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기분이 든다. 종이 질과 연필 종류에 따라 몸에 전해 지는 촉감은 다 다르고 소리 또한 그렇다. 두껍고 반 질거리는 책보다 가볍고 거친 종이에 긋는 선이 더부드럽게 잘 나가는 식이랄까. 어디에 줄 칠 것인가하는 판단은 순전히 주관적인 독서 경험과 호흡에따라 이뤄진다. 그리고 그렇게 줄 긋는 행위 자체가때론 카누의 노처럼 독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힘과 리듬을 만든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 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 라고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종이를 동그랗게 구기면 주름과 부피가 생기듯 허파꽈리처럼 나와 이 세계의 접촉면이 늘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면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수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얇은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이들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그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뭔가를 자주 보고, 듣고, 접했단 이유로 타인을 쉽게 안다‘라고 해선 안 되는 이유도,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 하는 것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구분하고, 악수와 약탈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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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비건 -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아무튼 시리즈 17
김한민 지음 / 위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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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이라도 할라치면 가장 많은 선택지가 육류인 우리나라에서 한번에 바꿀 순 없지만 조금씩이라도 바뀌고 싶어서 줄을 긋고 공부하고 외운다.
폭넓게 읽혔으면 좋겠고 특히,마이크를 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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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욕망을 일인칭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모자라다.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

 근육이 튼튼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면,
삶의 어느 고비에서도 성큼성큼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궁극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면
걸린 데서 또 걸린다.
살아보니 그랬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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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사과와 토끼를 주면 사과를 먹고 토끼와 놀지 그 반대로 하지는 않는다.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우며 상식적이다.
 왜 이렇게 기초적인 이야기까지 해야 할까? 이 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떻게든 흠집을 잡거나,
딴지를 걸고 싶은, 비건에 대한 근거 없는 거부감을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진심으로 식물의 고통을배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서둘러 비건이 되어야 한다. 식물을 가장 적게 죽이고,
식물의 고통을 가장 최소화하는 방법이 바로 비건식이다. 주지하다시피 동물성 식품, 특히 육류는 엄청난 양의 식물 사료를 먹는 동물을 먹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최대의 식물 희생을 치른다. 그러니 식물이걱정되고 식물의 고통을 줄이고 싶으면 식물을 직접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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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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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를 감명깊게 읽은 독자라면
푸욱 빠져들게 될 책.
에메렌츠와 주인공 작가와의 멀지만 가까운 거리..
누구에게도 쉬이 허락되지 않았던 에메렌츠의 도어.
한가지 사안을 두고도 극명하게 나뉘는 둘 간의 대화를 읽다보면 갈등이 아닌 서로에게의 관심이 보인다.
표현하는 방식이 거친듯 하나 날 것 그대로서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에메럴츠의 태도 하나하나가 조르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조르바와는 다른 무언지 모를 결이 있달까..
냉정한듯 하면서도 따뜻한듯, 먼듯하면서도 가까운듯한,거친듯하지만 부드러운 두여자의 거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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