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의 포스트인지 의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돌아왔다는 것보다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네요.
 
 
책으로 만난 소중한 이웃들,
잘 지내셨는지요?
 
 
비로소 잘 지내게 된 문차일드가
여전한 모습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문차일드 도서관과 함께-
 
 
([문차일드 도서관]이라함은,
희대의 명작그림책인 [도서관]을 벤치마킹하려는
무모한 열정의 오마쥬일 따름입니다)
 
문차일드 도서관,
배치가 많이 바뀌었고,
새 가족이 속속 모여든 탓에
온갖 장르의 잡학적인 집합체로 거듭났습니다.
그것이 꼭 문차일드와 닮았네요.
 
 
그럼 문차일드보다 더 문차일드적인
[문차일드 도서관]
2008년 첫 리뉴얼입니다.
 
 
 

 
[겐지 이야기]와 [초원의 집] 전집을 밀어내고
[안톤 체호프 전집]이 등장했습니다.
나스카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선물,
펼치는 손이 조금 떨리게 되는 책입니다.
 
육중한 몸매를 여전히 과시중인 [도스또예프스끼]옹께서는 건재하시네요.
 


 
[E.M 포스터] 전집의 순백색 양장은 어느새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커버를 씌우거나 북커버 따위는 안중에 없이
들고다니면서 읽어댔더니만...
 
[폴 오스터]는 조만간 로열층을 떠나실 예정입니다.
 
[나니아 연대기]가 합본으로 있는 관계로 나니아 시리즈를 제외한
네버랜드 클래식의 전권이 모였습니다.
35권까지 출간된 [작은 아씨들]까지.
다음 권이 무엇일지 생각에 잠겨보는 것마저 즐겁습니다.
 
[헤럴드 블룸 클래식]과 [비잔티움 연대기]가
새로 영입된 거대소장본들입니다.
 
 


 
[해리 포터] 완결!
[타라 덩컨]의 계속되는 시리즈를
과연 언제까지 참아내며 읽을 수 있을까요?
 


 
판타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잘 씌여진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라는 사소한 거짓말.
 
주목해볼만한 책은 [무민가족] 전권입니다.
한 번 시작하면 며칠을 깔깔대면서 푹 빠져듭니다.
우문현답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촌철살인!



 
지금까지 발간된 [온다 리쿠],
수작들부터 읽기 시작해서,
범작의 홍수에 떠다니다
지나친 속편주의에 질려가고 있습니다.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한때는...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아직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임시거처에 머물고 있습니다.
[월터 스콧]의 경탄해 마지않은 완역판들이 절판이라
선물할 수 없어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전면으로 배치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세계문학과 그림책들이 기기묘묘하게 어우러진 서재풍경입니다.
몹시 흐뭇하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세계문학전집,
완역이나 새 번역이라고 해서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경험을 더 많이 마주칩니다.
고등학교 도서관의 오탈자가 더 많아
주인공의 풀네임을 과연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랐던
그 변색된 책들이 그리워지는 요즘...
 


 
분산시켜 놓으니
일본문학이 다소 주춤해보이는 위장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좀처럼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온갖 문학상 수상작가군들...
사요나라~
 

 
범우판을 읽다보면 가격만 개정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기 어느 한 권은
읽는 도중에 촌수가 바뀌는 일이 여러 차례 벌어지기도 합니다.
육중한 두께, 그에 비례하는 고민들.
 
[로맹 가리]를 부디...
어느 출파사든, 여러 출판사든...
완역, 전집, 완간... 부디 완수해주기를....
 
문차일드의 가장 아끼는 책,
[새벽의 약속],
고교 졸업 이후 처음으도 다시 만났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늘고 있어
정리가 아니라 제대로 건사하는 것에 급급한-
 
[전혜린] 에세이와 번역서들이
벼르고 벼르다 들어왔습니다.
예전만큼 동요하지 않는 것은 시간의 탓만일까요?
 
 



 
문차일드 도서관은
모든 연령에 열려있습니다.
조카들이 놀러오면 요 앞에서 진을 치고
그림책을 꺼내읽습니다.
 
'어른이' 문차일드가 온종일을 보내고픈 서가입니다.
 
 



 
팝업, 타샤 튜더, 로알드 달, 로렌 차일드-
완역 동화에의 집착은 강도가 높아질 뿐입니다.
 
스칼라 월드 북스 시리즈는...
네버랜드 클래식과 비룡소 클래식을 단숨에 무력화 시킵니다.
단지 완역동화시장이 무르익기 전에 나왔다는 이유로
조용히 절판 중인-
 
 

 
역사책, 종이접기책, 팝업북 메이킹 북...
그저 쌓입니다.
 

 

 
앤서니 브라운, 로렌 차일드...
책장이 저렇게 꽉 끼어있으면 자제가 되지 않을까
(3초도 지속되지 않는)위안을 삼아 봅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없고 [도스또예프스끼]만 잔뜩이라고
핀잔을 주시던 아빠께서
[레미제라블]을 영입하셨습니다.
 
언니네 집에 있는 동서문화사 판과 비교하자면 으음-
 



 
더 꽂을 곳이 없으면 늘지 않는다???
그건 아니지요~
 
 
베란다로 빼둔 책장,
거실의 붙박이장,
침대 옆의 두 개의 책장,
책장 위에 쌓아둔 분류할 수 없는 책들...
 
문차일드 도서관의 숨어있는 1인치입니다.
 
 
 
둘 곳도 마땅찮지만
새 책장을 사는 것은 그리 탐탁치 않습니다.
분명...
책장 하나 채우는데 걸린 시간을 어림잡아보면...
보람이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대로 방치하면서
나름의 효용성(?)을 얻으려 합니다.
 
 
 
문차일드,
문차일드 도서관과 더불어 돌아왔습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책 이야기, 세상 이야기, 그저 사는 이야기
많이 많이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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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 내 차로 떠난 실크로드&타클라마칸 14,000km
오창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기와 여행에세이가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일상을 탈출하고픈 이들이 많다는 것의 반증일까? 생활과 책무를 잠시 유예시킬 용기며, 결단력을 가진 이들이 풀어내는 여정의 성찰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길을 나선 그들 못지않은 감흥과 성찰을 느낄 수 있게 될 때가 분명 있다. 퍼스트 클래스와 오성 호텔, 일급 리조트로 호화롭기 그지없는 '관광'이 아닌,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도전하기 위한 자기 색을 가득 담은 여행이라면.

     유사한 테마를 다룬 책들을 연이어 읽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다. 실크로드를 다룬 전문서, 여행서, 에세이가 계속 소개되는 것은, 고대의 영광과 현재의 고단함을 함께 지닌 그곳에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아서일 것이다. 실크로드 전공자부터, 그저 그 길이 가고파서 선뜻 떠난 여행자까지, 각양각색의 실크로드 관련 도서들은 사막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담아내고 있어, 자꾸만 손이 가곤 한다.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는 사륜구동을 타고 14,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주파한 고교 교사 오창학 씨 일행의 여행기이다.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가 실크로드 전공자인 저자가 그 땅에 곤궁하게 살아가는 중국 내 소수민족들을 조명하기 위해 쓴 책이라면, 이 책은 실크로드와 소수민족, 고색창연한 역사적 자취보다는 사막 위를 달리는 캠핑 여행족이 주체로 다가온다. 2007년이면 한중 자동차 자유 여행 협정이 체결되어 더욱 편안하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도 있는 그 여정을, 바로 ‘지금’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절실한 도전정신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 ‘백구’와 ‘파라곤’으로 명명한 두 대의 사륜구동이 달린 자취는 이미 모래바람결에 지워진지 오래겠지만, 그 뒤를 따르는 실크로드 자동차 여행족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듯하다.

     전공자의 눈으로 들여다 본 실크로드의 어제와 오늘이 아니라, 일상을 잠시 유예시켜두었기에 다시없는 도전자가 되어 자신만의 실크로드를 발견해낸 생활인의 담백한 성찰이 인상적이다. 같은 나라, 같은 유적, 같은 사람, 같은 문화를 격고도, 사막의 낮과 밤만큼이나 상반되게 풀어나가는 여정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자동차라는 길 위의 성채를 끌고, 사막의 겸손한 여행자가 되기 위한 실질적인 계획들을 위한 세심한 조언들이 가득 실려 있어, 유사한 여행루트와 이동수단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일탈과 방랑벽, 역마살과 재충전을 꿈꾸는 생활인들에게 선뜻 길을 떠나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이리저리 잴 것도 많고 의지박약의 핑계 많은 우리네의 등을 확실히 밀어주고 있는 그런 여행서가 있다. 그 길이 실크로드이든, 네 바퀴로 가는 수 만 킬로미터이든, ‘지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가지라고 촉구하는 그런 책이 있다. 당신은 그 책과 만났는가? 그리고 길 떠날 준비는 이미 마쳤는가? 여전히 페이지를 넘기며 여행을 유예시키고 있다면, 조만간 떠날 수 있기를, 나부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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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술탄의 궁정화원들이 이슬람정통의 세밀화의 기법을 둘러싸고 벌이는 살인극을 풀어가는 추리극과 운명적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밀화가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통의 방식대로만 그림을 그려야하는 사명을 부여받지만, 때때로 새로운 기법을 통해 불멸을 얻고자 하는 이단적인 화풍을 추구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전통의 고수와 금기와 경계에 자유롭고 싶은 당대의 예술혼들의 충돌은 예술가와 그 작품을 소재로 한 팩션의 당당한 한 축이 되어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가 된다.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에서 나타나는 갈등구도도 마찬가지이다. 양식과 전통을 비루할 정도로 고수하려는 도화서의 화원들과 그리도록 규정된 것보다 그리고픈 대로 시대를 그려내려는 천재의 대립관계에 10여년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재등장하면서 긴박감이 더해진다. 17세기, 정조 대왕 치하의 두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예술혼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치열한 경쟁과 찬탄어린 정면대결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흥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인데, 두 천재의 작품을 둘러싼 탄생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농밀한 시간까지 가질 수 있었다.

     중인계급의 화원들이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며, 화원 최대의 명예인 임금의 어진을 그릴 수 있는 기회까지 허락받을 수 있는 도화원. 그러나 재능 없는 자들의 자리보전과 탐욕은 절대적 양식미의 고수라는 절체절명의 대의만을 중시하며 타락해간다. 이에 반발하며 시대의 궤도를 단숨에 뒤흔들어놓는 신윤복의 천재성에 위기감을 느낀 위정자들과 신윤복 사이를 간신히 지탱해나가려는, 또 다른 천재 김홍도는 신윤복의 스승으로 시대를 포용하며 예술적 관용을 이루어내려는 중간자로 등장하고 있다.

     집현전을 무대로 삼았던 전작 <뿌리 깊은 나무>보다 한층 시대와 예술을 고민하며 버려진 이 책은, 우리네가 잃어버리고 말았던 신윤복의 삶을 심상치 않은 반전을 내세워, 진한 묵향과 생동감 넘치는 색채의 향연 속에서 복원해낸다. 단원과 혜원의 같은 주제를 그린 판이하게 다른 화폭을 해석해내는 솜씨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다. 건강한 노동과 익살스런 자유분방함이 안정된 구도 속에서 소박하게 담겨있는 단원의 황토 빛 화풍과 풍만한 여인들을 은밀한 욕망을 스스럼없이 대담한 색채로 담아낸 혜원의 화려한 화풍이 앞으로도 한참동안 아른댈 듯싶다.

     스승과 제자, 예술가 대 예술가, 시대를 품으며 아낌을 받은 천재와 시대의 금기와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은 존재 자체가 금기였을지 모를 다른 천재의 이야기. 우리도 세계 속에 당당히 자랑할 만한 이런 화원들을, 그림들을, 시대를 가졌노라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떠오른다. 야사와 억측으로만 전해져오던 어느 잊혀진 전설적 존재, 시대를 사사롭게 만들 정도로 분방하며 범접할 수 없던 어느 예인의 일생에 어지러워온다. 그러나 쉬 잊히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이정명을 가진 우리 시대에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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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무한한 창조의 샘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5
프란체스코 갈루치 지음, 김소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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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의 그림이 도난당했다거나, 유족과 미술관 사이의 소유권 분쟁이 일어났다거나 하는 토픽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피카소에 대한 논의와 찬사와 유산의 향방은 여전히 뜨거운 이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종종 반문해보게 된다. 과연 피카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정설로 굳어진 해석대로만, 일화를 넘어선 전설적인 행로에 대한 찬탄대로만,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점철된 사생활대로만 아는 것이 전부라면, 실상은 전무하다는, 무지할 대로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카소 : 무한한 창조의 샘』은 불멸의 명성과 복잡한 사생활에 가려져왔던 피카소의 작품 세계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있는 비평서이다. 몇몇의 키워드와 상징, 감히 이견을 가질 수 없었던 기존의 해석들에 갇힌 채, 무지 속에 가둬둔 피카소에 대한 몰이해를 조금이나마 깨우칠 수 있던 기회가 되었다. 기나긴 생애 속에서, 쉼 없는 변혁과 열정으로 시대를 선도해나간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마치 처음으로 들여다본 것 같은 자극을 받는다.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은 유년시절부터, 스페인 아카데미화풍을 계승해 명성을 찾았던 초창기를 필두로, 파리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러 문인들과 화가들과 화상들과의 교류로 인해 화풍이 변해가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시기, 입체파의 거두로서 세계 미술계에 던진 충격과 폭발적인 영향력이며, 입체파를 벗어던지고 정치적, 도덕적인 사회여적 테마를 바탕으로 공공기념물에 천착한 시기, 명화들을 모사하거나 무용극, 조각, 공예로까지 확장되는 말년의 작업까지, 그의 부단한 일평생에 걸친 예술혼을 전문가적 해설에 의지해 경청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피카소의 화풍이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 읽을 수 있도록, 그가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과 친우, 당대의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빼곡하게 담아낸 해설 사이사이의 삽입된 미술작품들이 효과적으로 편집되어 있는 것이 돋보였다. 입체파 시절을 열어주었던 아프리카 미술(조각)이 피카소에게 끼친 영향을 처음 확인할 수 있었고, 입체가 다시 평면으로 회귀하면서 더욱 강렬해진 색채와 화면 분할의 묘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으며, 영향을 주고받은 지난 세기의 화가들과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얼기설기 엮인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피카소가 받아들여서 재구성한 고전 명화들이 심상치 않은 혼돈의 회화로 거듭나고, 충격과 경이에 휩싸인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더욱 공고히 확립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이 이룩한 불멸의 영역에 안주하는 일 없던 예술혼이 어떻게 시대를 뒤흔들며 새로운 관념들을 부단히 창출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피카소'라는 거대하고 불확실한 시대의 표상 속에서 길을 잃은 채이지만, 무엇을 파고들어야 허상과 실체를 구분해낼 수 있을지 효과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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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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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에 일본에서 개봉해, 흥행과 비평 안팎으로 대성공을 거둔 영화 <올웨이즈 3쵸메의 석양>의 동명 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영화의 원작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은 동명 영화의 원작이 아니다. 1973년부터 30여 년간 연재되어 1300만부가 판매되었다는, 사이간 료헤이의 만화 <3쵸메의 석양>을 원작으로 하여 미디어믹스 된 것이 영화와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자후기를 비롯한 소설 곳곳에 잘못된 정보를 실고 있는 셈이다.

     전후 10년 정도가 막 지났을 무렵의 쇼와 30년대, 1950년대의 도쿄를 무대로, 곤궁하지만 인정 넘치는 인물군상이 건강한 희망을 꿈꾸며 살았던 '그때 그 시절'이야기가 바로 『3번가의 석양』이다. 도쿄타워가 건설되기 직전, 도심의 어디에서도 건설현장을 볼 수 있는 바지런한 재건의 기운이 넘쳐나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헤이세이를 사는 일본인들에게 진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판타지를 제공하는데, '쇼와 테마파크'로 만들어질 만큼 붐 업한 시류의 정점에 서 있는 영화와 소설이 바로 <올웨이즈 3쵸메의 석양>과 <3번가의 석양>인 것이다.

     설핏 봐도 기름때로 절은 작디작은 자동차정비소(영화에서의 스즈키 오토)의 다혈질 사장과 인정 넘치는 안주인, 한 결 같이 성실한 종업원 로쿠의 이야기. 문구점을 운영하며 문예지 공모를 노린지 십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근근이 에로소설과 어린이 대상 오락소설을 써오고 있는 차노카와 류노스케가 엄마 잃은 소년들 거두는 이야기. 천으로 만든 우산 하나로 비오는 날을 버텨온 카즈히로네 이야기. 엄마 혼자의 힘으로는 네 아이를 부양하기 힘들어 큰댁으로 입양가게 된 쇼자부로 네 이야기 등등. 3번가에 어우러져 사는 소시민들의 일상이 제각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교차되어 인정을 주고받으며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나서 읽는다며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스즈키 오토의 순박한 남자직원인 로쿠는 영화에서는 호리키타 마키가 분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골처녀로 바뀌는 등, 원작만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소설)와는 달리 참신하게 변주되고 있는 설정들이 많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국내에 소개될 가능성이 미비해 보이는 사이간 료헤이의 만화를 짐작해보게 하는 것은 영화보다는 소설 쪽일 것이다.

     그리고 원작과 영화와 소설, 또다시 만들어 진다는 영화 <속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것은, 고도성장기와 거품경제를 맞닥뜨려 무미건조하게 마모되어 가는 후기자본주의의 인간상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살갑게 어우러져 궁핍함 속에서도 훈훈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던 모습이다. 고물 TV 한 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역도산을 응원하며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던, 일본인이 잃어버린 스카이라인이 낮디 낮은 도쿄를 아늑하게 비춰주던 석양이 한없이 그리운 그때의 이야기, 우리네 또한 박치기 왕 김일에 열광하며 순수를 지켜나갔던 그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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