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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
에프라임 키숀 지음, 이미옥 옮김, 송은경 그림 / 좋은생각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남편이 아내와 함께 <크래머 vs 크래머>를 봤다. 더스틴 호프만이 나온 영화인데 난 안봐서 내용을 모르지만 여주인공이 해변가를 걷다가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이 되어 남편을 버린다는 스토리란다. 현실의 아내도 느끼는 게 있었다.
“이제 더 견딜 수 없어요.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죠?”
아내는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몸이 단 남편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다.
어머니: 성숙한 여자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을 맞이한단다. 자신의 삶이 무의미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
아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어머니: 아들아, 진짜 악어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사주렴.
아들: 아시잖아요. 집사람의 핸드백은 하도 많아서 넘치고 넘친단 말이어요. 악어가죽 핸드백이 뭐 그리 특별하죠?
어머니: 가격이지 아들아, 가격이 특별나지.
남편은 시내에 가서 악어가죽 핸드백을 샀고, 여전히 가방을 꾸리던 아내에게 내밀었다.
[“악어”
아내는 신음했다.
“진짜 악어”
..아내는 내 목에 매달려 내가 어지러워질 때까지 키스를 했다...아내는 악어가죽 핸드백에서 날마다 찾아 헤매던 것, 바로 자신의 진정한 아이덴터티를 발견했던 것이다]
에프라임 키숀의 유머는 대개가 이런 식이다. 웃겨서 눈물이 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잔잔한 미소가 주를 이루다 어쩔 때 터지는 너털웃음이 내가 보이는 반응이다. 그러니 몇시간을 즐겁게 보내기엔 키숀의 책이 딱이다. 물론 그의 유머에 식상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난 그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불편했다. 그의 책을 다섯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어디에도 현실에 대한 성찰은 없다. 그가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생각해 보면 웃음이 싹 가신다. 탱크에 돌을 던졌다고 어린아이의 팔을 부러뜨리는 일이 지척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어쩜 이렇게 쓰잘대기 없는 농담만 하고 있담? 다른 작가도 아니고 이스라엘 최고의 유머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람이 말이다. “근동지방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아이를 캠프에 보낸 일) 했다”고 씌여 있는 대목을 보니 더더욱 그렇다. 아니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평화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담? 제대로 된 작가라면 이 유머들 속에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붙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성이 포함되어 있어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키숀이 싫어지려고 한다. 다행히 이 책은 어떤 분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