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몸이 안좋다는 생각을 했다. 약국에 가서 몸살약을 사먹고 약기운으로 하루를 버티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일찍 집에 왔다. 술약속에 맞춰 가려면 6시에는 나가야 하기에, 알람을 틀어놓고 디비져 잤다.

그런데,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 전부터 만들어진 약속이고,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인지라 꼭 가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살아야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디비 잤다. 조금 살아난 것 같더니, 약기운이 떨어지니 다시 아프다. 문자메시지가 왔다. 김여정이라는 친구다. 이 친구를 소개하기 위해 내가 얼마전 쓴 글을 퍼온다.

[제목: 이 여인을 보라!

지금 세계경제는 완연한 회복세다. 작년에 세계 각국은 다들 플러스 성장을 했고, 올해는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거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겨울이다. 개업을 하는 친구들은 다들 장사가 안된다고 난리다. 왜 그럴까. 우리 경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은 작년 11월 이미 100억불의 경상흑자를 기록했고, 매달 수출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말이다.

이유는 내수의 부진이다. 경제침체로 인해 얼어붙은 소비감소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사오정, 오륙도에 이어 삼팔선까지 등장, 언제 잘릴 지 모르는 터에 맘놓고 소비를 할 수가 없는 노릇이고, 외환위기 탈출에 한몫을 했던 신용카드가 지금은 소비를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는 판국이다. 맨날 경제가 안좋다고 아우성을 치는 우리 언론들도 소비 감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걸핏하면 "IMF 때보다 안좋다"는 식당 주인들의 인터뷰를 내보내는데, 누가 돈을 쓰겠는가.

이런 와중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 여인이 있다. 이름은 김여정. 나이는 이제 막 삼십대에 진입했다. 직업은 작가인데, 매우 능력있는 작가라는 것을 분위기로 느낄 수가 있다. 그 작가일을 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을 그녀는 술마시는 데 투자한다. 그녀가 뭔가를 잊기 위해, 혹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마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를 살려야 해!" 술을 마시는 와중에 이따금씩, 그녀는 내게 전화를 한다.

"지금 경제 살리고 있어요!"

12월 31일날도 그녀는 쉬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값도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구요. 그래도 경제를 살릴래요!"  그녀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뭉클하지 않는다면,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리라. 난 그녀로부터 2004년 경제의 희망을 본다. 혼자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고, 어찌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같이 모모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를 뚫듯이,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는 2004년에 웅대한 도약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게 된다.

늦은 밤, 어디선가 잔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여정님이 또 경제를 살리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난 지금 마신다. 너는?" 그래서 답을 했다. "아파 죽겠어요. 오늘 하루 쉴래요"

그러자 그녀의 언성이 높아진다. "아니 지난번에 내가 아프다고 했을 때는 한몸을 희생하면서 경제를 살리라고 하더니, 내가 하면 불륜이고 니가 하면 로맨스냐?" 논리정연한 그녀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니가 쉬면 농땡이고, 내가 쉬면 더 나은 도약을 위한 청량제다"라고.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아프고 나면 정말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야 며칠 지나면 다시금 원기를 회복할테고,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술을 마시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어깨가 무겁다. 그들 몫까지 내가 대신 마셔줘야 하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에 좀더 유념해야겠다. 오늘 밤에도 둥근 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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