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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형제 - 날개가 필요해 우리들의 날개 ㅣ 아름북스 12
이은하 지음, 홍영지 그림 / 삼성당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동화가 점점 진화한다. 판타지는 더욱 촘촘해져 연대기의 빈 곳을 찾아보기 힘들고, 슈퍼히어로가 아니더라도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있으며, 일탈과 금기의 파괴는 이제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동화가 다시 진화한다. 판타지와 모험을 벗어놓고, 현실의 남루함을 찾아 입는다. 일상을 포장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담담함이 강박적 해피엔딩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동화는 점점 아프고, 잔혹하게 진화한다.
『쓰레기 형제』는 피멍 진 자국에서 나는 비릿함과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서글픈 악취가 책장 너머까지 진하게 풍겨오는 동화다. 대철이는 가정폭력에서 학교폭력, 부모의 무관심과 왕따까지 두루 겪는 분노와 울분이 겹겹이 쌓여있는 아이. 만복이는 재개발로 철거되어가는 동네에서 쓰레기를 주워 근근이 살아야하는, 별명마저 ‘쓰레기’인 극빈한 아이. 대철이의 구석진 반항과 거듭되는 폭력의 반향에 서늘해져간다면, 만복이의 가장 낮은 곳, 버려지고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감추어지지 않는 순수함이 처연해진다.
사랑스러워야만 사랑받을 때도 있다. 부모는 아이를 무조건 감싸안아주고, 친구는 고민을 나누는 다시없는 사이이고, 아이들은 완전무결한 존재들이다……라는 전제야말로 현실을 왜곡하고, 아이의 현실을 외면하는 자위적인 고정관념이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워야만 사랑받을 때가 정말 있다. 끝없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타박과 분풀이로 자행되는 여기저기의 폭력에, 은밀한 마음 한 구석이 죄다 무너져 내린 대철이의 울퉁불퉁한 몸과 마음은 또 어떤 악순환을 부르게 될까.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다녀야만 철거되어버린 후에도 살집을 찾을 수 있는 만복이에게 짙게 배어있는 악취는 귀한 노동의 향기가 아니라, 끝없이 몸을 낮추고 가학적인 시선들을 감내해야하는 현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모욕과 냉소에도 해맑게 웃어주는 그 모습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비추는지, 조그맣고 지저분한 몸 안에 노인의 지친 혼이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못 견디게 서글픈 구석이 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대철이는 자신이 코뼈를 부러뜨려주었던 옛 친구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얻어맞는다. 이 아이는 아마, 앞으로도 한참을 이 피를 부르는 사슬 안에서 멍들어가겠지. 비록 철거촌의 폐가에서 종이 쓰레기를 덮어주는 것뿐 일지라도, 만복이는 대철이를 보듬어준다. 온 몸과 맘이 세상 모든 것들을 저주하고만 싶은 아이와 쓰레기 더미에서 삶의 희망을 찾아야하는 아이가 흔치 않은 친구가 된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했을 쓰레기’라고 불리는 대철이, ‘쓰레기’라는 별명에서 싱긋 웃으며 절박한 심정을 담은 손길로 쓰레기를 귀한 삶으로 바꾸는 만복이는 ‘쓰레기 형제’로 맺어지면서 마무리 진 이야기. 현실적인 악순환과 궁핍함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쓰레기를 쓰레기가 아닌 귀한 삶의 의미로 뒤바꿔놓을 줄 아는 존재가 서로에게 생겨났다. 대철이는 집에 가면 상처를 씻어주며 토닥거려줄 부모님이 아니라 분명 ‘쓰레기 같은 녀석’이라고 일갈할 부모를 만나야하고, 만복이는 여전히 지독한 쓰레기 냄새에 찌든 채 학교에 가야하지만, ‘쓰레기’는 어느새 치유를 부르는 이름으로 변해있다.
사랑스러워야만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하는 아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