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천국의 계단>을 보고 있긴 하지만, 드라마의 구성이 부실하다는 느낌은 지울 길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계속 보느냐면, 이왕 보기 시작한 거니까 그런 것도 있고, 최지우와 권상우가 행복하게 잘 살고 유리와 유리엄마가 몰락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이 바램은 헛된 공상이 될 것 같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지우가 안구암으로 죽는다니까. 어려서부터 주입된 권선징악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런 식의 결말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닌지라 시청자들은 게시판에 몰려가 “최지우를 살려내라”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그래서 하나의 압력단체가 되어버린 시청자들의 견해가 최지우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현 단계에서 난 신현준이 너무 짜증난다. 멋있는 권상우를 볼 때는 기분이 좋고, 악녀지만 귀여운 김태희도 너그러이 봐줄 수 있지만, 신현준이 나올 때는 채널을 돌려 버리고 싶다. 울적한 표정에 꾀죄죄한 옷차림,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데, 하는 짓은 외모를 능가해 버린다.


일단 기억을 잃은 최지우를 5년간이나 데리고 있던 것은 참으로 나쁜 짓이다. 최지우가 그걸 쉽게 용서하는 것은 드라마니까 그런 것일테고, 실제였다면 반경 5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을게다. 권상우와 마주치지도 못하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상우와 만나자 옥상에서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더니, 최지우가 기억을 되찾자 “다 말하려고 했다는 어줍잖은 변명을 해댄다. 물론 드라마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런 인간성이라면 말을 했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모든 게 탄로난 뒤, 떠나겠다고 폼만 잡고 출발을 질질 끈 것도 참으로 짜증이 났다. 바로 떠나면 되지 자기 집에서 문을 잠궈놓고 하루를 보낸 건 또 뭔가.


좋다. 그런 잘못을 다 잊고, 자기를 따라나선 최지우를 권상우에게 돌려보낸 건 평가할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깨끗하게 사라져 준다면 모든 걸 용서해 줄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권상우와의 재회를 뒤에서 보고 있다가 최지우에게 전화를 건다.

“행복하니?”

아니 행복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지가 그린 벽화를 보고있다가 최지우에게 들키는 장면도 그렇지만, 약혼식장에 난입한 건 그가 최지우의 행복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상우가 최지우에게 반지를 주는 순간, 왜 거기 들어가 “한정서!”를 외친단 말인가? 최지우는 권상우의 반지를 포기한 채 신현준을 따라나서고, 경찰서까지 쫓아간다. 그때 신현준은 이렇게 말한다.
"나 이사람 몰라요!“

이 인간, 혹시 정신병 아닌가? 모른다고 할거면, 왜 약혼식장에 들어가 파토를 놓는가? 권상우가 유리와 약혼하는 것을 막기위해? 자기가 소란을 피우면 그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권상우가 아무리 마음이 좋아도, 최지우가 한때 좋아했던 남자가 자꾸 나타나면 맘이 불편해지기 마련인데, 왜 자꾸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집에는 왜 안들어가?”라는 최지우의 말에 신현준은 이렇게 답한다.

“니가 찾아올까봐” 후후, 착각도 자유지만, 그렇게 최지우를 떼어놓으려는 사람이 허구한날 그 앞에서 얼쩡거리는 건 진짜 말이 안된다. 최지우 집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질 않나, 뻑하면 전화해서 행복하냐고 묻질 않나.


얼토당토않게 신현준은 권상우에게 찾아간다. 왜 다른 여자랑 약혼했냐고 윽박지르고, 최지우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말을 한다. 아, 짜증나. 자기만 아니였다면 최지우는 필경 행복하게 살았을게다. 유리가 아무리 훼방을 놓는다해도. 그런데, 최지우가 겪는 모든 불행의 제공자가 권상우에게 찾아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건 말이 안된다. 이제 그의 역할도 끝난 것 같은데, 우중충한 그의 얼굴을 드라마에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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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ㅡ 안녕하세요?(인사부터;) 글을 읽다가 제 생각과 너무 맞아 떨어져서 놀랐습니다....뭐, 천국의 계단을 시청하는 모든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제 친구중에는 천국의 계단을 보고 신현준 안티까지 발전한 애가 있어서,, 신현준을 보고 있자면 안쓰럽기까지 하죠(아주 잠깐이지만;) 이 글 제 서재에 퍼가도 되죠???

waho 2004-02-1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어쩜 전 주위에 천국의 계단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만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번한 내용에 식상하고 질질짜는 것도 지겹고...뭣보다 신현준 초반 패션은 경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