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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개학 첫날 저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어요. 누군가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제가 그 애도 신입생이냐고 물었거든요. 그 소문은 학교 안에 쫙 퍼졌지요.”
(『키다리 아저씨』, p 27, 진 웹스터 / 이주령 / 시공주니어)
주디 애버트와는 다르게 모리스 메테를링크(또는 마테를링크)가 ‘올해의 신입생’이 아닌 것쯤은 익히 알고 있으며, 그의 노벨상 수상경력을 비롯해 국내에 참 드물게 번역되어있는 희곡을 읽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 처음 소개된 『벌』을 통해 알게 된 박물학자로서의 모리스 메테를링크는 생경했으며, 그의 박물문학은 생경함을 떠나 진기하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벌』은 면밀히 말하자면 ‘사육 꿀벌’에 관한 책이다. 메테를링크의 박물문학 연작이 『흰개미의 생활』,『개미의 생활』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그의 관심사가 위대한 사회생활을 구현하는 곤충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작가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쁨과, 박물문학 치고 재미없던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그간의 기대심리가 이중으로 작용해 읽기 전부터 얼마나 설렜던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무참히 기대감에서 해방(?)되었는지.
파브르의 친절함과 흥미진진한 실험의 결과를 기대했다면, 메테를링크의 현학적 은유들에 좌절감이 배가 될 것이다. 베르베르의 『개미』처럼 관찰하는 어느 대상에의 경의가 창작의 영역에서 더욱 빛을 발하더라는 경우를 예상했다면, 메테를링크의 사육벌꿀을 한번쯤 키워봤음직한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매니악한 저술에 기가 꺾이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만약 어느 학자가 특별히 애정을 쏟는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에 몰입하고 있다면, 다른 생물들의 지성을 폄하하거나 단정에 빠지는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메테를링크는 꿀벌의 사회성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인간에게 종속되어있는 듯해도, 결코 노예상태로 머물지 않는 ‘그녀’들을 열정적으로 찬미한다.
작은 뇌와 거대한 생식기관을 가진 무리의 중추인 여왕벌, 벌집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실질적 몸체인 처녀 일벌, 생식의 문제가 아니면 결코 용납되지 않았을 게으름뱅이 수벌, 후대를 위해 애지중지되기도 하고, 두 개의 태양을 가질 수 없는 성질 탓에 학살당하기도 하는 처녀여왕벌들이 어우러진 벌집의 속사정은 정해진 자연의 법칙을 준수하는 듯 보이지만, 오로지 단 하나의 이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유동적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것은 ‘미래’로, ‘벌집의 정신’이라고 메테를링크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꿀벌에게 ‘벌집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 유일한 손’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번성하는 무리들을 뒤로 하고, 여왕벌과 일부라고 하기에는 거대한 무리인 일벌무리들은 벌집을 떠나는데, 이것이 분봉이다. 분봉이 언제, 왜 이루어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절대적인 자기희생이라고 메테를링크는 말한다. 처녀여왕이 혼인비행을 통해 수천에서 수만의 수벌을 따돌리고 단 한 마리의 정자를 받아 일벌(암벌)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나 ‘벌집의 정신’이 인원감축과 식량저장량의 문제를 숙고하면서 내리는 과정에서 무능한 식객인 수벌들이 숙청당하는 것을 통해,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사육꿀벌의 숙명이 참으로 버겁게까지 느껴졌다.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반복되는 패턴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에, 종종 잘못된 결정으로 스스로를 몰살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사육꿀벌은 지능이 없는 존재라고 혹자는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십 년이 넘도록 서재에 벌통을 가까이 두고 관찰해온 이 희대의 문인이자 박물학자는 이런 식의 단정을 인간 사회에 빗대어 변주한다. 우리가 꿀벌사회를 관찰하는 것처럼, 인간사회를 관찰하는 외부의 시선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지성이 넘치는 무리도 비춰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베르베르의 『개미』에서, 개미와 ‘손가락들’의 밀고 당김을 떠올려보자). 인간의 무지함을 바탕으로 ‘그녀’들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 아니겠는가.
자연의 ‘본능’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개념 이면에 엄연히 실존하는, 인간의 무지 탓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단순화시키는 오류들을 겸허히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준 한 권이었다. 메테를링크는 꿀벌에 대한 학술논문이나 전문적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 테지만, 문외한들이 읽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괴리가 고스란히 경외감으로 전환되는, 쉽게 하지 못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