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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 vs 식약청
이형기 지음 / 청년의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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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나쁠 수가 없다는 면에서 그렇다. 비단 식약청 뿐 아니라 정부 기관 전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식약청이 더 욕을 먹는 것은, 식약청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우리가 먹는 식품과 약제의 안전성 여부를 식약청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먹는 것에 민감하며, 백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바가지로 욕을 먹는 곳이 바로 식약청이다.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PPA(감기약의 일종) 파동을 보자. 4년 전인 2000년, 미국 FDA는 PPA가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정하고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 보고를 받은 후 우리나라 식약청이 PPA의 판매를 금지하는 데는 무려 4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그 기간 동안 이 약제로 말미암아 뇌졸중에 걸린 사람은 적게 잡아도 1,000명이 넘는단다. 왜 식약청은 곧바로 PPA 판매를 금지하지 않았을까. 국가주권 때문이란다. 다른 나라에서 못팔게 한다고 우리가 마냥 따라야 하느냐는 게 식약청의 변명이다. 그래서 식약청은 그 기간 동안 자체적인 조사를 따로 실시했고, FDA와 마찬가지 결론을 내린다. 문제는 우리 식약청의 전문성이 FDA에 한참 못미친다는 것. 마치 공부 잘하는 애가 풀어놓은 수학문제를 하위권 학생이 “못믿겠다”며 다시 풀겠다고 우기는 것 같지 않는가? FDA가 판정을 내리기 전에도 PPA에 대한 안좋은 보고는 꾸준히 보고되고 있었으니, 최소한 판매를 보류하기만 했다면 욕은 먹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된 원인은 식약청의 사명이 국민의 건강보다는 국내 제약회사의 보호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PPA를 생산하는 기업이 주로 국내 업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식약청과 FDA 모두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이형기 박사는 우리 식약청의 문제를 FDA와의 비교를 통해 속속들이 파헤친다. 워낙 문장이 설득력 있게 씌어져 술술 잘 넘어가는데,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핏보면 식약청을 비난하기 위해 쓴 책 같지만, 저자는 모든 문제를 식약청에 돌리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대목에서 식약청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바램처럼 식약청이 국민의 건강을 우선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 되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