김영사

(피터와 후크의 관계성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안들을 즐비하게 제시하는 분주한 속편)

 

096~097  피터 팬과 마법의 별 1, 2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

더 분명한 것은 피터 팬과 후크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것)

 

098~099 피터 팬과 그림자 도둑 1, 2

('피터 팬'이라는 타이틀 롤만 빼준다면 아무 불만없다)

 

100   시턴의 야생동물 이야기

([시튼 동물기]의 완역본을 전부 읽으려면 논장에서 나오는 5권의 도서를 읽어야한다.

합본으로 나와줘야마땅할 아이템!)

 

101  둘리틀 선생의 바다여행 / 휴 로프팅 / 시공주니어

(휴 로프팅 대신 소냐 랴무트의 삽화를 쓴 것은 용서할 수 없다.

4월에 읽고, 또 읽고... 몇 번이고 그자리에서 다시 읽을 수 있는 책)

 

102  둘리틀 선생 아프리카에 가다 / 길벗어린이

(9부작 시리즈의 첫 권의 완역본.

출판사에 따라 번역이 제각각이여서 판본에 따라 맛이 다르다)

 

103  못자국 / 현길언 / 계수나무

(전쟁이 아프고, 잔뜩 박힌 못자국이 서럽다)

 

104  모독 / 랠프 헬퍼 / 동아시아

(소울메이트란 완전한 행복과 처절한 희생의 동의어.

실화를 전설화하기 위한 포장적 문체를 벗겨낸다면 더 수작으로 남을. 서평완료)

 

105~106   지리교사 이우평의 한국지형 산책 1, 2

(지리적 상식을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던져놓아 힘겨웠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골라 읽을 수 있는 책임감 넘치는 한반도 생성의 역사. 서평완료)

 

107  미나의 행진 / 오가와 요코 / 랜덤하우스

(오가와 요코 만큼이나 중요한 일러스트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이 없다는 것이 흠.

테라다 준조의 삽화가 돋보이는 소녀들의 시간. 서평완료)

 

108  고독의 발명 / 폴 오스터 / 열린책들

(언제쯤이면 덜 충격적이고, 덜 애닯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처음 만난 폴 오스터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최근에 다시 읽은 폴 오스터) 

 

109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 야콥 하인 / 영림카디널

(기념촬영에서 빠진... 그러나 뇌리에 가장 각인된 한 권. 서평완료)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5월의 독서리스트
([그곳은 어쩌면 아름다울지도] 포함)
 


 


 
 
별 다섯 (정신없이 반해서) / 별 셋 (뭔가 부족한 ) / 별 둘 (생각해보니 벌써 기억 저편으로)
 
 
 
5월의 독서리스트 총 34편
서평완료 도서는 24편
 
그림책, 동화책 목록은 누락됨
 
 
 
5월의 책
 
[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아버지의 깃발]
 
 
 
 
 
조금은 여유롭게 읽자.
리뷰는 더욱 여유롭게 쓰자.
고를 수 없는 책이 늘어나면
골라서 읽어야할 책도 늘리자.
 
 
 
5월은 이미 지나갔다.
6월이 5월과 닮을 필요는 없다.
한국문학을 의식해서라도 넣자.
많이 읽었다고 부끄럽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은 것처럼
가장 나다운 책 읽기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자.
 
 
 
문차일드, 5월엔 참 바지런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설 김삿갓 -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이청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기행과 전설로 점철된 인물의 일대기에는 군데군데 공백기가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치밀한 고증 끝에 발굴되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고증보다는 한층 더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가미해 신화의 영역까지 진입해버리는 일도 벌어진다. 김병연, 김삿갓에 대한 전기물들은 저마다 ‘고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더 많은 전설을 창출해내는 역할을 선도해오지 않았나 싶다. 이미 진실여부보다는, 민간설화와 전설의 영역에서 그를 추모하는 일이 상식적인 과정으로 고착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청의『소설 김삿갓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은 ‘김삿갓 탄생 200주년 기념’이라는 소설보다 자못 무거워 보이기까지 하는데, 자의적으로 부여한 타이틀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전설 저 너머의 실제의 김삿갓을 형상화했다고는 하나, ‘실제의 김삿갓’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싶다. ‘저마다의 김삿갓’이 있을 뿐이다.


    이문열의 『시인』(아침나라, 2001)은 설화와 전설 속에 존재하는 김병연의 존재감을,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부각시켜 문학과 시의 치열한 가치증명을 꾀하는 유려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던데 반해, 이청의 소설은 세속적인 직설화법으로 세상의 악의와 부조리 안에서 재능과 반비례하게 비루해져가는 김삿갓의 인간적 면모가 부각되어 있다. 두 소설의 출발점의 상이함이 곧 지향점을 말해주는데, 세간에 회자되는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쪽은 오히려 이청 쪽이라고 할 수 있다.


    ‘충신 정시와 역적 김조순을 비교하는 글을 쓰라’는 시제를 받았다는 영월의 그 백일장에서 김병연은 과연 자신의 할아버지의 반역 여부를 알고 있었을까? ‘김삿갓’의 방랑과 일탈의 핵에 해당하는 설화 상에서는 그가 장원을 하고 난 후에야 패륜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김삿갓 전설에서도 드라마를 극대화하는 부분이 된다. 이청과는 달리, 이문열은 스무 살인 그 당시의 김병연은 이미 자신의 집안 내력을 알고 있었다고 전제한다. 영월에 터를 잡기 전까지 반역 죄인의 후손으로 여러 고을을 전전하며 살아야했던 와중에서 주변에 퍼져버린 집안에 대한 평판을 그가 모르고 있을 리 만무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문열의『시인』은 충효의 사상이 전면 충돌하는 백일장의 현장에서 할아버지를 버리고, 과거를 택해야만 하는 피눈물 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김병연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다. 


    당대에 누구보다 공령시에 능했다는 김병연. 그가 방랑길에서 곳곳에 남긴 유희와 파격이 가득한 희시가 아닌 공령시로써 명성을 펼쳤다는 대목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공령시란 과거를 통과할 수 있는 규격에 맞춘 입시용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과거길이 영영 막혀버린 내력을 가졌다 해도 입신양명의 꿈을 쉽게 저버릴 수 없었던 김병연에게, 넘치는 시재가 곧 반골기질을 돋우는 초석이 되어버린 것은 통절한 구석이 있다. 더 이상 썩어빠질 수 없는 문란한 과거장일지라도, 그의 열망은 가문의 회복과 권력에의 재진입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문열은 유년 시절, 가문의 내력 탓에 도망쳐 지내야했던 시절들이 그를 유랑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의 편력과 시 세계를 몇 기로 나누어, 금강산과 홍경래의 잔당들과의 만남, 취옹이라는 시선과의 조우들을 통해 그가 공령시, 희시를 벗고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올곧게 풀어내고 있다. 이문열의 ‘김병연’은 문학적 완성을 이룬 전설과 체화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에 대한 헌사 같이 빛이 나지만, 이 또한 후대가 보태는 ‘김삿갓 상’의 일부일 뿐, 전부로 굳어질 수는 없다.


    이청의 ‘김삿갓’이 여인네를 희롱하고, 권력의 핵에서 영원히 유리되었으면서도 서당에서 과거의 기술들을 전수하며 잠시의 안위를 챙기면서 제도의 문란함과 영속함을 한껏 조롱하며 육두문자와 말놀음의 절묘한 시들을 뿌려대는 와중에서 ‘홍경래 전’을 집필하기 위해 그 도당들에게 경도되는 모습은 정말 ‘소설’이기에 가능한 구상 같다. 당장 망해도 시원찮을 세상은 분명하지만, 체제전복을 옹호하는 혁명가로서의 김삿갓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구석이 많다.


   천재는 세상을 용인할 수 있지만, 세상을 천재를 온전히 품을 수 없다는 막연한 풍설이 김병연에게로 이르면 이보다 더 어울릴 수가 없다. 할아버지를 조롱하고, 썩은 과장을 농락하고, 저급한 지방교육의 행태를 고발하고, 야박하고 교만한 인정들에 일침을 가하고, 권력회귀와 신분상승에의 회환을 가까스로 풀어내버리면서 자신의 멍에인 시에서도 자유로워지는 문제적 인간 김병연, 그리고 김삿갓. 우리 시대의 문장가들이 빚어내는 그의 모습에는, 전설마저 초월한 자유의지의 구현으로 이상화한 경향이 엿보인다. 시가 그렇듯, 인생이 그렇듯, 우리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김삿갓이 있을 수 있을 만큼 그의 거대한 그림자의 명성에서도 자유롭고 싶어진다.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영원을 방랑하는 김삿갓을 전설에 더는 묶어두고 싶지 아니한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일본에는 세 가지 종류의 <세중사>가 있다. 카타야마 쿄이치 원작인『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그저 그렇게 판매되다가 묻혀버릴 뻔 했지만, 서점직원의 작은 소개  글이 계기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진 순문학 판매기록을 깨버린 세일즈를 기록했다. 곧이어 제작된 나가사와 마사미와 모리야마 미라이 주연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히라이 켄의 주제곡과 더불어 메가 히트를 기록했고, 일본에 ‘순애영화’의 폭풍의 전조가 되어 지금도 일본 극장가에는 홍수주의보(음... 송혜교와 차태현의 <세중사> 리메이크작 <파랑주의보(일본 개봉 시 타이틀 [내 세상의 중심은 너다(참나...)]>까지 넣을까???)가 가득한 영화들이 끊이지 않고 제작된다(얼마 전에 개봉한 <눈물이 주룩주룩>에도 나온다, 나가사와 마사미!). 그리고 동시제작으로 드라마화 되는 것이 정착되기도 했고. 드라마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야마다 다카유키와 아야세 하루카는 최루성 멜로의 한계를 넘어버리는 연기로 사쿠타로와 아키를 열연한 바 있다.


    흔히들 세 가지 <세중사>를 드라마, 영화, 원작 순으로 배열한다거나, 영화, 드라마, 원작 순으로 꼽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몇 번의 각색과 미디어믹스를 통해 옥석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카타야마 쿄이치는 여전히 <세중사>의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문학적 거품현상을 목도할 수 있는 최전방에 서 있는 작가 중에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것도 같다.


    <세중사>는 어찌됐든 후폭풍의 파급력이 엄청났던 작품이어서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굴레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숙하고, 순수해서 더욱 애처로운 그의 문체는 작품 수가 거듭한다 해도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여전히 견습 문학도가 쓰는 듯 정제되지 않은 풋내 나는 문장들이, 꼭 습작 상태의 가제본을 읽는 느낌을 부른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 문학 속에서도 초신성 급으로 자기존재를 공고히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반면,  카마야마 쿄이치의 ‘순정문학’은 메마른 감성을 적시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무심한 여운에 감싸이게 되는 경구가 종종 있다.


    여동생부부의 대리모가 된 아내 사에코가 정신적 균형을 잃고, 평온한 일상이 점차 피폐해져가는 것을 구제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남편 슌이치의 이야기. 자신의 불임 때문에 이혼한 전력이 있는 슌이치는 대리모가 되겠다는 사에코를 강하게 만류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내면의 파장이 엇나가기 시작한다. 사에코의 자궁은 모성을 품어서는 안 되는 자본력과 기술이 만들어낸 비윤리적 인큐베이터로 전락하면서 시작된 비극에, 뒤늦게 자신의 방치와 도피를 깨달은 슌이치가 개입하면서 비극적 상황들에 희망이 깃든다.


    사소설의 경향이 짙은 ‘젊은 작가’답게 가족과의 소통이나 사회적 입지에 무욕한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전쟁을 맘껏 분출하지도 못한 채, 일상 안에서 마모되어 간다. 그의 문체상의 기법들에는 참신함이나 치열한 자기선언이 부재한다. 그래서 비슷한 소재 안에서 여타의 작가들에 비해 더욱 자기복제성향이 강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싶다. 카타야마 쿄이치의 소설에는 98% 부족한 뭔가가 넘치기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후 몰입할 포인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