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캐러멜!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
곤살로 모우레 지음, 배상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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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박하고 메마른 하마다(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의 자갈고원)에서 사하라위 난민들이 산다. 30년 전 모로코의 침략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서사하라를 빼앗기고, 핍박과 궁핍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자긍심만은 잃지 않은 채 비폭력투쟁을 계속하면서. 치욕과 증오가 아닌 생명과 공존을 가르치며, 절망 대신 희망을 기다리는 민족이.

    곤살로 모우레의 『안녕 캐러멜!』은, 귀가 들리지 않는 사하라위 난민 소년 코리와 아기 낙타 캐러맬이 나누는 우정과 이별에 대한 동화다. 네로와 파트라슈(<플랜더스의 개>)조디와 아기사슴(<아기사슴 플랙>)처럼, 브람과 모독(<모독>)처럼 소울 메이트로 맺어진 인간과 동물의 범접할 수 없는 소통에 관한 동화이면서, 삶과 죽음의 무게에 대한 시적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코리는 몇 가지 손짓으로 말을 만든다. 먹겠다, 자겠다, 학교에 가겠다...... 전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아질수록 코리가 체념해야하는 세상사가 늘어만 간다. 주변의 모두가 분주한 입모양으로 쏟아내는 말들은, 습관적인 몇몇의 이름 말고는 공허하게 산화한다. 윙윙대는 하마다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잔잔한 내면을 붙들고 사는 코리에게, 캐러멜 빛 털을 가진 아기낙타와의 만남은 자유로운 소통의 기적으로 다가온다.

    끊임없이 우물거리는 캐러멜의 입에서 시가 쏟아진다. 우리의 눈에는 되새김질하는 생각 없는 입질로만 보일뿐이지만, 코리의 시선으론 사랑하는 친구 캐러멜은 ‘코리’라는 이름도 분명히 부를 줄 알고, 태곳적 사막의 지혜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자와도 같다. 캐러멜이 쏟아내는 시들을 고이 간직하기 위해, 코리는 가르칠 길이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선생님에게 글을 배운다.

    로버트 뉴턴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에서, 온전히 내 것으로 정성을 다해 키운 암퇘지 ‘핑키’가 수태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로버트는 핑키를 죽일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인다. 돼지도살자였던 가난한 아버지도 울고, 로버트도 울면서, 살아가기 위해 때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희생의 무게를 절감한다. 이제 캐러멜도 도살되어야할 때가 다가온다. 거친 사막에서 젖을 내지 않는 숫낙타를 키우는 것은 사치이므로.

    코리가 로버트처럼 의연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것도 당연하다. 삶을 찾아 도망친 둘에게 사막이 가르쳐준다. 아니, 인정사정없는 사막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는 캐러멜의 시를 전해 듣는 코리는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한 번 빼앗긴 옛 조상의 사막은 생명이 아닌 고통을 품고 있지만, “나의 샘물을 너고, 너의 풀은 나”이기에 살아남은 자의 소명을 받아들인다.

    캐러멜은 사하라위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된다. 캐러멜의 시는 코리의 영혼에 고스란히 남아 사막의 시로 전해진다. 오로지 캐러멜과만 소통할 줄만 알았던 코리가, 캐러멜을 떠나보내고 나서 더듬더듬 소리 말을 배운다. 아니, 캐러멜의 시를 소리내는 법을 배우고, 캐러멜의 시를 널리 퍼뜨리는 소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빼앗긴 땅 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라는 이름의 사막 ‘하마다’에서, ‘얼마나 아름다운지’모를 생명과 공존을 품은, 긍지 높은 사하라위 사람들이 캐러멜의 시를 되새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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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범우 세계 문예 신서 3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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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아름답다’라고 하기 전까지, 그것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매료되고, 탐색하고, 소유하고, 집착하고, 무상해지는 그의 그것에 대한 애정과 찬사에 압도당하고 나서야, 아름다움이란 발견하고 지켜주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헤르만 헤세의 『나비』를 통해, 무상하고 덧없는 것, 한없이 자연친화적인 상징으로써의 ‘나비’를 겸허히 바라보게 된다.

    자연에 대한 경이감은 감상적인 거리감을 부르기도 하지만, 인간의 몰이해에서 비롯했을 뿐인 편견에 사로잡히다보면, 자연을 올바로 인식하는 일은 점차 멀어지게 마련이다. 헤세는 나비를 통해 발견한 최초의 매혹과 무념이라는 최후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나비에 대한 애정을 수기와 시, 일기와 단편소설 등의 형태로 남겨놓았다.

    『나비』는 그 가운데 뽑아낸 정수들을 모아 싣고 있으며, 나비 그림으로는 아우구스부르크의 화가이자 직물 무늬 도안가였던 야콥 휘브너의 동판화가 삽입되어 있다.


    헤세에게 나비는 “결코 동물이 아닌, 그것은 가장 화려하고 삶의 무게를 지닌 어떤 생물의 최후요 최고의 상태”를 일컫는 상징인데, 유충에서 변모한 나비는 “늙어가기 위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생산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기에 그토록 화려하고 덧없이 존재한다.

    나비의 매혹적인 자태는 핀에 꽂혀 박제된 상태에서도 수십 년 이상 보존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나비 수집가들의 열정은 가장 우스운 형태로 조롱받기도 하지만, 오래되고 진기한 나비들을 우리 곁에 머물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해준다. 그리고 진정한 나비 애호가들이라면, 나비가 사는 생태를 보존해주기 위해, 채집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쐐기풀을 재배하는 등에 힘을 쏟게 되기 마련이다.『나비』에는 헤세가 겪었던 집착과 탐욕과 무욕의 과정들이 가감 없이 등장하고 있다.

    헤세가 나비에의 매혹을 발견한 나이는 세 살이 끝나가는 무렵이었고, 정원일, 수채화, 낚시등과 더불어 우리가 헤세하면 떠올리곤 하는, 그의 문학과 생애에 깊이 있는 생기를 부여해주는 소소함을 넘어선 열정적 몰입에 ‘나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나비연구자가 아닌 찬미자로서, 과학적 성과가 아닌 문학으로 승화된 자기 성찰적 고백을 통해 경지에 다다른다. 나비의 극한적 아름다움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빚은 지고의 예술품임을, 보석보다 더 광채가 도는 헤세의 시적고백으로 비로소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보석을 녹여놓은 듯 찬란함의 결정체인 나비의 자태를 묘사하는 대문호의 필력에 광휘를 더하는 것은, 실사보다 더 생생한 동판 인쇄된 나비들이다. 손으로 조판하고 채색하여 만들어낸 동판화는, 나비의 덧없어 더욱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실재 이상으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공작나방, 아폴로나비, 부전나비, 오색나비, 인도나비, 마다가스카르나비, 상복나비- 인간이 자연에게 바치는 경이의 한조각일지라도, 완성된 어느 형태의 상형문자 앞에서 가감 없는 매혹을 드러낼 수 있도록, 그 아름다운 날갯짓에 초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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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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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이 한 권의 책에 지금껏 자신을 매료시켜왔던 문학적 편력들을 거침없이 내보인다. 몇몇의 작품과 작풍과 인생의 작가에 대한 편애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 때로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으며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장르문학에 대한 확신을 설파하는가하면, 경계 없이 어느 쪽으로든 열려있는 미증유의 스토리텔링을 예고한다. 쉽게 눈 돌리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현란하고 촘촘한 수사법을 총동원해 독자를 압박해오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문학적 성취를 미리 설계해놓음으로써 작가 스스로도 함께 매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온다 리쿠는 장르 문학과 대량 소비되는 연재물 속에서도, 매너리즘마저 청량하게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이 넘치는, 다작이 반가운 작가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어렵사리 전하기 위해 분투하기 보다는, 가장 자신 있는 장르의 변주를 거치며, 거듭되는 기시감을 통해 승부한다. 연작과 닮은 이야기들이 싫증이 날 때가 분명 오겠지만, 기꺼이 반해있는 편에 선 나로서는 여전히 그의 이야기에 목마르고 애타는 심정이기에 지금으로선 별다른 이의가 없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풍성한 향연을 베풀어주는 한 권이다. 그리고 거듭되는 자기복제와 변혁을 통해 닮은 듯, 다른 듯한 연작들이 속속 나와 주었지만, 원형이자 구심점이 지닌 메리트는 자못 강렬하다. 4부작으로 구성된 책 속의 책 이야기는 한 권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가 되기도 하고, 성장소설로 변모하기도 하고, 학원풍의 순정만화를 추구하기도 하다가, 어느 작가의 필생의 테마가 되어 앞으로 쓰일 책을 예고하고 있기도 한다. 


    『삼월은 붉은 구렁』은 4부로 이루어져있고, 책 속의 책「삼월은 붉은 구렁」도 4부로 구성된 책이다(온다 리쿠에게 있어 ‘4’라는 숫자가 갖는 완전무결함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데, 여타의 작품들에서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벌이는 사소하고 밀도 높은 심리극이야말로 온다 리쿠의 장기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마니아와 오타쿠의 경계에 선 독서광이라면 「삼월」이 가진 강렬한 도발에 절로 말려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고독한 사람이 모두 독서광은 아니지만, 독서광은 고독하다. 그러나 온다 리쿠는 고독한 독서광과 독서광으로 출발한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게 책이란, 독서란, 저작이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닌 지고의 가치임을 내보인다. 

    책 속의 책이 과연 실존하는지, 저자가 누구인지의 문제는 어느새 극히 사소한 문제로 뒤쳐진다. 극 중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등장하는 석류는 말 그대로 눈가림용이다. 표지에서부터 등장하는 증절모를 쓰고 낡은 가죽 트렁크를 든 신사, 고이즈미 야쿠모야말로 온다 리쿠가 「삼월」의 제국의 정점에 내세운 키워드이다(아일랜드 출신의 여행 작가 라프카디오 헌은 일본으로 귀화해 고이즈미 야쿠모로 변모해 민속과 괴담에 대한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이방인, 이(異)세계, 부정확성, 비 일상에 대한 기이한 집착들. 
 

    그럴듯하게 정리하여 이해하려고 할수록 「삼월」은 폐쇄적인 강박증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사방으로 열려있어 어떠한 틀에도 담지 않아도 좋은, 단순하게 재미있고 위안이 되는 한 세계로 다가온다. 왜 읽는지, 왜 쓰는지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체감. 트릭과 중첩된 복선이 겹겹이 쌓여있지만, 온다 리쿠는 그것을 풀어주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해서, 눈치 챌 겨를도 없이 어느새 일상에 스며들어버리는 익숙한 감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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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토지 제1부 1 - 박경리 원작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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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를 처음 읽은 것은 완간된 직후였다. 완간까지 기다리느라 애를 태울 필요는 없었지만, 읽는 내내 새까맣게 타버린 속내를 하고선, 세상엔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앞으로 읽어야할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 『토지』를 읽은 사람, 앞으로 읽을 사람,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될 사람인지도.

 

    누가, 언제 내셨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프랑스어번역본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부의 전체가 아니라, 1부의 1권을 불어로 번역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는 전설 같은 에피소드. 프랑스인인 역자가 경상도 사투리와 사투하며 일궈낸 성과였다고 한다. 『토지』를 쓰는 일, 읽는 일, 옮기는 일, 만드는 일 등 모두가 필생의 바쳐야만 하는 일임을 절감한다.


    오세영 화백의 만화 『토지』를 보는 순간, 원작과 더불어 해외에 소개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대하소설, 대하드라마의 기나긴 호흡이 때로는 우리에게까지 압도적인 시간과 몰입을 강제하는 경우가 있는데(물론 그 시간과 몰입은 경이와 찬사로 이어진다), 원작에 대한 단순한 축약이 아닌, 탁월한 각색과 시각화에 성공했다면 누구에겐들 추천하고 싶지 않을까. 만화화에 대해, 기대보다는 기우와 멸시가 더 컸던 만큼, 『토지』에 대한 애정과 도전이 제대로 승화된 대작을 만나게 되어 마음이 뒤집히는 일쯤에 자존심을 세우지 않을 수 있었다.   


    평사리의 황금들녘과 신명나는 한가위의 풍물로 첫 숨을 토하는 만화는 이내, 풍요로움 이면에 도사리는 온통 일그러져있는 추한 욕망과 일그러진 인연들로 얼기설기 짜인 인간군상을 가감 없이 비춘다. 선과 악의 모호한 구분보다는, 보다 욕망에 충실해 위선보다는 음모를 택한 이들과 속내를 알 수 없는 뒤틀린 이들, 아직은 순진무구하나 제 가진 것 모두 빼앗기고 부초가 되어야하는 이들이 여러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하나하나 구분될 만큼 살아 움직인다.


    귀기서린 음산한 눈빛과 짙은 병색에 깃든 파멸을 내재한 최치수, 사찰에 치성 드리러온 대갓집 아씨(윤씨 부인)가 동학당의 거두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태어난 구천이의 한 서린 바람 같은 얼굴, 신분의 벽과 관습 앞에 먼발치에서 평생을 사랑해야하는 용이와 월선이의 차마 손가락질 못할 서글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최참판 댁의 절손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이루려는 욕망과 집념의 여인 귀녀, 악덕과 복수를 후대에까지 대물림하는 시리즈 사상 100% 악인일지 모를 김평산, 그리고 아직은 음모와 치정극의 정중앙에 서 있진 않지만 곧 시대적 소명까지 짊어져야할 주역들로 자랄 서희와 길상이와 봉순이.


    인물묘사가 압권이다. 드라마세트로 본 평사리가 아닌 작고 조각난 칸 안에 들어찬 배경 안에서 꿈틀대는 들녘과 대갓집과 오막집, 장터와 풍물패들을 그려낸 배경들도 잘 어우러진다. 만화라고 해서 청소년과 아동에게 권할만하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하는데, 오히려 입문자용이라기보다는 축약된 만화『토지』의 세계관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완독자에게 적합한 작품이었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단시간 내에 읽어 내릴 수 있는, 군데군데 지루하고 벅차오르는 굽이 없이 읽을 수 있는『토지』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제 1권이다. 모세의 출애굽처럼, 평사리 주민들을 이끌고 간도로 향하는 서희를 미리 떠올려보면서, 곧 원작을 다시 손에 들어야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여러 차례 드라마가 되었으면서도 역시 1부가 가장 숨 가쁘다. 오세영 화백께서도 1부에 가장 많은 공력을 쏟으셨다고 하는데,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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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빠지다
김상규 지음 / GenBook(젠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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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을 겨루는 프로그램들이 화젯거리다. 대부분의 어휘에 외국어와 외래어를 잔뜩 섞어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센스 있어 보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여기고 싶지만, 그렇다고 우리말의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낙관할 수도 없다. 외국어, 외래어, 외계어, 이모티콘의 꾸준한 역습은, 우리말 지킴이들이 여느 때보다 분주한 사명감을 가지고, 사어가 늘어만 가는 우리말에 생기를 돋우기 위해 종종거리고 있다. 

 

    우리말의 어원이며 잘못된 활용의 예를 풀이한 책들이 심심찮게 쏟아지고, 관심을 끌고 있다. 한동안은 꾸준한 붐을 이루며 많은 호응을 받을 것 같다. 부끄럽지 않은 언어습관을 가지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유행이 아닌 일상으로 정착될 때까지 한동안은 ‘열공’에 힘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현직 국어선생님이고, 라디오방송작가 경력이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우리말에 빠지다』는 철저히 생활과 일상에 뿌리를 둔 우리말을 다루고 있다. 라디오에서 방송된 꼭지들답게, 짤막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고 있어 친근감이 느껴진다.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거슬러 올라보면 역사가 등장하고, 풍속이 살아 숨 쉰다. 말이란 어떻게 만들어지고 향유되는지, 왜 잘 써야하는지를 무섭게 호통 치며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찾아 읽을 만큼만 읽어도 무방하게 구성해놓았다.


    습관적으로 써온 속담이나 경구에는, 애초에 담긴 뜻과는 별개의 해석들이 첨가되어 내려오기도 하고,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비속한 표현들이 실상은 좋은 어감을 가진 말들이 암묵적인 합의로 인해 변용되기도 하고, 예전과는 달라진 시대적 조류 탓에 해학이 덧붙여져 새롭게 쓰이기도 한다. 우리말의 유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박증보다는, 하나의 말이 만들어지고 쓰이는 과정에서 소통의 흔적들이 어떻게 깃들어왔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흥겨웠다.


    풀어쓸 수 있는데도 외국어를 고집해서 쓰는 것이 센스 있어 보이는 때는 분명 지났다.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환영받은 때가 분명 올 것도 같다. 구어체로 쓰인 꼭지들을 하나씩 골라 읽고, 하루에 하나정도 주위에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작지만 유쾌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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