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히 처참하고, 손 쓸 수 없어 고스란히 비애감에 빠질 것이 눈에 보여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아니 싫기까지 했다. 한참 전에 사두고, 그때 마침 터져버린 비슷한 사례의 여러 기사들에 한없이 우울해지고 왠지 모를 책임의식에 시달리는 것에서조차 도망치고 싶어서. 그리고 확인하는 순간, 여전히 도망치고 싶어 할 나를 발견하는 것이 분명해져 올까봐. 가해자와 방조자의 죄 값은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자문하기도 하면서 뒤늦은 격분에 몸을 싣는다.


무진 시의 안개는 도시를 명물로 만들어준 표상이지만, 『도가니』의 무진 시의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는 짙은 안개는, 진실을 은폐하고 죄진 자들을 감추며, 가장 낮은 곳의 가련한 존재들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엄폐물과 다름없다. 안개가 걷히고 나면 드러나야 마땅할 진실과 정의들은, 그네들의 색안경과 편견, 고질적인 사회구조의 폐해 덕분에 더욱 철저히 은폐되고 포장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건강한 자와 장애가 있는 자들의 대치가 아니라, 도덕에 장애가 있는 자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들의 힘겨운 싸움이다.


무진 시의 자애학원은 청각장애인을 교육하는 오랜 전통의 기숙학교다. 선친의 뜻을 이어받은 쌍둥이 형제가 운영을 맡은 이 사립학교는 공공연한 비리가 너무도 많아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아니 상식과 윤리를 가진 사람이 일하기에는 너무도 이질적인 곳이다. 학교발전기금 명목의 뇌물이면 수화나 특수교육전문 자격이 없어도 교사로 채용되고, 자신들의 부덕의 소치 탓에 학원 내의 만성적인 폭력과 폭행, 성적인 유린에 암묵적으로 방조하고 있다.


     "앞으로 여기 계시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피해의식이 심한 것이 농인들이에요. 자기네들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도 특징이구요.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민족이라고 하면 그들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민족이죠. 아시겠어요? 다른 민족이라구요.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거짓말도 그들의 풍습 중 하나지요." (p32)


강인호는 사업에 실패하고 실업에서 벗어나고자, 무진의 자애학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게 된 외부인이다. 그는 자애학원의 교사들이 청각장애학생들에게 갖는 적의나 무심함에 충격을 받고, 아이들의 구조요청을 외면할 수 없는 양심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가 아이들의 편에서 학교의 권력자들, 무진 시의 유지들과 맞붙어 정의를 관철하려는 행위는 가족들의 안위에 반하는 것으로, 개인적 행복과 생활을 위협하는 결과를 부른다. 『도가니』는 바로 이런 소시민적 존재들의 힘겨운 분투의 연속적인 장이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재판까지 성사되었으나 무진 시의 유지들은 단단히 얽힌 공동운명체마냥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모범이다. 판사, 변호사, 시교육청, 유력교회, 지역유지들은 이 치졸한 성적범죄행각을 세간의 상식을 가져와서 변호한다. 오히려 수화를 통해 극한의 상황을 견디며 증언을 하는 아이들을 수치와 은혜를 모르는 폐륜아들로 몰아붙이고, 피의자들의 사회기여도를 참작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도는 성공적이다. 아이들의 가난을 이용해 부모를 매수해 고소를 취하하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정의가 설 자리는 마련되지 않는다.


무진 시는 수직적 구조 속의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권력과 재물과 연고가 고스란히 정의구현의 이름으로 무법을, 후안무치의 비상식을 자행한다고 해도, 진실이 가진 힘은 너무나 누추해서 합법적으로 대치할만한 힘을 지닐 수가 없다. 때로는 진실마저 매수해버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횡행하는 사회질서의 폭력 앞에 소시민들의 분규는 생활력이 상실된 무책임한 소란행위로 치부된다. 누구를 위한 법이며, 정의이며, 진실인가? 우리는 이것이 소설적 망상이 아닌 지독히 현실적인, 아니 현실은 이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는 고발임을 안다.


공권력을 등에 업고, 면죄부까지 받은 자애학원의 자애롭지 못한 윤리적 장애인들은 죄 사함을 약속받고 천국에 들 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양심과 도덕이 결여된 수직구조의 꼭대기에 선 자들은, 강인호의 소시민적 변절을 예상한 바라고 실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전한 상식이, 일말의 진실이, 더 가지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길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척박하지 않은 환경이라고 믿는, 마음이 건강한 이들에 의해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불편한 진실에서 도피해 얻은 평안은 공중누각에 불과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성한 아들이 결혼해 어머니를 집에 모셔서 식사를 하는데, 생선대가리를 어머니의 밥그릇에 올려놓으면서 "어머니, 이거 좋아하시죠?"라고 생색을 냈다는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 실제로 엄마가 생선 가운데 토막은 마다하면서 대가리와 꼬리를 드시면서 종종 맛있다고 하실 때마다 뭔가가 치솟는 느낌이다. 몸에 베인 엄마근성. "엄마가 엄마를 아끼지 않으면 나중에 자식들이 알아줄 거 같아?" 같은 말이라도 곱게, 조근조근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왠지 엄마에게는 버럭 화를 내며 타박하는 일이 일상적이 되곤 한다. 후회하고, 후회하고 있는 것조차 까먹고 또다시 생채기를 내는 대화를 이어가다 먼저 토라져버리는 일이 다반사.


신경숙 소설 속의 고향집. 평상이 있고, 텃밭이 있고, 헛간이 있고, 개집이 있고, 엄마가 있어야 완성되는 그 치유의 공간. 『엄마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고향집. 평상이 있고, 텃밭이 있고, 헛간이 있고, 개집이 있고, 엄마가 있어 완성되던 그 공간은 결코 치유의 장이 아니다. 자식들이 장성할수록, 잊혀져가는 엄마가 처절하게 상처받고 마모된 공간이다. 엄마를 회환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죄 많은 자식들의 엄마,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엄마에 대한 참회록일 수도 있으며, 엄마를 벗은 엄마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를 분석하는 심층적인 보고서일 수도 있는, 신파이면서 신파가 아닌, 피하고 싶었으나 피할 수 없었던 이 책.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그리고 절절하게 깨닫는다. 소설가인 딸이, 장남이, 남편이, 그리고 엄마가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엄마'는 동일인물이면서도 하나로 포개지기를 거부한다. 엄마의 다양한 모습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남은 가족, 엄마를 잊고, 잃고 나서의 가족들이다. 엄마의 자리를 박제해놓고, 편할 때만 찾는 것이 익숙했던 가족들에게, 엄마의 부재와 낯선 얼굴들은 충격과 경악, 자신들이 층층이 쌓아올린 과오의 강력해져만 가는 재확인이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는 말에 편의적으로 속아 엄마가 홀로 뇌졸중을 앓았으며, 극악의 두통과 망각 증세에 시달려왔음을 방치해왔고, 문맹인 엄마가 지하철 서울역에 홀로 남아 자식들에게 연락할 수 없음을 그제야 서늘히 상기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피가 식는다. 자식들이 예전에 살았던 서울의 모처를 거지의 형상으로, 농지고 피투성이인 슬리퍼 차림으로 터벅터벅 걸어다는 것을 단서로 남겨두는 엄마의 모습에서 귀가가 아닌 정리의 형상이 느껴지는 이 불길함. 엄마는 망각의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삶과의 별리를 가족의 동참 없이 진행시키고 있는 듯하다.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17세에 시집와 여섯 아이들 낳고, 그 중 한 아이를 사산으로 잃었으며, 정작 필요할 때는 없고, 끊임없는 방랑벽과 바람기로 가정을 위태롭게 한 남편이 있었으며, 시지푸스같은 노동의 굴레를 안고 살아 그것이 본연의 모습처럼 각인되었고, 살뜰한 보살핌의 결과가 고마움보다 귀찮을 때가 종종 생기는 즈음이 잦아졌으며, 정작 엄마의 실존과 욕구에는 모두가 무감했던 까닭에 엄마의 실종은 회복불능의 처참함으로 삶을 피폐화한다. 엄마의 삶을 피폐하게 한 이들이 맞게 된 부메랑마냥. 엄마를 엄마가 아닌 '박소녀'로 기억하는 것은 엄마가 은밀하게 의지처로 삼았던, 지금은 넋이 나가버린 가난한 촌부 한 사람뿐인 것을.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얼굴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p254)


세상의 모든 딸들이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것은 얼핏 엄마에의 찬사처럼 비치지만, 엄마를 규정짓는 굴레이기도 한 "나는 엄마처럼은 못할 거야. 내 자식에게 엄마처럼은 하지 못할 거야.". 엄마의 인생을 내 인생의 담보물처럼 여기고, 그것을 당연하게 누려왔던 시간들이 전 인생에 걸쳐져 있다는 것에 경악한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엄마의 희생은 기꺼이 그래야만 한다고 마음껏 욕심내왔던 이들에게, 이 책은 경종이 되기도 하고, 살가운 희망이기도 하다.


엄마 또한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다는 것을 안다. 엄마의 엄마는 부재하지만, 이제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는 관계가 역전되는 시간이 가까워져만 온다. 엄마의 모래시계가 다 떨어져버리기 전에, 엄마를 잊고, 잃어버리지 않는 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엄마와 나 사이에 남겨져 있음에 소박하지만 절대적으로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발표된 1974년과 거의 끝나버린 2009년, 그렇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한 세대도 훌쩍 지나버린 물리적인 시공이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참신하고, 그만큼 아프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아동문학계에, 교육계에 몰고 온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재독을 할 때마다 느끼는 어른됨의 비애가 아닐까싶다. 눈시울이 시큰해지면서도 떨칠 수 없는 불편한 감각, 회색지대에 어정쩡히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결코 편치만은 않은 자기고발 같다.


쓰레기처리장 부근의 히메마쓰 초등학교에서 처리장 내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악명 높은 평판을 가졌다. 지저분하고, 버릇없고, 말썽을 피우고, 야단을 듣는 것이 만성적인. 학교에서는 비위생적인 처리장 아이들에게 급식당번을 시키는 일이 오히려 다른 아이들에 대한 역차별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기까지 한 속에서, 스물 둘의 신입교사 고다니 선생님은 학급의 문제아, 데쓰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파리를 친구삼아 집 안 가득 병에 채워두고 키우는 아이. 천성이 밝고 예쁜 여선생님이 감당하기엔 데쓰조의 여건은 정말 최악이다. 말수도 없고, 글도 못 쓰고, 온 몸에 악취가 풍기고, 파리 말고는 관심을 두는 것이 없는 데쓰조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다니 선생님은 파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인간이 파리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수정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파리의 독립적이고 서민적인 습성은 처리장 아이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과 꼭 닮았음을 깨닫는다.


파리의 이름으로 글자를 배우고, 파리의 세밀화를 그리면서 관심사를 넓혀가고, 파리의 생태를 완벽하게 파악해서 인근 햄 공장의 파리문제를 해결해주고, 데쓰조에게 파리는 애완동물에서 소통의 방편이 된다. 고다니 선생님의 이러저러한 시도는 학급 이외의 곳에서는 타박의 대상이 된다. 특정학생만 편애하는 공평치 못한 교사, 신입교사의 무책임한 오지랖, 살림도 야무지게 못하면서 이상한 곳에 신경을 쓰는 주부 등등. '선생님'이라는 직위를 완성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다니 선생의 분투를 통해 알게 되는데, 좌절하면 눈물부터 흘리고, 선의가 아닌 행동들에 서슴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을 흘기고, 서슴없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아다치 선생에게 질투를 느끼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를 인간적인 교사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처리장 이전을 두고 관청과 이웃 주민과 학교에서는 첨예한 다툼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아이들은 등교파업을 감행한다. 처리장 일을 멈추면 당장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을 겪게 된다며 아이들이 직접 맞서게 한다는 인부들의 방침은 그 선의가 쉽게 왜곡되고, 소수의 선생님들이 학교대표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인 선전행위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아다치 선생님의 단식투쟁과 처리장 아이들 또한 히메마쓰 학교의 소중한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점차 퍼져나가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남을 수 있는 방안에 탄력을 얻으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되지만-


그렇지만 정말로 아이들이 히메마쓰에 남을지, 데쓰조와 고다니 선생님은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지, 주민들과 처리장 사람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지는 열린 결말 속에서 밝은 분위기와는 달리 더 많은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처리장 아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아다치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거친 언행을 서슴치않고 드러내, 편보다 적이 많다. 고다미 선생님의 교사로서의 첫 발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실패와 성장의 미담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상황은 몇 해지나지 않아 그를 마모시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가난에 짓눌렸지만, 자존심만큼은 누추하지 않은 처리장 아이들은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여전히 문제아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생님은 완성된 인간형의 극치가 아니다. 선생님은 문제아라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다수의 선한 양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문제적 학생의 진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는 힘을 쓰기엔 역부족이다. 세간의 기준에 안착해 착실한 교육의 부산물로서 자라는 것 자체 또한 칭찬해 마지않을 미덕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변혁시키는 부류는 대부분 기준의 밖에 서있는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성장하며 어우러지는 이상적 학교를 꿈꾸기엔 절대적으로 수직경쟁적인 현실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힘들고, 힘듦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한 세대 전의 아동문학의 고전이 여전히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며, 진행형의 과제를 잔뜩 떠맡은 기분에 휩싸인다. 표정 없고, 말 없는 데쓰조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선생님을 울게 만드는 작문을 짓고, 목소리를 내고, 먼저 주변의 손을 잡는 가슴 벅찬 형상에 뜨거워지는 지금, 존재할 것이 분명한 세상의 모든 고다니 선생님들과 처리장 아이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의미 있는 실패와 더불어 성장하는 그 모든 좌충우돌한 순간순간들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로 5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 동안 나를 시드니 올림픽의 순간으로도, 위스키 성지로도, 그가 달리는 마라톤의 노상으로도 초대하면서, 쉴 새 없이 지루하지 않게 배려해주기도 했으니 마냥 불평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의 재기 넘치는 에세이와 장정을 달리하거나, 원제를 되찾아 발간되는 지난날의 소설이 아닌, 그의 신작, 새로운 소설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꼭 그만이, 그의 짐작도 할 수 없는 베일 속에 가려져있던 『1Q84』만이 해갈해줄 수 있는.

 읽기도 전에 묘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것을 고백한다. '쥐' 4부작을 비롯해 장편소설들을 다시 읽으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하다못해 모티브가 된『1984』를 새로 정독할 것인지. 5년의 간극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방대한 두 권의 신작을 앞에 두고 쉽게 책을 펼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연일 쏟아졌던 그의 수상경력과 거대한(그리고 새삼스러운) 미디어의 조명은 '『1Q84』를 세심하게 읽는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부추겼을지도 모른다고 자조하면서.

 막상 펼쳐본 『1Q84』는 사소한 강박 따위에 사로잡힐 겨를을 주지 않았다. 명쾌하고 가벼워 보이면서도 카피하는 순간 매력을 상실하게 하는 그만의 문체도 여전하고, 패러랠 월드, 영매 타입의 미소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존재감을 감추어둔 주인공들, 수위는 높지만 어쩐지 담백하게 비치는, 섹스를 말하는 하루키스러운 묘사 등이 전작들과 변함없이 상통해있고, 고전마저 하루키의 코드로 재해석하는 솜씨를 따라잡기만도 벅찼을 따름이다.
 

 더 이상 미래소설이 아닌 조지 오웰의 『1984』는 철저하게 건조하고, 무자비하게 말살되어 버린,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정점에 서 있지만, 『1Q84』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히려 동시대를 사는 이들이 함께 좌절하고, 극복하고, 다시 좌절해버리면서도 시대에 함몰되지만은 않은 상생을 이야기한다. 자살한 '쥐'와 소시민적 일상을 지키고자 언제나 고군분투했던 '나'로 대변되던 전공투 이후의 젊은 세대가 '양'과 '불확실한 벽'등에 맞섰던 것에서 진일보해, 강제로 단절되어 버린 시대정신의 틈으로 스며든 불길한 시스템의 전횡에서 진실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인물군상은 과연 승리할 것인지 마음 놓을 길 없이 좇으면서.

 2권, 각 24장(총 48장), 아오마메와 덴고가 교차되며 등장하는『1Q84』는 현실세계와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이 야기한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데, 하나의 달과 두 개의 달로 두 세계를 구분 지을 수 있다.
  

 기록과 기억이 바뀌어버린 미묘한 순간들이 어디서부터 생겨나고, 어긋났는지를 의심하고, 회의하며 '1Q84(의심스러운 1984년)'를 발견해낸 아오마메는,『1984』의 일탈을 꿈꾸지만 확고한 저항정신은 부재했던 줄리아보다 강인하고 다채로운 히로인이다. 유년시절을 부모의 맹신적인 종교 활동에 희생당하고,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사귄 동성친구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자살로 인해,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는 파렴치한 남자들을 처지 하는 비밀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덴고에의 평생의 사랑을 간직하며 사는 아오마메는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의 진실을 위태롭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헤쳐 나간다.

 명징한 해답이 존재하는 수학과 자신의 불확실한 정체성의 빈틈을 메워주는 소설 창작에 동시에 매료되어 있는 덴고는, 사회적 책무가 확고하게 요구되는 상황을 피해가면서 소소한 일상과 의미 없는 문학적 활동을 이어간다. 그를 일시에 뒤흔들고 문학적 진일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이니컬하게도 고스트라이터로서, 온통 비밀스럽고 정의할 수 없는 미소녀 후쿠에리의 「공기 번데기」를 리라이팅하면서부터였다. 숲의 심연에 존재하면서 은밀하게 시스템의 배후에 서 있는 리틀 피플의 존재가 등장하는.

 하루키는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테러 사건 당시의 피해자와 교단의 실행멤버들을 면밀히 인터뷰하고 분석해냈던 논픽션『언더그라운드』를 발표하면서 작가적 전기를 맞이했다. 그 후 발표된 단편집『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에서 기존의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 변환했으며, 작가활동 25주년이던 해에 발표되었던『어둠의 저편』은 3인칭으로 저술한 첫 장편이었다. 하루키는 '언제나 청춘스러울 것'이라는 한 번 고착되어 쉬이 수정되지 않았던 선입견을 물리치고 시대적 변혁과 아픔마저 보듬어내며 30주년을 맞이해 『1Q84』에 이르러 전공투, 옴진리교, 고도자본주의, 전체주의의 도래 속에서 스러져가는 개인에의 연민 등을 관통해내고 있다.

 전공투의 과격한 혁명정신을 계승했으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괴멸한 '여명'과 유기농법과 안온한 평화적 공동체를 지향하다가 종교단체로 진화하는 '선구(분연히 옴진리교를 모델로 한)'가 원래는 하나의 단체였다는 설정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전공투 이후의 좌절한 구사고와의 강제적 유리, 부재하는 시대정신 속을 파고드는 거품경제와 정치적 선동이 횡행하는 시스템의 피라미드 안에 갇혀, 때로는 '양'에 의해, 리틀 피플에 의해 조정당하는 '선생'과 리더에 의해 재구축되어 나가고, 조작된 현재를 저항 없이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소름끼치는 현실이다. '1984'와 '1Q84'의 미세한 간극을 회의하는 것이야말로 그것에 대한 유일한 저항이기도 하고.

 바흐의 <평균율 크라비아곡집>에 맞춰 총 48장으로 구성된 이 대작은 그것으로 완결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었으나, 하루키가 3부를 집필하고 있다고 천명한 지금, 한 없이 열려있는 하나이자 두 개, 그리고 다시 하나로 포개지는 세계가 된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유년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성장기로도, 그들의 지순한 순애보로도, 권력을 가지는 순간 부패해버리고 마는 거대한 시스템과 자유의지의 힘겨운 싸움으로도 볼 수 있는 미완의 『1Q84』는 완결을 기다리는 절대적으로 초조한 그 시간동안 풀어낼 화두를 던진다.
 

  두 개의 달이 뜨고,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교차할 수 없는 패러랠 월드가 레일을 바꿔가며 달리고 있는 이 순간! 과거를 새로 쓰고자 하는 열망에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현재가 과거가 되어가는 이 순간을, 어느 세계에 담겨있든 살아내라고! 다행히도 우리는 동시대에 태어나 같은 달을 바라볼 수 있는, 지켜내야만 하는 소중한 존재와도 함께 라는 것을! 덴고가 느낀 그대로 '언제나 격려해주고 지켜주었던'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의 힘찬 팀파니소리를 테마로 삼아보아도 좋을 런지도!

 어떤 세계에 존재하고, 그녀가 누구든 아오마메를 찾기로 결심한 덴고를 응원하는 동안 그 기다림의 시간이 성큼 끝나있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에게 치욕적인 콜드패를 당했지만 설욕에 성공한 WBC 아시아라운드는, '야구는 역시 9회 말부터'라는 진부한 슬로건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스포츠의 묘미만큼이나, 스릴러 영화며 추리 소설 등등, 반전이 있기에 더욱 빠져들고 중독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분야들이 있다. 그렇지만 잊지 못할 반전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패색을 가장하거나, 결말을 짐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겹겹의 트릭이 작가의 악취미에서 비롯된 교묘한 위장술로 밝혀질 경우에 느끼는 불쾌함이란. 결국 반전이란 충격과 경탄의 지능플레이기도 하지만, 극한의 아드레날린 유발욕구에 갇힌 강박증의 확인일 수도 있다.

읽기 전부터 이 책엔 반전이 있고, 결말을 읽은 후엔 장르의 전복마저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는 『이니시에이션 러브』. 완전판 주석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으며, 반전에 허를 찔린 독자라면 반드시 두 번 읽게 될 거라는 호언장담에 왠지 지고 싶지 않은(?) 내 안의 호전성을 발견하고 읽기 전부터 심리전을 시작해버렸다. 결국 이 책은 반전의 굴레를 예고하고, 트릭을 간파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사후 정답지를 제공한다는 걸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뒷장부터 살펴보는 독자에게 저주 있으라!

커버 디자인을 주목하자. 지금은 사양길로 접어들어, 매니아층의 열렬한 추종과 수집욕구를 불태우게 만드는 LP판에 적힌 A, B side 총 12곡의 수록곡은 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J-POP들이다. 그리고 각장의 소제목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복선이기도 하지만, 그네들의 정서에 해박하지 못한 이웃나라의 신세대들에게는 역주가 아니면 공감대를 느끼기 힘든 타인들의 추억의 편린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애정전선의 향방을 짐작하게 하는 장치로 삽입된 <일곱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는 국민드라마 또한, 역주가 아니면 넘겨짚는 것도 어려운 구세대의 젊음의 코드이기도.

그렇지만 이렇게 따져가며 태클을 거는 독자에게 몰입의 은총이 있을 수 없는 법! 반전강박증 따윈 단기기억상실 모드로 잠시 접어두고,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재생버튼을 누르듯 책 속으로 유영한다. 사랑 노래들이 하나씩 하나씩 흘러나오고, 그리 남다를 것 없는 그네들의 연애사정도 점차 진작되어간다. 


스즈키 유키와 나루오카 마유코의 막 시작된 사랑에서는 유치하고 풋내 나는 미숙함이 묻어난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고, 이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강한 열망이 전해져온다. 이대로 더 깊어져가는 일만 남아있을 줄 알았던 두 사람에게 닥친 원거리 연애의 아슬아슬한 균형감각에 휘청거리느라 바쁘다가도 뭔가 핀트가 어긋나는 에피소드들이 쌓여간다. 스즈키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료 직원 이시마루 미야코가 가세한 삼각관계로 흘러가는가 싶더니, '그' 스즈키가 '그' 스즈키만은 아닌, 그러니까 '그' 스즈키가 '그' 스즈키와는 다른……. 아악!

'마지막 세 줄'을 읽으면 연애소설이 미스터리로 전환된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지만, 그 전에라도 트릭을 간파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두 명의 스즈키, 두 명의 스즈키와 동시진행형의 사랑을 하는 마유의 관계의 진실을 친절한 정답지, 상세한 주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이누이 구루미가 삽입한 겹겹의 장치들은 정교하긴 하지만 교활하지는 않기에, 결말에 다다르지 않아도, 턴테이블 위의 LP가 다 돌기 전에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순수한 첫사랑이라고 믿었던 스즈키와 마유의 사랑이 진실에 어둡고, 위장에 능하기 때문임을 알게 된 후의 잔향은 결코 아련하지만은 않다. 사랑의 영속성을 부정하고, 연애란 찰나의 몰입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타이틀인 '이니시에이션(통과의례)'에 대해 설파하는 덴도 타로는 짤막하게 등장할 뿐이지만, 작가의 화신 같은 캐릭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니컬한 관조들이 트렌디 드라마의 코드로 덥혀 있기 때문에 연애소설이든, 미스터리물이든 재독을 하면 할수록 씁쓸해질 것은 분명하다. 턴테이블 위의 LP가 A side를 재생하고 있다고 해도, B side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돌고 있다는 해석이 인상적이다. 통과의례적인 사랑을 영원 인양 믿으며 되풀이하는 연인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에서 상처만을 기억하고 사랑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 절망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다양한 복선들이 가히 불친절하지만은 않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우타니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다 읽으면 그 내용이 그 내용이 아니게 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참신한 반전소설, 영화를 즐기는 미스터리 매니아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는 아직 자라는 중인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건 성장을 억지로 막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앞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바뀔지도 모르고 지금은 맥주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와인이 더 좋아질지도 모르죠. 마찬가지로 제일 좋아하는 상대도 바뀔지 몰라요. 우리는 아직 변해도 좋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215 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