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쓴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글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왜 이런 댓글이 달렸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제 글이 성공적으로 부부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듯해서, 해명으로 점철된 후속편을 써 봅니다.


“가치관과 취향,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죠. 상대에게 맞춰주던지 내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없다면 부부간에 갈등은 뻔하죠. 하지만 이게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을 걸요. 살면서 어느 정도 맞춰가는 부분이 많아요.”(B님의 댓글 일부)


시험문제를 풀 때 해당 과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틀린 답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이나 “절대로 없다”같은 구절이 들어가면 그건 ‘절대로’ 답이 아니죠. 취향과 가치관이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겁니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도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제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가치관이 지나치게 틀린 경우입니다. 예전에 <스플래쉬>라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영화의 결말은 남자가 인어를 따라 바다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보면서 뿌듯해하지요. “아, 정말 사랑은 아름다워.” 이러면서요.


가치관과 취향을 맞춘다는 것...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겠죠.. 둘 중 어느 한사람이 가치관이나 취향이 백지상태라면 모를까...”(M님의 댓글)




하지만 그 뒤 둘은 행복했을까요? 이 의문을 졸작 중인 졸작인 <스플래쉬 2>가 풀어 줍니다. 어느 고립된 섬에서 지루함에 지친 남자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저 거북이에게 내가 던진 원반을 물어오라고 하면 얼마나 걸릴까?”

1편에서 인어를 따라가며 짓던 희망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를 가엽게 여긴 인어는 결국 남자에게 뉴욕으로 가도록 허락하는데요, 2편의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남자가 그때 무지하게 환호했던 건 지금도 생각나요. 이미 문명의 향락을 경험한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자와 같이 있다는 건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 거죠. 아무리 그녀가 좋다 해도 모든 걸 버리고 바다 속으로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제부터가 문제인 듯싶습니다.”(S님의 댓글, 앗 제가 언제 저런 전제를?)


문신 문제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전주이씨 종친회 회장집이 나오더군요. 회장은 당연히 문신에 반대했습니다만, 제가 놀란 건 그 며느리도 단호하게 반대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회장이야 원래 생각이 그럴지언정, 다른 환경에서 자랐던 며느리는 왜 저렇게 보수적인 언사를 써가며 문신을 반대할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자기에게 맞는 시댁을 만난 것이라고요. 종친회 중 가장 활동이 많은 전주이씨 종친회의 회장집 맏며느리, 아무나 하는 건아닐 겁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그 집 가서 며느리 생활을 하실 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며느리 분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걸테구요.


차이를 그냥 인정하면 안되나요... 꼭 맞는 사람이 아니어도 그냥 덜그럭거리며 가끔씩 일치하는 걸 찾아가며.. 그게 안된다면 세상엔 슬픈 <사이>가 너무 많아요.”(K님의 댓글)


사람들 인터뷰를 보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게 “싸우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이해가 잘 안가요. 정치란 게 원래 싸움이 아니던가요. 대통령은 한명밖에 없고 정당은 여럿, 그러니 선거 자체도 사실은 싸움입니다. 그들의 말이 법안통과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도 상황은 다를 게 없지요.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이 딱 하나 잘한 사학법, 한나라당에서는 여전히 그 법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잖아요?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한다는 세력과 한 줄도 고칠 수 없다는 세력 간에 어떤 협상의 여지가 있을까요?

 

가능한 같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맞추어가는 과정이 또 사는 재미 아닐까요? ^^ 음... 희망 사항일까요?”(K님의 댓글)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얘기를 해 보죠. <유통기한>에 나오는 남자는 인어같은 존재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걸로 그저 행복한. 하지만 여자는 다릅니다. 좋은 집에 살아야 하고, 차도 좋은 걸 타야 하고. 그래서 여자는 늘 바쁘고, 남자와 같이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영화에는 안나오지만 애가 자라면 또다시 갈등이 생기겠지요. 뭘 하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시키자는 남자와 죽어도 서울대를 보내야 한다는 여자. 이 경우 누가 양보를 할 것이며, 어떻게 이들이 맞추어 갈 수 있을까요? 그 남자에게 ‘기러기아빠’가 되라고 하면 그가 순순히 동의할까요?


현실에서 이런 걸로 싸우는 부부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의 여자처럼, 거의 대부분이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이건 신해철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배우자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자본주의에 세뇌된 상대방이 그걸 감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제가 주장하는 건 이거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취향과 가치관 너무 차이가 나면 같이 지내는 게 쉽지 않다고요. 부부간에 잘 지내시는 분들도 나름의 갈등은 있으시겠지만, 그 차이가 영화처럼 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성공적인 부부 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전 언제나 존경합니다. 제가 감히 못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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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6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7-1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제가 뭐 썩 성공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달수도 없지만, 저는 마태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도 않아요.
심지어 저는 한나라당도 짜증이야 나지만 어쩌겠냐는 생각이거든요.
어찌 일일이 나와 같기를 바라겠습니까? 사실 저 자신도 제가 어떤 상태인지, 옳은지 그른지 헷갈리는데요..
가끔 다른생각이 나도 그냥 뭐 저는 마태님의 글을 좋아해요, 생각도요.. 알라딘의 몇몇분들을 제마음대로 좋아하는것처럼요.
그래도 돼죠^^

2006-07-17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