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에게 치욕적인 콜드패를 당했지만 설욕에 성공한 WBC 아시아라운드는, '야구는 역시 9회 말부터'라는 진부한 슬로건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스포츠의 묘미만큼이나, 스릴러 영화며 추리 소설 등등, 반전이 있기에 더욱 빠져들고 중독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분야들이 있다. 그렇지만 잊지 못할 반전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패색을 가장하거나, 결말을 짐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겹겹의 트릭이 작가의 악취미에서 비롯된 교묘한 위장술로 밝혀질 경우에 느끼는 불쾌함이란. 결국 반전이란 충격과 경탄의 지능플레이기도 하지만, 극한의 아드레날린 유발욕구에 갇힌 강박증의 확인일 수도 있다.

읽기 전부터 이 책엔 반전이 있고, 결말을 읽은 후엔 장르의 전복마저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는 『이니시에이션 러브』. 완전판 주석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으며, 반전에 허를 찔린 독자라면 반드시 두 번 읽게 될 거라는 호언장담에 왠지 지고 싶지 않은(?) 내 안의 호전성을 발견하고 읽기 전부터 심리전을 시작해버렸다. 결국 이 책은 반전의 굴레를 예고하고, 트릭을 간파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사후 정답지를 제공한다는 걸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뒷장부터 살펴보는 독자에게 저주 있으라!

커버 디자인을 주목하자. 지금은 사양길로 접어들어, 매니아층의 열렬한 추종과 수집욕구를 불태우게 만드는 LP판에 적힌 A, B side 총 12곡의 수록곡은 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J-POP들이다. 그리고 각장의 소제목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복선이기도 하지만, 그네들의 정서에 해박하지 못한 이웃나라의 신세대들에게는 역주가 아니면 공감대를 느끼기 힘든 타인들의 추억의 편린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애정전선의 향방을 짐작하게 하는 장치로 삽입된 <일곱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는 국민드라마 또한, 역주가 아니면 넘겨짚는 것도 어려운 구세대의 젊음의 코드이기도.

그렇지만 이렇게 따져가며 태클을 거는 독자에게 몰입의 은총이 있을 수 없는 법! 반전강박증 따윈 단기기억상실 모드로 잠시 접어두고,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재생버튼을 누르듯 책 속으로 유영한다. 사랑 노래들이 하나씩 하나씩 흘러나오고, 그리 남다를 것 없는 그네들의 연애사정도 점차 진작되어간다. 


스즈키 유키와 나루오카 마유코의 막 시작된 사랑에서는 유치하고 풋내 나는 미숙함이 묻어난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고, 이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강한 열망이 전해져온다. 이대로 더 깊어져가는 일만 남아있을 줄 알았던 두 사람에게 닥친 원거리 연애의 아슬아슬한 균형감각에 휘청거리느라 바쁘다가도 뭔가 핀트가 어긋나는 에피소드들이 쌓여간다. 스즈키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료 직원 이시마루 미야코가 가세한 삼각관계로 흘러가는가 싶더니, '그' 스즈키가 '그' 스즈키만은 아닌, 그러니까 '그' 스즈키가 '그' 스즈키와는 다른……. 아악!

'마지막 세 줄'을 읽으면 연애소설이 미스터리로 전환된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지만, 그 전에라도 트릭을 간파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두 명의 스즈키, 두 명의 스즈키와 동시진행형의 사랑을 하는 마유의 관계의 진실을 친절한 정답지, 상세한 주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이누이 구루미가 삽입한 겹겹의 장치들은 정교하긴 하지만 교활하지는 않기에, 결말에 다다르지 않아도, 턴테이블 위의 LP가 다 돌기 전에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순수한 첫사랑이라고 믿었던 스즈키와 마유의 사랑이 진실에 어둡고, 위장에 능하기 때문임을 알게 된 후의 잔향은 결코 아련하지만은 않다. 사랑의 영속성을 부정하고, 연애란 찰나의 몰입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타이틀인 '이니시에이션(통과의례)'에 대해 설파하는 덴도 타로는 짤막하게 등장할 뿐이지만, 작가의 화신 같은 캐릭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니컬한 관조들이 트렌디 드라마의 코드로 덥혀 있기 때문에 연애소설이든, 미스터리물이든 재독을 하면 할수록 씁쓸해질 것은 분명하다. 턴테이블 위의 LP가 A side를 재생하고 있다고 해도, B side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돌고 있다는 해석이 인상적이다. 통과의례적인 사랑을 영원 인양 믿으며 되풀이하는 연인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에서 상처만을 기억하고 사랑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 절망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다양한 복선들이 가히 불친절하지만은 않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우타니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다 읽으면 그 내용이 그 내용이 아니게 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참신한 반전소설, 영화를 즐기는 미스터리 매니아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는 아직 자라는 중인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건 성장을 억지로 막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앞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바뀔지도 모르고 지금은 맥주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와인이 더 좋아질지도 모르죠. 마찬가지로 제일 좋아하는 상대도 바뀔지 몰라요. 우리는 아직 변해도 좋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21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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