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를 쓰다보면 파일을 pdf로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연의 배신>도 그랬다.
추천사를 쓰려면 일단 읽어야 하기에 컴퓨터로 마구 화면을 넘기는데,
읽고 난 느낌은 "그런대로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 느낌을 살려 추천사를 작성했다 (사실은 부끄럽다.
다른 추천사를 보니 내 추천사가 너무 한심하다
이번 기회에 추천사 쓰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한 걸 소득이라고 생각하자.)
나중에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 줬는데
안그래도 읽은 책도 없고 해서 그 책으로 <인물과 사상>에 독후감을 쓰려는
기특한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그 책을 읽는데, 와~ 책이 정말 재미있는 거다.
처음 읽는 것도 아니고, 전자책으로 한번 읽었던 걸 다시 읽는데
대략 3배쯤 재미있는 거다.
범고래가 사람을 죽이는 얘기는 전자책으로 볼 땐 "범고래가 사람을 죽였구나"라며
담담하게 넘어갔는데
책으로 보니까 손이 부르르 떨릴 만큼 전율이 왔다.
"이런 나쁜 범고래 같으니!"
비슷한 경험을 <아무 날도 아닌 날>에서도 한번 더 경험했다.
이 책 역시 추천사를 쓰려고 pdf 파일로 읽었고,
5월 30일에 있는 북콘서트를 위해 저자가 보내준 책으로 정독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후자가 대략 다섯배쯤 더 재미있었다.
전자책으로 읽을 때는 안그랬지만
책을 정독하다가 저자한테 "책 정말 잘쓰셨네요!"라는 문자를 보내기까지 했다.
역시 난 전자책에 특화된 세대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고,
앞으로 3박4일 여행을 가더라도 책 여러 권을 낑낑대며 들고갈지언정
가벼운 전자책을 다운받아 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이야말로 지불한 책값이 아깝지 않는 길이니까.
전자책이 필요할 때가 없는 건 아니다.
외국에 책을 보내려면 배송비가 무지하게 비싸던데,
외국에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책을 읽고 싶을 땐
전자책을 주문하는 게 훨씬 합리적일 듯하다.
배송시간도 짧은데다 가격도 엄청 싸니까.
하지만 내 인생의 스케줄상 외국에 거주하고,
또 거기서 주문을 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난 남은 여생을 종이책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줄기 불안이 엄습하는데,
언젠가 종이책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을 쓴 세대-대략 2000년 이후 출생자들-가
사회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종이책 읽는 사람들을 구닥다리 취급하면서
종이책을 없애는 제2의 문화혁명을 벌이지 않을까?
그럴 땐 문화혁명 때 위화라는 중국의 소설가가 그랬던 것처럼
노트에 필사를 해서 나같은 사람들끼리 돌려보는 수밖에.
문화혁명 때와 달리 노트에 필사해서 돌려본다고 잡아가진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