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삼국지 정신
국민작가로 불리는 이문열은 90년대 들어 이렇다할 작품을 내지 못했다. '선택'같은 작품은 작품의 재미에 의해서가 아닌, 페미니즘 논란의 쟁점이 된 뒤에야 겨우 베스트셀러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문열의 연간 수입은 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80년대와 비교했을 때 별로 줄어든 게 없다. 왜 그럴까? 바로 민음사에서 펴낸 '삼국지' 때문이다.
박종화의 삼국지에 비해 이문열의 그것은 자의적 해석이 깃들여져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래서인지 이문열은 방대한 삼국지 시장의 70% 이상을 석권하고 있고, 그게 이문열이 누리는 부의 원천이 되고 있다.
삼국지 시장이 이렇게 커진 건 92년인가 대입수석을 했던 학생이 논술준비를 위해 삼국지를 읽었다는 보도가 나가고 나서부터이다. 지금도 삼국지 광고카피에는 '삼국지로 논술준비를!'이라는 구절이 들어있다. 난 삼국지를 총 5번 읽었는데, 삼국지와 논술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삼국지보다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지은 '월든'이 훨씬 논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들어 삼국지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학권력'(강준만/권성우 공저)이란 책의 한대목이다.
"외국의 학생들이 조화와 협동을 배우는 동안 우리학생들은 권모와 술수,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기 바쁘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입시제도 자체가 친구를 적으로 돌리는 무한경쟁의 장인지라, 우리 청소년들이 협동이라는 덕목을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2. TGI와 삼겹살
어제 친구들과 그 식솔들을 데리고 TGI에서 식사를 했다. 거길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TGI, 베니건스, 칠리스 등의 미국식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사람이 여러개의 음식을 시켜 조금씩 나누어 먹기 마련이다.
'네가 seafood를 시켰으니 나는 콤비네이션 스테이크를 시키고, 너는 치킨샐러드를 시켜라"
냉동육의 유해논쟁을 떠나서 미국 애들은 식사를 할 때도 이렇게 '조화와 협동'을 온몸으로 배운다.
TIG가 미국 외식문화의 상징이라면, 우리 음식의 대표는 당근 삼겹살이다 (불고기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TGI와는 달리 삼겹살은 무한경쟁의 장이다. 내가 익혀놓은 고기를 남이 먹고, 남이 찍은 고기를 내가 가로챈다.
"왜 나만 뒤집냐?"는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숨좀 쉬면서 먹어라"는 핀잔이 오간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더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 채 익지도 않은 벌건 고기를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킨다. 조화와 협동이 발을 붙일 구석은 어디에도 없다.
허기진 배를 움켜쥔, 경쟁에서 진 사람의 "고기 더 할까?"라는 물음은 배불리 포식한 승리자에 의해 거부되고, 서로간에 남은 건 앙금 뿐이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2차를 가고, 3차를 간다. TGI서 나온 외국인들이 곧장 집에 가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장면이다. 우리의 삼겹살 문화에도 삼국지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둘다 '삼'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요즘들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패미리 레스토랑은 우리에게 조화와 협동의 정신을 심어줄 것인가? 아직은 그런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는 듯하다. 삼국지정신으로 무장한 채 TGI에 간다면 삼겹살을 먹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얼마전 베니건스에서 일어난 집단 패싸움은 우리가 아직도 60년대의 허기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레 실망할 일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조화와 협동이 성공적으로 착근하기 위한 진통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깐.
우리의 외식시장을 송두리째 외국계 업체에 빼앗긴다는 국수주의적 접근을 버리고, 그들의 문화로부터 좋은 점을 취하는 자세가 필요한 대목이다. TGI처럼 '조화와 협동'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우리 음식이 만들어진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겠지만.
* 베니건스 패싸움 사건은 글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가공된 사건임을 밝힙니다.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 번번히 그런 유혹에 굴복하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