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유전학>과는 달리 <비교해부학>은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 “동기부여가 전혀 안된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나왔는지라 올해부터 우리가 접수를 했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니었다. 기초 교수들에게 “선생님 연구하시는 얘기 좀 쉽게 설명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해놨는데, 수업에 들어간 선생님의 말을 빌면 “분위기가 썰렁”했단다. 기초의학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연구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으며, 장차 연구를 평생 업으로 할 애들도 나오지 않을까 했던 게 원래 계획이었지만, 자칫하다간 그 전보다도 못하단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선생님들의 성의, 하지만 내가 삼고초려를 해야 강의를 수락할 정도로 강의에 관심이 없으신 그분들이 얼마나 성의가 있겠는가 (안그런 선생님들도 물론 있다). 급기야 오늘은 황당한 일까지 있었다. 학교에서 자고 일어난 뒤 사우나나 갈까 이러고 있는데 조교선생한테 전화가 왔다. 9시 20분 강의를 해 줄 모 선생과 연락이 안된다는 것. 놀라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열심히 걸었다. 받는다.
“오늘 수업 한시 아니어요?”
부탁하러 간 날 시간을 얘기해 줬고, 강의계획서도 보내 줬는데 이게 무슨 소리? 더 놀라운 얘기가 이어진다.
“어쩌죠? 저 지금 서울인데. 그리고 일이 있어서 당장 내려갈 수도 없는데.”
그는 말했다. “다른 시간에 보강 하면 안될까요?”
방향성도 없고, 동기 부여도 잘 안되는 수업인데 보강을 하는 건 말이 안되고, 더더군다나 선생의 실수 때문에 애들이 고생하는 건 정말 말이 안됐다. 대부분 서울.경기에 살던 애들이라 9시 20분 수업에 맞춰 오느라 힘이 들었을테니, 휴강은 더더욱 안됐다.
내가 총대를 맸다. 다짜고짜 가서 강의를 시작했다. 기생충 이야기를 하니까 애들이 흥미있게 듣는다.
“무위도식하는 사람한테 기생충같은 놈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슴은 무슨 생산적인 일을 하나요? 오리너구리는 일 해요? 기생충은요, 훨씬 더 진화된 생명체입니다. 남자들이 꿈꾸는 게 바로 셔터맨 아니어요? 부인이 약사라 셔터만 올려주고 용돈 받아서 하루종일 놀다가 밤에 들어와 셔터 내려주는 삶, 다들 부러워하지 않나요?...”
조금 학문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기생충을 가지고 뭘 연구하냐면...”
열명 정도가 잔다. 정원이 40명이니 무려 25%다. 안되겠다 싶어서 “예과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로 주제를 바꿨다.
“어떤 취미든지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겁니다. 취미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야동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야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닙니다... 단, 취미에 그치지 말고 여러분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왜이렇게 재미가 없냐, 수준이 낮냐고 불평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이 멋진 스토리를 쓰는 겁니다. 그럼 아마, 많은 사람들한테서 감사 메일이 올 거예요 의사의 역할이 삶의 질 향상이라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
하나 둘씩 일어난다. 더 흥이 난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이 말로 끝을 맺었을 때, 자는 사람은 한명밖에 없었다 (어쩌면 엎드려 자는 게 힘들어서 일어났을 수도...).
내가 놀랐던 건, 끝낸 시각이 11시 02분이었다는 사실. 난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가서 한시간 40분을 혼자 떠든 거였다. 준비를 많이 해가도 수줍어서, 준비한 말도 다 못하곤 했던 내가 어느 새 100분간 수다를 떠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간 강의 경험이 헛된 게 아니었다.
애들한테 약속을 했다.
“올해가 과도기라 제대로 된 수업을 못해주고 있어서 미안해요. 혹시 내년에 다시 일학년을 다니는 분이 있다면 충실한 강의를 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일년은 금방 가고, 있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게 없지 않을까? 그때 역시 책임교수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다들 싫어할 테고, 두시간씩만 강의해 달라고 해도 “강의에 취미없다”고 손사래를 치겠지. 결론은 이미 나 있다. 그 일년간 어떻게 교과목을 운영할 것인가를 정하는 건 나 혼자일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유전학과 비교해부학을 의대로 가져올 때 “그러면 안된다!”고 아우성을 치던 교수들은 대체 왜 그렇게 반대를 했을까. 아무 일도 안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