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교실 동문들의 신년회 날이다. 번잡한 12월을 피해 조용한 1월에 만나서 보람찬 새해를 다짐하게 된지가 벌써 몇년째다. 나같은 아래것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건만, 난 오늘 모임에 안갈 생각이었다. 1월 1일, 세번째로 들른 교수님-홍선생님-댁에서 술에 취해 무슨 행패를 부렸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기억이 안나는 전날밤이 사람을 얼마나 무섭게 하는지를. 크게 잘못한 일이야 있겠냐만은, 그래도 난 무서웠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고 출근을 했는데,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술마시고 깽판친 죄보다 신년회에 안나온 게 어찌보면 더 큰 죄일지 모르고, 내가 그날 민폐를 안끼쳤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슬쩍 교실에다 전화를 해, 내가 그날 어땠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럴 수가. 아무일 없더란다. 내가 갑자기 사라졌고, 걱정되서 내 뒤를 쫓은 후배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달려갔다고 한다. 흠...그렇다면 내가 가장 바라는 상황일세. 일정을 바꿔 난 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고 기차표를 끊었다. 비록 정장은 못했지만.

1차는 정말이지 따분했다. 55세가 넘지 않으면 말도 못하는 분위기라, 난 책상 밑으로 책을 꺼내 독서를 하거나,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이드신 분들을 보내고 2번째 교수님의 통솔아래 무늬만 단란주점인 <다모아>를 갔다. 양주와 맥주가 나왔고, 난 늘 하던대로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가끔씩 호방하게 웃기도 하고. "음하하하하" 그런데... 후배 하나가 이런다.
"선생님, 술 드시면 안되는데.."
뭔가 이상해서 난 그녀를 옆방으로 끌고갔다.
"왜 안돼지?"
"지난번처럼 그러실까봐...."

그랬다. 1월 1일, 홍선생님 댁에서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열심히 술을 마시던 중, 자신의 새해 포부를 말하라고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나: 작년보다 나은 한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멀쩡할 때 늘 하던 소리다)
홍: 그래? 작년엔 어땠는데?
나: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알지.
이 말과 동시에 난 집에 가야 한다고 가방을 메고 나왔다는데, 물론 이 사건에 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내 심복이 "아무일 없었다"고 한 것은 이게 평소에 늘 있던 일이라서 그랬다나? 하기사, 홍선생님한테 내가 그간 못할 짓을 많이도 했다.
술에 취해 "언니"라고 부른 적은 부지기수고,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줄 알아?"라는 말도 했다고 하고, 그밖에...으흐흑. 하여간 우리 홍선생님은 마음도 좋으시다. 내 깽판을 다 받아 주셨으니 말이다. 혹자는 내가 술취한 척하면서 반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어쨌든 오늘도 기본은 했다. 기본이란 소주 한병, 혹은 맥주 다섯병 이상을 말하는데, 이 기준에 미달하면 술마신 것으로 카운트가 안된다. 그러니까 난 소주 두잔씩 마시면서 "나 매일 술마셔"라고 하는 사람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아니 그 사람은 밥 한숟갈 먹고 "밥 먹었어!"라고 그러는가? 좌우지간에 1일 마시고, 3일날 마시고, 오늘 또 마셨으니, 징검다리로 마시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고, 이대로 간다면 180일 이하의 꿈도 달성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럼...7일날도 마실까? 물론이다. 그날은 중1 때 과외하던 애들끼리 술약속이 있다. 9일은? 그날은 쉬지만, 아쉽게도 8일날 술약속이 있다. 이래저래 생기는 술약속 탓에, 이틀에 한번도 사실 쉬운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겠지. 180일 이하로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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