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발표된 1974년과 거의 끝나버린 2009년, 그렇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한 세대도 훌쩍 지나버린 물리적인 시공이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참신하고, 그만큼 아프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아동문학계에, 교육계에 몰고 온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재독을 할 때마다 느끼는 어른됨의 비애가 아닐까싶다. 눈시울이 시큰해지면서도 떨칠 수 없는 불편한 감각, 회색지대에 어정쩡히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결코 편치만은 않은 자기고발 같다.


쓰레기처리장 부근의 히메마쓰 초등학교에서 처리장 내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악명 높은 평판을 가졌다. 지저분하고, 버릇없고, 말썽을 피우고, 야단을 듣는 것이 만성적인. 학교에서는 비위생적인 처리장 아이들에게 급식당번을 시키는 일이 오히려 다른 아이들에 대한 역차별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기까지 한 속에서, 스물 둘의 신입교사 고다니 선생님은 학급의 문제아, 데쓰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파리를 친구삼아 집 안 가득 병에 채워두고 키우는 아이. 천성이 밝고 예쁜 여선생님이 감당하기엔 데쓰조의 여건은 정말 최악이다. 말수도 없고, 글도 못 쓰고, 온 몸에 악취가 풍기고, 파리 말고는 관심을 두는 것이 없는 데쓰조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다니 선생님은 파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인간이 파리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수정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파리의 독립적이고 서민적인 습성은 처리장 아이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과 꼭 닮았음을 깨닫는다.


파리의 이름으로 글자를 배우고, 파리의 세밀화를 그리면서 관심사를 넓혀가고, 파리의 생태를 완벽하게 파악해서 인근 햄 공장의 파리문제를 해결해주고, 데쓰조에게 파리는 애완동물에서 소통의 방편이 된다. 고다니 선생님의 이러저러한 시도는 학급 이외의 곳에서는 타박의 대상이 된다. 특정학생만 편애하는 공평치 못한 교사, 신입교사의 무책임한 오지랖, 살림도 야무지게 못하면서 이상한 곳에 신경을 쓰는 주부 등등. '선생님'이라는 직위를 완성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다니 선생의 분투를 통해 알게 되는데, 좌절하면 눈물부터 흘리고, 선의가 아닌 행동들에 서슴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을 흘기고, 서슴없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아다치 선생에게 질투를 느끼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를 인간적인 교사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처리장 이전을 두고 관청과 이웃 주민과 학교에서는 첨예한 다툼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아이들은 등교파업을 감행한다. 처리장 일을 멈추면 당장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을 겪게 된다며 아이들이 직접 맞서게 한다는 인부들의 방침은 그 선의가 쉽게 왜곡되고, 소수의 선생님들이 학교대표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인 선전행위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아다치 선생님의 단식투쟁과 처리장 아이들 또한 히메마쓰 학교의 소중한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점차 퍼져나가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남을 수 있는 방안에 탄력을 얻으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되지만-


그렇지만 정말로 아이들이 히메마쓰에 남을지, 데쓰조와 고다니 선생님은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지, 주민들과 처리장 사람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지는 열린 결말 속에서 밝은 분위기와는 달리 더 많은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처리장 아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아다치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거친 언행을 서슴치않고 드러내, 편보다 적이 많다. 고다미 선생님의 교사로서의 첫 발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실패와 성장의 미담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상황은 몇 해지나지 않아 그를 마모시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가난에 짓눌렸지만, 자존심만큼은 누추하지 않은 처리장 아이들은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여전히 문제아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생님은 완성된 인간형의 극치가 아니다. 선생님은 문제아라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다수의 선한 양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문제적 학생의 진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는 힘을 쓰기엔 역부족이다. 세간의 기준에 안착해 착실한 교육의 부산물로서 자라는 것 자체 또한 칭찬해 마지않을 미덕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변혁시키는 부류는 대부분 기준의 밖에 서있는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성장하며 어우러지는 이상적 학교를 꿈꾸기엔 절대적으로 수직경쟁적인 현실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힘들고, 힘듦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한 세대 전의 아동문학의 고전이 여전히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며, 진행형의 과제를 잔뜩 떠맡은 기분에 휩싸인다. 표정 없고, 말 없는 데쓰조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선생님을 울게 만드는 작문을 짓고, 목소리를 내고, 먼저 주변의 손을 잡는 가슴 벅찬 형상에 뜨거워지는 지금, 존재할 것이 분명한 세상의 모든 고다니 선생님들과 처리장 아이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의미 있는 실패와 더불어 성장하는 그 모든 좌충우돌한 순간순간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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