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거리에 나앉을 운명이었던 고양이를 실험실에서 기르기로 하고
‘톡소’라는 이름을 붙여준 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톡소는 두 가지 점에서 일반 고양이와 달랐다.
고양이 사료를 사러 갔을 때 “고양이는 식사량 조절을 스스로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톡소는 절대 그런 고양이가 아니었다.
웬만한 진돗개가 먹을 정도의 양을 하루 사이에 다 먹었으며,
변도 무지하게 많이 봤다.
아침에 출근했을 때 치운 변의 개수가 평균 여섯덩이 정도 됐으니까.
두 번째로, 톡소는 사람을 정말 좋아했다.
“고양이는 원래 혼자 놀아요”라는 말을 믿고 입양을 결정한 건데,
톡소는 내가 퇴근할 때면 서럽게 야옹거렸고,
아침이 되면 몸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일을 할 때나 논문을 쓸 때면 무릎에 앉아서 자는 고양이라니,
이건 원래 개한테서나 볼 수 있는 행동이 아닌가?
복도에서 나랑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도 완전 개의 행동,
그 덕분에 난 톡소랑 있는 게 참 즐거웠다.
아내 역시 톡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끔씩 톡소를 보러 학교에 왔으며,
톡소의 재롱을 보면서 해맑게 웃었다.
난 매일 봐서 몰랐지만 오랜만에 톡소를 본 아내는
“톡소가 많이 컸다”며 놀라워했는데,
톡소가 그렇게 먹어댄 것도 아직 성장기였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의문에 대한 오해는 풀렸다)

오른쪽 눈이 좀 이상한 건 바이러스 감염 때문으로, 이것 땜시 톡소는 2주간 안약을 넣고 약을 먹어야 했다.
물론 톡소와의 삶이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6-7시에 퇴근한다 해도 톡소는 하루 열댓 시간을 혼자 있는 거였고,
출장이라도 가는 날엔 하루 종일 톡소가 마음에 걸려 ‘이게 톡소에게 좋은 건가?’를 번민해야 했다.
먹이랑 잠자리가 보장됐다 해도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는 삶을 포기하는 걸 톡소가 원하는지 계속 생각했다.
그러던 중 그걸 알게 됐다.
동물미용센터에 톡소를 목욕시켜 달라고 맡겼는데,
목욕을 시켰던 미용사가 톡소 피부가 좋지 않다고 알려줬다.
황급히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가 이런다.
“아무래도 곰팡이 감염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해요.”(배양검사도 양성이었다)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한테 곰팡이가 옮는다는 건 아내로선 무서운 일이었다.
아내와 상의해서 일단 톡소를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톡소의 흔적이 남은 연구실과 실험실을 죄다 소독했다.
2주간의 치료 끝에 톡소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는데,
오늘 톡소를 보고 온 아내에 의하면 톡소가 그전보다 훨씬 더 컸단다.
행여 톡소가 나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할까 마음이 아프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 녀석이 철장에 갇혀서 야옹거릴 생각을 하면 또 마음이 아프다.

이제 3주 정도 더 입원치료를 받고 나면 톡소는 갈 곳을 정해야 한다.
곰팡이의 전력 때문에 아내는 내가 다시 기르는 것을 꺼려하고,
나 역시 톡소가 하루의 2/3를 혼자 지내게 하는 게 썩 내키진 않는다.
그래서 아내는 백방으로 키워줄 사람을 수소문했고,
고양이 아홉 마리를 키우는 아내의 지인에게 매달 사료값을 보내기로 하고 톡소를 맡기는 데 성공했다 (톡소가 워낙 많이 먹는지라...).
불과 3주 정도 같이 있었을 뿐인데도 톡소가 없는 실험실은 텅 빈 것 같고,
날렵한 몸으로 실험실 탁자에 올라오곤 했던 톡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톡소가 지인의 집에서 더 행복하리라 생각하기에,
그런 아쉬움은 접어 두련다.
몇 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인 집에 놀러가서 톡소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톡소야, 일단 안녕이다.