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일본에는 세 가지 종류의 <세중사>가 있다. 카타야마 쿄이치 원작인『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그저 그렇게 판매되다가 묻혀버릴 뻔 했지만, 서점직원의 작은 소개  글이 계기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진 순문학 판매기록을 깨버린 세일즈를 기록했다. 곧이어 제작된 나가사와 마사미와 모리야마 미라이 주연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히라이 켄의 주제곡과 더불어 메가 히트를 기록했고, 일본에 ‘순애영화’의 폭풍의 전조가 되어 지금도 일본 극장가에는 홍수주의보(음... 송혜교와 차태현의 <세중사> 리메이크작 <파랑주의보(일본 개봉 시 타이틀 [내 세상의 중심은 너다(참나...)]>까지 넣을까???)가 가득한 영화들이 끊이지 않고 제작된다(얼마 전에 개봉한 <눈물이 주룩주룩>에도 나온다, 나가사와 마사미!). 그리고 동시제작으로 드라마화 되는 것이 정착되기도 했고. 드라마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야마다 다카유키와 아야세 하루카는 최루성 멜로의 한계를 넘어버리는 연기로 사쿠타로와 아키를 열연한 바 있다.


    흔히들 세 가지 <세중사>를 드라마, 영화, 원작 순으로 배열한다거나, 영화, 드라마, 원작 순으로 꼽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몇 번의 각색과 미디어믹스를 통해 옥석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카타야마 쿄이치는 여전히 <세중사>의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문학적 거품현상을 목도할 수 있는 최전방에 서 있는 작가 중에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것도 같다.


    <세중사>는 어찌됐든 후폭풍의 파급력이 엄청났던 작품이어서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굴레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숙하고, 순수해서 더욱 애처로운 그의 문체는 작품 수가 거듭한다 해도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여전히 견습 문학도가 쓰는 듯 정제되지 않은 풋내 나는 문장들이, 꼭 습작 상태의 가제본을 읽는 느낌을 부른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 문학 속에서도 초신성 급으로 자기존재를 공고히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반면,  카마야마 쿄이치의 ‘순정문학’은 메마른 감성을 적시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무심한 여운에 감싸이게 되는 경구가 종종 있다.


    여동생부부의 대리모가 된 아내 사에코가 정신적 균형을 잃고, 평온한 일상이 점차 피폐해져가는 것을 구제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남편 슌이치의 이야기. 자신의 불임 때문에 이혼한 전력이 있는 슌이치는 대리모가 되겠다는 사에코를 강하게 만류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내면의 파장이 엇나가기 시작한다. 사에코의 자궁은 모성을 품어서는 안 되는 자본력과 기술이 만들어낸 비윤리적 인큐베이터로 전락하면서 시작된 비극에, 뒤늦게 자신의 방치와 도피를 깨달은 슌이치가 개입하면서 비극적 상황들에 희망이 깃든다.


    사소설의 경향이 짙은 ‘젊은 작가’답게 가족과의 소통이나 사회적 입지에 무욕한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전쟁을 맘껏 분출하지도 못한 채, 일상 안에서 마모되어 간다. 그의 문체상의 기법들에는 참신함이나 치열한 자기선언이 부재한다. 그래서 비슷한 소재 안에서 여타의 작가들에 비해 더욱 자기복제성향이 강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싶다. 카타야마 쿄이치의 소설에는 98% 부족한 뭔가가 넘치기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후 몰입할 포인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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