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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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에 일본에서 개봉해, 흥행과 비평 안팎으로 대성공을 거둔 영화 <올웨이즈 3쵸메의 석양>의 동명 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영화의 원작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은 동명 영화의 원작이 아니다. 1973년부터 30여 년간 연재되어 1300만부가 판매되었다는, 사이간 료헤이의 만화 <3쵸메의 석양>을 원작으로 하여 미디어믹스 된 것이 영화와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자후기를 비롯한 소설 곳곳에 잘못된 정보를 실고 있는 셈이다.

     전후 10년 정도가 막 지났을 무렵의 쇼와 30년대, 1950년대의 도쿄를 무대로, 곤궁하지만 인정 넘치는 인물군상이 건강한 희망을 꿈꾸며 살았던 '그때 그 시절'이야기가 바로 『3번가의 석양』이다. 도쿄타워가 건설되기 직전, 도심의 어디에서도 건설현장을 볼 수 있는 바지런한 재건의 기운이 넘쳐나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헤이세이를 사는 일본인들에게 진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판타지를 제공하는데, '쇼와 테마파크'로 만들어질 만큼 붐 업한 시류의 정점에 서 있는 영화와 소설이 바로 <올웨이즈 3쵸메의 석양>과 <3번가의 석양>인 것이다.

     설핏 봐도 기름때로 절은 작디작은 자동차정비소(영화에서의 스즈키 오토)의 다혈질 사장과 인정 넘치는 안주인, 한 결 같이 성실한 종업원 로쿠의 이야기. 문구점을 운영하며 문예지 공모를 노린지 십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근근이 에로소설과 어린이 대상 오락소설을 써오고 있는 차노카와 류노스케가 엄마 잃은 소년들 거두는 이야기. 천으로 만든 우산 하나로 비오는 날을 버텨온 카즈히로네 이야기. 엄마 혼자의 힘으로는 네 아이를 부양하기 힘들어 큰댁으로 입양가게 된 쇼자부로 네 이야기 등등. 3번가에 어우러져 사는 소시민들의 일상이 제각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교차되어 인정을 주고받으며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나서 읽는다며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스즈키 오토의 순박한 남자직원인 로쿠는 영화에서는 호리키타 마키가 분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골처녀로 바뀌는 등, 원작만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소설)와는 달리 참신하게 변주되고 있는 설정들이 많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국내에 소개될 가능성이 미비해 보이는 사이간 료헤이의 만화를 짐작해보게 하는 것은 영화보다는 소설 쪽일 것이다.

     그리고 원작과 영화와 소설, 또다시 만들어 진다는 영화 <속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것은, 고도성장기와 거품경제를 맞닥뜨려 무미건조하게 마모되어 가는 후기자본주의의 인간상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살갑게 어우러져 궁핍함 속에서도 훈훈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던 모습이다. 고물 TV 한 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역도산을 응원하며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던, 일본인이 잃어버린 스카이라인이 낮디 낮은 도쿄를 아늑하게 비춰주던 석양이 한없이 그리운 그때의 이야기, 우리네 또한 박치기 왕 김일에 열광하며 순수를 지켜나갔던 그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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