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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ㅣ 범우 세계 문예 신서 3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그가 ‘아름답다’라고 하기 전까지, 그것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매료되고, 탐색하고, 소유하고, 집착하고, 무상해지는 그의 그것에 대한 애정과 찬사에 압도당하고 나서야, 아름다움이란 발견하고 지켜주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헤르만 헤세의 『나비』를 통해, 무상하고 덧없는 것, 한없이 자연친화적인 상징으로써의 ‘나비’를 겸허히 바라보게 된다.
자연에 대한 경이감은 감상적인 거리감을 부르기도 하지만, 인간의 몰이해에서 비롯했을 뿐인 편견에 사로잡히다보면, 자연을 올바로 인식하는 일은 점차 멀어지게 마련이다. 헤세는 나비를 통해 발견한 최초의 매혹과 무념이라는 최후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나비에 대한 애정을 수기와 시, 일기와 단편소설 등의 형태로 남겨놓았다.
『나비』는 그 가운데 뽑아낸 정수들을 모아 싣고 있으며, 나비 그림으로는 아우구스부르크의 화가이자 직물 무늬 도안가였던 야콥 휘브너의 동판화가 삽입되어 있다.
헤세에게 나비는 “결코 동물이 아닌, 그것은 가장 화려하고 삶의 무게를 지닌 어떤 생물의 최후요 최고의 상태”를 일컫는 상징인데, 유충에서 변모한 나비는 “늙어가기 위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생산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기에 그토록 화려하고 덧없이 존재한다.
나비의 매혹적인 자태는 핀에 꽂혀 박제된 상태에서도 수십 년 이상 보존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나비 수집가들의 열정은 가장 우스운 형태로 조롱받기도 하지만, 오래되고 진기한 나비들을 우리 곁에 머물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해준다. 그리고 진정한 나비 애호가들이라면, 나비가 사는 생태를 보존해주기 위해, 채집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쐐기풀을 재배하는 등에 힘을 쏟게 되기 마련이다.『나비』에는 헤세가 겪었던 집착과 탐욕과 무욕의 과정들이 가감 없이 등장하고 있다.
헤세가 나비에의 매혹을 발견한 나이는 세 살이 끝나가는 무렵이었고, 정원일, 수채화, 낚시등과 더불어 우리가 헤세하면 떠올리곤 하는, 그의 문학과 생애에 깊이 있는 생기를 부여해주는 소소함을 넘어선 열정적 몰입에 ‘나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나비연구자가 아닌 찬미자로서, 과학적 성과가 아닌 문학으로 승화된 자기 성찰적 고백을 통해 경지에 다다른다. 나비의 극한적 아름다움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빚은 지고의 예술품임을, 보석보다 더 광채가 도는 헤세의 시적고백으로 비로소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보석을 녹여놓은 듯 찬란함의 결정체인 나비의 자태를 묘사하는 대문호의 필력에 광휘를 더하는 것은, 실사보다 더 생생한 동판 인쇄된 나비들이다. 손으로 조판하고 채색하여 만들어낸 동판화는, 나비의 덧없어 더욱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실재 이상으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공작나방, 아폴로나비, 부전나비, 오색나비, 인도나비, 마다가스카르나비, 상복나비- 인간이 자연에게 바치는 경이의 한조각일지라도, 완성된 어느 형태의 상형문자 앞에서 가감 없는 매혹을 드러낼 수 있도록, 그 아름다운 날갯짓에 초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