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밤, 어머니께서 폭탄선언을 하셨다.
"앞으로 우리집에서 소고기를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니들도 먹지 마라!"
미국산 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되었다는 언론보도 탓인데, 이건 우리 어머니만 그러시는 건
아니다. TV에서는 손님이 없어 한산한 고기집을 비춰주고, 엄마 친구 한분은 애쓰게 만든
사골국을 버렸단다. 모임 장소를 "모 고기집"으로 하자는 어머님 말씀에 71세된 여자분은
절대 안간다고 도리질을 했고, 다른 이들도 "그래요. 고기는 먹기 싫으네요"라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일식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70세가 넘은 분이 얼머나 더 사시려고 그러냐, 이렇게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문제는 쇠고기를 일체 먹지 말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인가다.
위험성이 지극히 낮을 경우, 지금 우리가 보이는 행태는 오버가 된다. 난 지금 우리가 오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련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광우병에 감염된 사람은 지금까지 153명이고, 그 중 143명이
영국인이란다. 우리나라 사람은 한명도 광우병에 걸린 적이 없다. 광우병의 무서움을 생각한다면
환자가 한명도 없더라도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게 이해는 간다. 올해 확인된 148건을 포함해 소의
광우병 발생이 총 18만건에 달하고, 그 중 몇마리가 우리나라에 수입되었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그것도 형평의 문제다. 우리가 생명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것 같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해마다 7천명이 넘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음주운전은 치사율이 훨씬 높고, 단속에 걸리면
패가망신을 함에도 음주운전의 빈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담배와 폐암만큼 질병의 인과관계가 잘 증명된 병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인구의
흡연율은 5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술을 먹으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오래 못산다.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2000년 통계로
슬로베니아에 이어 2위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해에 10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다. 말라리아가 없는 우리나라에
있으면 안전할 텐데, 말라리아가 있는 태국,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여행하는 사람은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폐암에 걸린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니만큼, 이런 질병들과 광우병을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언제까지 소를 안먹을 것인가?
어머님께 여쭤봤다. "언제까지 안드실 겁니까?"
어머님의 대답이다. "광우병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수입 소가 한우로 둔갑해서 팔리는 마당에, 광우병 문제의 해결이란
불가능한 일인데.
몇년 전 광우병 파동이 났을 때도 쇠고기 소비량은 50% 아래로 격감했다. 그게 얼마나 갔을까.
길어야 한달이었다. 애써 만든 사골을 버린 사람들이 인생의 남은 기간 동안 사골을 먹지 않을까?
고기집에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는 생선과 풀만 먹고 살까? "인체에 암을 일으키거나
면역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은 어류와 채소류에 가장 많이 들어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는데, 회라고, 채소류라고 과연 안전하겠는가? 지금은 일시적으로 고기집이
한산할지 몰라도, 장담컨대 한달 내에 고기집들은 다시 손님으로 붐빌 것이다. 자본력이 취약한
고기집들이 망하는 것 외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종류의 쾌락에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는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라면 이별의 슬픔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쇠고기를 즐기려면 그로 인한 질병의 위험도 각오해야 하는 게 아닐까? 더더군다나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위의 두 경우보다 지극히 낮지 않는가. 안전을 추구하는 게 나쁠 거야 없다쳐도,
그걸 빌미로 쾌락 자체를 거부한다면 집에 숨어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집이 무너질 확률도 있으니 그것도 그리 안전할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났는데 우리가 보따리를 싸는 것처럼 무슨 일만 나면 오버를 하고마는
우리의 냄비근성도 한번쯤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며, 그와 아울러 위험하지 않은
쾌락은 없다는 것도 명심할지어다. 쓰러져 가는 고기집을 살리기 위해 오늘부터 난 모든
술은 고기집에서 먹을 생각이다. 나랑 같이 고기 먹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