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고등학교 때는 말을 안듣는 얘들보고 양손으로 전선을 잡게 한 뒤 전기충격을 주기도 했어"
선배로부터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난 정말 놀랐다. 어떻게 그런 선생이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전기충격이란 게 처음 듣는 소재기에 섬뜩했을 뿐이지, 그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한 폭력은 나 스스로도 수없이 목격했던 터였으니까. 각목이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 패거나, 맞아서 넘어진 학생을 발로 짓밟는 행위가 전기충격보다 덜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출석부의 각진 부분으로 머리를 맞아 피가 나거나 따귀를 맞다가 고막이 상하는 일은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문학평론가 박철화의 말이다. "나는 유소년기에 있어서 체벌 지지자이다. 나는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어린이들의 체벌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처벌이 꼭 구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체벌은, 유감스럽게도 언제나 구타를 의미했다. 난 부모든 선생이든 누군가를 때릴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긴 해도 하나의 인간인 이상, 존중받아야 마땅한 게 아닐까. 교육이란 건, 지식의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 지식을 매개로 시혜자(전달자?)와 수용자간에 소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달자와 수용자는 서로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한 건 물론 아니며, 둘 사이에 폭력이 개입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아는 학교 선생님 한분의 말이다. "체벌이 없다면 학생들의 통제가 되지 않는다"
교육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타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피치 못하게 구타를 하는 경우라도 구타가 필요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좀더 나은 대안이 없는지를 연구해야 하겠지만, 구타를 하는 선생님들로부터 그에 관한 고뇌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선생님들은 너무도 안일하게 폭력의 유혹에 굴복해 왔고, 그건 우리가 '선생님들'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 모든 부정적인 해악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효과가 있다면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은 단기적이고 미미한 효과만 거둘 수 있을 뿐이다. 수십년간 폭력이 용인되었던 결과가 오늘날의 '교실붕괴'라면, 이제 그 방법은 용도폐기되어야 하지 않는가?
미숙한 상태에서 폭력에 길들여진 아이는 폭력을 스스로에게 내면화시키게 되고, 폭력에 둔감해진다. 나아가서는 자신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얼마전 살인 피의자가 검찰 조사 중 사망한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에 물들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토록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폭력의 도움 없이는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은 교사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에 다름없다. "체벌을 금지하니 교실붕괴가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체벌이 그렇게 좋으면 니 자식이나 x나게 두들겨 패 훌륭한 사람 만들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